김대중 전대통령이 지난 12일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3개월반 전 까지만 해도 이 나라 대통령으로서 그의 당당하며 위엄을 떨치던 자태는 간데 없다. 오직 80고령에 기력은 쇠진했으며 곧 준엄한 사법심사의 차례를 기다리는 피의자 같은 측은지심만 감돌게 했다. ‘권불10년’이요, ‘화홍10일’이라는 인생유전을 떠올리게도 했다. 김 전대통령은 아들 셋중 둘은 이미 법을 어긴죄로 쇠고랑을 찼고 나머지 한 아들마저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김씨는 자신 마저도 대북불법송금사건과 관련하여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여론속에 심경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 중 이미 둘이나 오랏줄에 묶여 감방으로 끌려갔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마음은 한층 더 짓눌릴 수밖에 없다. 80고령의 전직 대통령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처리될 수도 있다는 항간의 지적은 김씨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케 했다. 하지만 그는 12일 TV를 통해 대북비밀송금 행위에 대한 사법심사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섬으로써 동정심 대신 일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김씨는 통치행위로서의 “대북송금 문제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국가와 우리 경제를 위해 수십년간 헌신한 사람들이 부정비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법처리 대상이 되고 있는데 대해 당시 책임자로서 참으로 가슴 아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북송금과 관련하여 이미 특별검사팀의 조사로 불법 죄상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김씨가 이 사건에 대한 사법심사를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위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일부 학계와 법조계에서 반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김씨는 “조사대상자로 거론되는 한 당사자로서 수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법심사를 반대할게 아니라 대통령을 지낸 어른답게 “법의 공정한 심판을 받겠다”고 밝혔더라면 동정을 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대통령 재직시설 이 사건과 관련해 해명한 부분중 정직하지 못했던 대목들에 대해 머리숙여 사과했어야 옳다. 김씨는 지난 1월30일 “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앞으로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공언한바 있다. 이 말은 대북불법송금에 관한한 정부로서는 전혀 아는바 없고 현대가 경협을 위해 알아서 자행했다는 식의 오리발 내밀기였다. 그러나 특검수사 결과 대북불법송금은 청와대측이 개입되어 있고 돈세탁까지 해가면서 보낸 것으로서 김대중 권력기관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음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김씨는 그로부터 2주일만인 2월14일 대북송금 의혹에 대한 담화를 통해서도 정권 차원의 조직적 개입을 숨겼다. 현대의 단독 행위로만 해명했다. 그는 “현대의 대북송금이 평화와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수용했다”고만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배석한 임동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도 현대측이 “5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은바 있다”고 덧붙임으로써 오직 보고만 받았을 뿐이었다고 잡아떼었다. 이 모든 해명들은 특검의 수사를 통해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은 TV출연의 기회를 맞이하여 지난날 자신의 솔직하지 못했던 발언들에 대해 사과했어야 옳다. 하지만 그는 사과대신 사법심사마저 반대하고 나섰다. 도리어 김씨는 “국가와 우리 경제를 위해 수십년간 헌신한 사람들이 부정비리가 없는데도 사법대상”이 되고 있다는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평생을 군인으로 헌신하다가 대통령이 된 전두환·노태우 씨도 법을 위반했을 때 가차없이 징역살이를 해야 했다. 하물며 “주적”인 북한에 그토록 많은 달러를 불법적으로 몰래 보내준 행위는 “부정비리”보다 더 무서운 범법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김씨는 조사대상자로 지목되는 당사자로서 사법심사를 반대해서는 안된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사법부의 판결에 맡기겠다는 의연하고도 준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함을 지적하는 바이다. ■ 본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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