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경상도 지역을 쑥대밭으로 강타하고 있었는데도, 어느 장관은 한가로이 제주도에서 동창생들과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즐기고 놀자판으로 환장한 이 나라 백성들의 과소비 현장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추태이다. 이 나라에는 하루 15~20만원 씩이나 퍼주면서 골프장에 나가 부자행세를 하는 속빈 사람들이 적지 않다. 허영이요, 허세이며, 거품 생활이다.한국의 경제사정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는데도, 한국인의 과소비는 치솟으며 저축률은 떨어지고 있어 큰 걱정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7년이나 묶여있으면서도 3만달러의 부자행세를 한다. 근면·절약·저축 생활은 간데 없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2년 국민계정(잠정)’ 자료에 의하면, 2002년 한국의 총 저축률은 19년만에 처음으로 20% 대로 떨어졌다. 29.2%로 줄었다. 한국의 총 저축률은 1988년 40.5%였으나 이제 20%대로 곤두박질친 것이다.저축률의 하강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사적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의 저축률 침몰은 경제발전도 충분히 이루지 못한 채, 성급히 과소비로 치닫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노정시킨다. 대체로 선진국들의 저축률 하락 경향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률(GDP)이 1만5,000~2만달러를 넘으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은 1만달러에서 크게 저축률이 내려앉는다는데서 우려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저축률 하락의 주범중 하나가 과소비이다. 20~30대는 신용 카드로 뒷감당도 할 수 없으면서 마구 써대고 본다. 40-50대는 남한테 기죽지않고 뭔가 보여주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사들인다. 60~70대는 건강에 좋다면 ‘내가 번 돈 내가 다 쓰고 간다’는 식으로 흥청망청댄다 독일의 20세기초 사회학자 맥스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 발달의 동력을 다름아닌 근면·절약·저축 생활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유럽의 자본주의는 근면·절약·저축을 하나님의 훈령으로 신봉하는 존 칼빈과 개신교도들의 절약생활 그리고 그로인한 자본의 축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실상 서양사람들은 근면·절약·저축 생활이 몸에 배어있다.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의 부인 로잘린은 남편의 대통령 취임식 때 새 옷을 사지않았다. 그녀는 6년전 카터가 조지아 주지사에 취임할 당시 착용했던 드레스를 그대로 입었다. 그녀는 재봉틀을 백악관에 들고 들어가 계속 헌옷을 고쳐입었다. 2000년 10월 서울에서는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열려 각국 원수들이 모여들었다. 서울의 한 호텔 세탁관리부 직원은 유럽 정상들과 수행원들의 낡은 옷소매에 놀랐다. 이들의 소매 끝은 대부분 해어져 있었고 옷감도 고급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핀란드 대통령은 여성이었는데, 본국에서 다리미와 다리미대를 들고 와 객실에서 손수 옷을 다려 입었다. 스웨덴 총리 부인은 동대문 시장에서 옷감을 샀다. 집에 가서 직접 만들어 입기 위함이었다. 독일 총리는 자신의 숙소에서 회담장까지 리무진 서비스를 마다하고 1.5km를 걸어서 다녔다. 그 보다 몇 년 전 서울을 방문했던 또 다른 독일 총리는 공항에서 한국 정부가 제공한 방탄 리무진을 사양하고 수행원들과 함께 버스를 탔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조각가 미켈란제로는 당대 최고의 수입을 올리는 예술가였다. 그러나 그가 임종했던 집에는 가구나 책들의 장식은 없었으며 보석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금고에는 ‘피티 성’(城)을 살 수 있을 만큼 금화가 가득했다.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 집 주인 할머니 또한 대단했다. 그녀는 쇠고기 기름을 녹여 화장크림으로 만들어 쓰는 등 화장품을 대체로 손수 마련했다. 저와같이 선진 서양 사람들처럼 모두가 근검절약 생활을 체질화한다면, 저축률 하락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생할도 건전해 지고 뇌물과 허풍·허세도 사라진다. 서양인들과 같이 옷소매가 해지도록 근검절약 하면서도 멋지게 써아할 때는 써야 하지만, 과소비*허풍*허세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생활방식만이 국민정신을 건강하며 겸손하게 하고 국민 계층간에 위화감이나 적대의식 없이 화목하게 나라를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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