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지난 10일 전격 발표한 이후 재신임의 참뜻이 헷갈리며 흐려지고 있어 안타깝다.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한 당사자인 노대통령도 헷갈리는 말을 계속 하고 있으며 야당들도 엇갈리고 있다.노대통령은 처음 재신임을 묻겠다면서 그 이유로서 자신의 측근 비서관 비리를 들었다. 그는 20년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의 SK비자금 수수의혹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재신임에 부친다고 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하루만인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약간 헷갈리는 말을 했다. 그는 국회에 의해 대통령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며 ‘국정이 안정’되지 못하고 ‘권력의 공백’상태 하에서는 재신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상황논리를 폈다. 최씨에 대한 도덕적 책임 문제라기 보다는 잘못된 한국의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 재신임의 취지로 읽게 했다. 이어 이틀만인 13일 노대통령은 또 딴 말을 덧붙였다. 그는 “재신임에 어떤 정책을 결부하지 않고, 그냥 재신임 여부를 묻는게 좋겠다”면서도, 정치권 전체의 도덕성 문제를 끌고 들어갔다. 그는 “정치권의 도덕적 마비증상을 고치기 위해 내 자신이 먼저 몸을 던져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는데서 그렇다.헷갈리게 하는 것은 야당들도 마찬가지이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빠른 시일내에 가장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재신임을 단행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이틀만에 최도술씨 비리의혹에 대한 진상을 먼저 밝힌 다음 국민투표는 그 다음으로 미루어야 한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도 처음에는 “노 대통령이 사실상 레임덕에 들어갔으므로 국익을 위해 빨리 (재신임 문제를 처리) 해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틀 뒤 반대하고 나섰다. 한편 자민련은 노 대통령이 재신임 발언을 철회하고 스스로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는 제각기 자의적으로 덧붙이고 해석해 엇갈리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된데는 필시 까닭이 있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자신과 측근에 대한 도덕성 책임추궁으로만 국한시키지않고 전체 한국정치의 잘못된 관행과 연결시켜 끌고 들어가고자 한다. 최도술 비리문제에 대한 물타기와 물귀신 작전이고 동반책임론 제기이기도 하다. 한편 야당들이 처음 조기 실시에서 반대로 돌아선 까닭은 뻔하다. 여론조사 결과 대다수 응답자들이 국정의 혼란을 염려한 나머지 노 대통령의 유임을 의외로 지지한다는데 연유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야당측의 저의들이 어디에 있건간에 재신임과 관련해 한 가지 분명한게 있다. 그것은 노 대통령이 통치불능의 한계상황에 몰린 나머지 스스로 재신임에 맡기지 않을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통치불능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재신임이란 벼랑끝 승부수를 택했던 것이다.하지만 재신임 승부수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들고 나오기 보다는 국민들로부터 배척과 불신의 대상이된 자신의 잘못된 정치행태와 노선부터 고치고 나섰어야 했다. 노 대통령의 통치력을 이 지경으로 몰고간 것은 그의 좌파성 코드, 우왕좌왕하는 정책결정 과정, 제식구 감싸기, 말 뒤집기, 패거리 정치 등이었다. 일본의 한 신문 사설이 지적한대로 노 대통령의 문제는 ‘한국형 좌익 대중영합 정치’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 미국의 한 신문 사설의 주장대로 한국인들은 노 대통령의 영도 아래 ‘5년을 보내야 한다는데 절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 협조와 언론의 지지 그리고 국민들의 찬사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우선 좌파성향 코드와 대중영합 정치를 포기해야만 한다. 몇몇 청와대 핵심측근 경질과 코드를 같이하는 통합신당 충성파들의 청와대 및 내각 입성으로는 안된다. 좌파성 코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노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건 안묻건 간에 얼마 못가 또 다시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통치불능 상태로 내 몰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 대통령은 지난날의 잘못된 좌파성 코드, 대중영합 정치, 말 뒤집기 등을 벗어나 국민의 신뢰를 먼저 받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재신임의 참뜻을 살리는 길임을 덧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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