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신화에 ‘판도라 상자’ 라는게 나온다. 그리스의 주신 ‘제우스’는 최초로 ‘판도라’ 라는 이름의 여자를 흙으로 빚어냈다. 이 여인에게 그리스 신들은 인간의 목소리, 아름다움, 유혹의 힘, 교활함, 아첨의 기교 등을 불어넣었다. 제우스는 판도라 여인에게 한 항아리를 주면서 뚜껑을 열지말라고 했다. ‘판도라의 상자’라고 하며 이 항아리에는 모든 재앙과 악마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모든 재앙과 악마들이 지상으로 마구 쏟아져 나왔다. 판도라는 한참 당황하던 끝에 도망가기전에 항아리의 뚜껑을 닫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꾸역 꾸역 쏟아져 나오고있는 정치권의 대통령선거 불법자금 흑막을 보고있노라면, 마치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연듯한 느낌이다. 여야 할것없이 불법대선자금의 재앙이 끝도없이 줄줄이 넘쳐나오고 있다는데서 그렇다. 그러나 불법 대선자금 비리들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닫아버릴 수도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뚜껑을 닫아 덮어 둘 경우 불법 정치자금의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60년 4·19혁명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집권자가 바뀔 적 마다 구정권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가차없는 단죄가 단골 메뉴처럼 뒤따랐다. 새로 잡은 권력집단이 구세력을 거세하고 자신들의 참신성과 정당성을 내세우며 정치 재정적 기반을 닦기 위한 정치공작의 일환이었다. 그때마다 구세력과 이들에게 검은 뭉칫돈을 건넨 재벌들은 굴비처럼 오랏줄에 줄줄이 묶여 감옥으로 끌려갔다. 한편 권력을 잡은 신세력은 그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닥치는대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게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끈이 떨어진 구세력과 재벌들은 당하고 마는게 한국적 ‘정의’이고 ‘개혁’이며 ‘부정부패 척결’의 부끄러운 반세기 역사이다. 결국 칼자루를 마구 휘둘러댔던 신세력도 다음 권력투쟁에서 밀리면 그들도 새로 나타난 집권세력에 의해 ‘구시대 부패정치인’으로 몰려 단죄의 칼날을 받고 비참하게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이런 역사적 악순환의 맥락에서 볼 경우 다음 단죄의 대상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밀어내고 칼자루를 잡고 휘둘러대는 집권세력의 차례가 아닌가 한다. 솔직히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도 대선자금과 관련해 “내가 깨끗하다고 주장한 적 없다”고 토로한바 있다는 데서 더욱 그렇다.불법정치자금 해결에 대한 갖가지 처방들이 정치권은 물론 각계 각층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노대통령과 이회창씨가 전모 고백해야’, ‘정치자금법 개정을’, ‘재계의 뼈아픈 반성’ 등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처방과 주장들은 지난날 불법정치자금 문제가 터져나왔을 때마다 늘 조건반사적으로 반복해서 들려온 흘러간 노래들이다. 이 시점에서 한가지 당장 해야할 분명한 게 있다. 법대로 하는 것, 그것이다. 실정법을 어긴 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법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 말단 당원으로부터 당총수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법을 어겼으면 감옥에 간다는 준법문화가 확립되어야 한다. 일단 준법정신만 바로 선다면, 불법정치자금 거래는 원천봉쇄될 수 있다. 설령 미국이나 영국의 정치자금법과 같은 훌륭한 법을 새로 제정해 놓는다해도 법을 우습게 여기는 썩은 정치문화가 지배하는 한, 검은 돈은 사라질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뚜껑 열린 판도라 상자는 지금 덮어서는 안된다. 모든 검은 돈의 재앙이 빠져나오도록 해야하고 진실을 ㅂ혀낸 다음 법대로 처단돼야 한다. 반대로 여야가 “기업 사면”이니, “고백성사후 대사면”이니 하며 어물어물 또 넘어가고 만다면, 검은 돈 정치문화의 악순환은 앞으로도 50년 내내 이나라를 정치불신과 부패로 얼룩지게 할 수 밖에 없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