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역사에서 아니 근세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민족의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했던 까닭에 넘어야 할 가장 높은 고개를 ‘보릿고개’라고 했다.먹는다는 말이 오죽이나 절실했으면 귀가 어두워지면 ‘귀먹고’ 나이 들면 ‘나이 먹고’ 더위에 지치면 ‘더위먹고’ 마음 정한 것을 ‘마음먹고’ 그 외 ‘욕’먹고, 놀려먹고, 속여먹고, 등쳐먹는다고까지 한다. 또 가족을 식구(食口)로 부르고 살가운 인사말이 ‘밥 먹었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말표현에서 가난에 찌들어온 이 땅의 한(恨)이 여실히 드러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생명체의 본능은 먹어야 사는 것이고 배가 부른 후에라야 말마따나 금강산도 눈에 뵈는 법이다. 지금 시점에 국민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여지없이 자명하다. 제발 먹고사는 걱정부터 좀 덜어달라는 것일게다.개혁 정권에 개혁은 없고 싸움만 난무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라 사정이 온통 수라장처럼 되고 있는 현실이다. 싸움판의 생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꺼꾸러뜨리고 승리의 깃발을 꽂아야 한다. 다른 수단이 있다면 일시적 휴전이나 쌍방의 이해를 절충하는 타협이 가능할 뿐이다. 이때의 절충안은 오로지 아(我)집단의 득실을 저울질한 것이지 관전자들의 이해를 따져서가 아니다. 그래서 정치지도자의 불타는 전의를 읽고 있는 관전자, 즉 국민의 마음은 먹고 사는 문제의 당면과제가 떠밀려 나는데 대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형언키 어려울 것이다.편견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더 이상 늦추어질 수 없는 민생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서 ‘진보논리’ ‘개혁논리’가 제대로 먹혀 들리 없다. 말로는 이데올로기적 냉전시대가 끝났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냉전시대의 잔재가 새로운 방향으로 부활되는 듯해서 오히려 걱정스럽다는 국민이 적지 않은 듯하다.한편에서는 또 역사를 바로잡는다고 법석이지만 그 역시 편견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땅의 역사가 대부분 역학관계로 왜곡 돼온 사정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3·1만세운동 하나만 봐도 그렇다.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했던 남쪽 역사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측면으로 몰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 받은 근대적 시민 학생 봉기라 했다. 북에서는 또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에 영향 받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민족의 독립의지를 축소키 위해 3·1운동이 일부 기독교 선교사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 주장했다. 당시 고종황제의 죽음을 계기로 일어나 수많은 농민, 유생, 학생들이 희생된 순수 민족주의 본능이 그처럼 훼손당하고 왜곡돼왔던 사실을 기억 못할 국민이 없을 것이다. 가까운 냉전시대 때의 모순과 오류를 밝히는 대목에서도 국가 기관끼리 혼선을 빚고 있는 상황이 예사롭지가 않아 신(新)오류가 발생될 위험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친일은 벗겨내고 용공은 묻혀버리는 시대를 상정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럴 때 대화와 토론의 절차가 완벽해야 한다. 그것이 곧 상생정치를 끌어내는 첩경이기도 한 것이다. 진검 승부를 지켜보는 마음
상생정치의 미련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은 그러지 않고서는 숱한 민생 현안이 풀려 나가지 않을 것이기에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할 국민 입장에서는 상생의 희망마저 포기할 수가 없는 연유다. 그런데 수도권 이전문제에 부닥친 대통령이 급기야 발톱(?)을 드러내고 양극논리로 전의를 불태우는 확실한 모습을 보였다. 살벌한 전운만 감돌고 타협의 여지는 전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대통령의 발톱을 느끼며 언제 끝날지 모를 한판 진검승부를 지켜보는 국민 마음이 어떠할지를 그리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꼭 그래야만 할 절체절명의 위기라도 닥친 것인지 속이라도 좀 시원해 봤으면 싶다. 작은 정부, 겸손한 정부를 천명했던 개혁정권이 온갖 기관단체를 만들어 몸집을 불리고 어느새 비만해진 까닭 역시 그 위기 탓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열쇠가 크다고 집이 클리 없고, 몸집 커진다고 건강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고, 자동차 한대라도 예산 없이 물넣고 다니는게 아닌데 다 외기 조차 힘든 관제단체 난립을 어떻게 고운 눈으로 볼 것인가. 서슬 시퍼래 날뛰던 군사독재정권도 국민을 두려워해서 국가 주요정책 마련에 국민적 합의를 최고의 통치적 가치로 삼았다. 하물며 참여정부가 대책은 오리무중인 채 국론을 갈래 갈래로 찢어놓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의 심장부는 ‘박근혜 패러디’ 파문이나 일으키고 있으니 기막힐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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