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낼 줄 아는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신변에 닥친 위험을 안다고 한다.특히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가축 가운데 개(犬)나 소(牛)같은 경우는 사람의 뜻을 헤아리는 슬기까지 있다고 한다.필자가 어릴 때 경험해 본 바로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농촌 마을에서 주인의 생업을 위해 힘든 농삿일을 도맡아 거들던 소가 집안 경제 문제로 다른 집으로 팔려갈 때의 모습을 우연찮게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봐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팔려가던 소의 눈빛과 걸음동작, 또 자꾸만 뒤돌아보는 고개짓이 못내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필자가 어린 마음에 이런 믿음을 갖게 된 데는 얼마 후 다른 집 일소가 아예 무판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집 농사를 위해 역량을 다했던 소가 늙어 힘 못쓰게 되면 가차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 고깃덩이로 사람을 위한 마지막 봉사를 해야 한다. 이를 약육강식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축이 생존의 법칙을 인식할 리는 만무한 일이다. 그런데도 소가 제 죽음을 예견해서 이웃에 팔려가는 소와는 아주 판이한 몸짓으로 눈물까지 흘리는 것을 보면 말 못하는 짐승이라지만 동물적 감각만큼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가 않은 모양이다.또 있다. 농촌 마을은 거의 집집마다 여러 종류의 개(犬)들을 키워왔다. 그 개들이 집도 지켜주고 주인가족의 밤길동무도 해주고 심지어 어린애 뒤보고 난 뒤처리까지 한다. 그러고는 오뉴월 삼복더위에 주인어른의 몸보신을 위해 말 그대로 개가 개맞듯이(?) 맞아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미친개를 빼놓고는 오늘까지 누구도 주인 물었다는 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을 터이고, 늙고 힘없어 괄시받던 소가 주인을 해코지했다는 말도 듣지 못했을 줄 안다.반대로 키우던 개가, 또 소가 그 따위(?) 주인을 위해 제 몸을 던진 이야기는 전설 아닌 실화로 전해지는 것이 많이 있다.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추석연휴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사람이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했다. 인간이 살신성인 정신을 추앙해 마지않는 것은 남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아는 까닭이다. 만약 오늘의 우리 사회가 살신성인의 귀감까지는 고사하고 동물세계의 약육강식 법칙만이라도 완전 배제할 수 있다면 갈등 소지가 훨씬 줄지 않을까 싶다.지금 힘 가진 자들이 힘없어 눈치 볼 때가 언제였고, 힘없을 때 편들어 주는 어른들 말씀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길 때는 또 언제였는데, 이제 힘 있다고 누구 눈치도 볼 것 없고 누구 말도 안중에 없는 듯한 세태는 분명 막돼먹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은 인간 세상에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道理)가 존재해서 일 것이다. 사람의 도리란, 간단하게는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의 은혜를 알고, 또 자신을 가르치고 지켜주고 보살펴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 것일 게다. 세상은 예부터 이 같은 도리를 팽개친 사람을 일컬어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말해왔다.그렇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개나 소는 죽는 순간까지도 저를 키우고 보살펴준 주인을 몰라보지 않는다. 비록 제 몸이 죽더라도 주인의 위험을 못 본 척도 안한다.그래서 배은망덕한 사람, 철면피한 사람을 짐승보다 못하다고 표현해 온 것이다. 사람 사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질수록 이런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 출몰할 위험은 더해지기 마련이다. 그처럼 무서운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의 후손들이 물려받는다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아찔해 할 것이다. 하지만 밝은 세상 만들기는 가족사랑부터다. 더 늦기 전에 사람 사는 이치(도리)를 회복하지 못하면 아비규환이 따로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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