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에 비해 갑절이나 길었던 추석연휴를 보내고 금주부터가 실질적인 정상업무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또한 지금이 2004년도 마지막 4분기의 시작이기도 한 시점이다.전 같으면 희망찬 2005년도 새해를 열기 위해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할 때다. 정치권 역시 한해 실적을 평가 받기 위한 당해년도 정책 마무리 작업에 들어갈 즈음일 것이다.그런데 지금의 나라 모습이 어디 그런가. 국민은 경제난에 빠져 희망 없어 하고 기업은 연말 위기를 넘기기 위해 눈이 벌겋다.오죽했으면 추석 연휴에 처가를 찾은 사위가 밥상머리에서 정부 편드는 얘기 좀 했다고 해서 장인이 먹던 밥숟갈을 놓고 일어서며 사위더러 빨리 떠나라고 했겠나. 어떤 집에서는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못하도록 함구령이 내려졌었다고도 한다.괜히 정치 얘기를 꺼내서 더 열 받을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이처럼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할 것 없이, 젊은 사람 늙은 사람 가릴 것 없이 누구도 행복해하지 않는 살벌함이 묻어났던 추석 민심을 여야 국회의원들은 분명히 확인했을 줄 안다. 그럼 그들 국회의원들의 자세가 백팔십도 달라져야 함에도 그렇지를 못하고 여야 정치권이 또 언제 그랬었느냐는 식으로 성난 민심을 틀에 짜인 아전인수식 논리에 꿰맞출 태세다. 늘 해온 것처럼 말만 앞세운 정치를 국민이 혐오한 지가 이미 오래임을 모르지도 않을 것이고, 또 매사에 남의 탓만하는 떠넘기기 정치를 국민이 신물 낸지도 벌써부터다.자칫 국민소득 1만 달러 선조차 붕괴될지 모르는 경제 위기 국면을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믿을 국민이 이제 나라 안에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분배의 개선을 내세워 경영권을 위협하고 기업 의욕을 꺾는 경제정책을 개혁으로 받아들일 국민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가진 자들의 불안 심리를 한껏 고조시켜서 그나마 돈을 국내에 잡아두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경제 살리기’라는데 누가 그 말을 믿을 것인가.더 기막힌 것은 이런 나라꼴을 야권 일각이 오히려 즐기는 듯한 눈치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말하자면 국민 당신들이 선거를 잘못해서 나라가 이 모양이 됐으니 누굴 원망하겠느냐는 표정이 때로 역력하다.그러나 여야 정치인들 제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추석민심은 한나라당을 크게 지지하거나 열린 우리당의 개혁 주장을 깡그리 짓밟아 뭉개자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먹고 살게 좀 해 달라’는 절박한 호소가 분노로 변하고 있는 민생 현장의 목소리는 여당, 야당을 구별치 않았다.그렇다면 서로 네 탓, 내 탓을 따질 여유가 없을 것이고, 된다 안된다 해서 싸울 때는 더욱 아니라는 인식을 옳게 가져야 한다.이 판국에서조차 정부 여당이 희망 있고 나아진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한나라당은 절망만을 강조하며 성난 민심을 왜곡하려 든다면 국민은 어느 쪽도 용서치 못한다. 특히 집권세력이 민심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핵심 지지층인 진보세력의 이반이 두려워 호랑이 등을 내려오지 못하고 갈 데까지 가 볼 배짱이면, 빙빙 두를게 아니라 차라리 혁명정부를 선언함이 옳을 것이다.먹고사는 문제와 더불어 국가 정체성을 우려하는 다수 국민들의 목소리가 냉전시대의 낡은 논리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정부 여당의 눈높이가 국민과 함께 맞춰져 있다고 여길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