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한국의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는 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악마의 함성이 이뤄낸 쾌거였다.붉은 악마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신명나는 축제의 굿판은 우리 국민이 세계를 석권할 수 있는 저력 있는 민족임을 세계에 보인 한바탕 큰 마당이었다. 그곳에는 학연도, 지연도, 나이도, 혈연도 따지지 않았다. 또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도 않았다.물론 개혁세력과 수구세력이 편을 가르지도 않았다. 오직 ‘필승 코리아’가 지축을 뒤흔들었다.그때 국민은 너나없이 감격해 마지않았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장래에 이 땅에서 빚어질, 국론이 갈기갈기 찢기거나 국민이 서로 적대하고 증오하는 끔찍한 상황 따위는 누구도 상상 못했을 것이다.젊음의 응집을 대견해 하고 감동한 나머지 나이든 국민들은 스스로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더욱이 나이든 죄(?) 때문에 수구파로 몰려 집에서 쉬지 않으면 반개혁 세력으로 타도 대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예기치 못했을 것이다.정작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읽고서야 화들짝 놀란 얼굴들이다. 이러다가 세상이 온통 뒤집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나타내고 국가 미래에 관한 강한 의구심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향수에 젖어 ‘그때가 좋았지’하는 자조적 탄식을 쏟아내고 ‘아 옛날이여’를 노래한다.이러니 세상은 한차례 신세대와 쉰세대의 격돌장이 될 수밖에 없다. 쉰세대의 옛날 향수가 한걸음 더해 구시대의 시스템을 찬양하는 대목에서는 오히려 개혁 명분을 역설하는 효과를 낸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옛날 개발독재의 군사정부 시절이 좋았다고 하면 당장에 유신헌법을 반대했다 해서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 가던 시절이 좋았었느냐고 공격해 올 것이다. 또 여성들이 반정부 투쟁 한다고 성 고문하고, 데모했다고 강제 입영시키고, 양심 있는 지식인을 직장에서 내쫓던 시절이 그립냐고 물으면 얼굴 들기가 민망할 것이다.그래서 쉰세대의 어설픈 향수가 이 시점에 금물이란 것이다.지금의 집권세력이 적개심을 불태우고 증오를 갖는 까닭이 자명하다. 그들 머리속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암울했던 시절의 망령들이 들끓어 세상 흐름을 지배하고 있다는 판단으로 차 있을 것이다. 이런 판에 쉰세대가 옛날 보릿고개 운운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경륜과 더불어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국가의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해 먼저 지저분한 구석을 청소하고, 양화의 자양분을 도적질 하는 악화를 구축해 내야 한다는 신세대의 주장을 기꺼이 수용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단순히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논리로 ‘옛날 그때’를 들먹여 신세대 개혁의지를 깔아뭉개려 들면 그들이 말하는 반역세력의 올가미를 벗어나기가 어렵다.국민이 신세대와 쉰세대로 갈라져 상호 적대감을 갖고서는 모든 것이 전쟁일 뿐이다. 전쟁은 폐허를 부를 수밖에 없다. 폐허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쉰세대가 신세대로부터 욕먹기를 두려워해서 눈치 보며 그저 다수 쪽으로 속하려 드는 태도는 비겁한 행위다.쉰세대는 신세대의 편협된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할 역사적 소명을 인식해야 한다. 아무래도 국가 정체성 수호는 쉰세대 몫이라는 점을 각성해서 용기를 발휘치 않으면 안된다. 그러자면 쉰세대가 지금껏 이 땅을 살아오면서 겪은 숱한 모순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바탕에서 마음의 빗장을 풀고 신세대를 관찰해야 할 것이다. 신세대 또한 쉰세대가 이 땅에 뿌렸던 엄청난 피와 땀의 흔적을 아예 무시하거나 말살하려는 듯한 오만함을 철저하게 부숴 던져야 된다.나라 정서를 존중하고 선배들의 경륜을 존경할 줄 아는 신세대, 후배들을 신뢰해서 길을 터주려는 쉰세대, 이렇게 아우러지는 사회가 최상의 개혁 가치를 생산 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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