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임채정의장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통합을 위한 ‘사회협약’ 체결을 제안했다. 궁극 목표는 경제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갈등요소를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이뤄 나간다는 복안이다.바로 그 다음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협약 체결을 수락하고 ‘올해를 정쟁(政爭)없는 해로 만들자’고 정부 여당에 촉구했다. 박 대표는 현재의 상황을 ‘민생파탄 비상사태’라고 했다. 따라서 2월 국회가 비상 민생국회가 돼야 한다며 지난해처럼 정쟁 법안으로 싸움만 한다면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 같은 여야대표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국민을 얼마만큼 안도 시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전의를 불태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다들 할 것이다.갈등이란 둘 이상의 존재들이 하나 이상의 대상에 대하여 심정적 또는 물리적으로 충돌함을 뜻한다. 갈등상황이 빚어지면 감정적 성향이 일어나 서로를 불신케 된다. 그럼 상대를 제압키 위한 실제적 행위 국면에 접어든다. 피 튀기는 전쟁도 불사해서 세상을 찢어 놓기까지 한다.인류는 고대국가를 형성한 후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문화를 중심으로 변천해 왔다. 까닭에 우리인간을 ‘정치적인 동물’ ‘경제적 동물’ ‘문화적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고대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신(神)은 정치가 필요 없고, 짐승도 정치가 필요치 않으나 인간만은 정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본능을 충족시킬 수단이 정치라고 믿은 까닭일 것이다.정치는 인간세계의 서로 흩어지는 것을 모으고 갈라진 것을 뭉치게 하는 종합성, 통합성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민주적인 방법과 실천으로 통합정치를 이루고 정의가 실현되면 국민은 당연히 편안해 질 것이다.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생활의 여유로움은 뭉치고 힘만 합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개혁의 당위성도 마찬가지다. 개혁의 옳은 목표는 법과 제도를 바로잡아 국민계층간의 갈등요소를 없애자는데 있어야 한다. 역시 국민통합을 이루자는 목적이다. 그런데 개혁하겠다는 방향이 도리어 국민을 갈라놓는 것이 되고, 그 방법 또한 반대세력으로 간주되는 쪽을 어떻게든 깨 부셔서 초토화 시키겠다는 전략에 불과함을 정치행위랄 수는 없을 노릇이다.지난 한 해 동안 이 땅에 정치가 실종됐다고 개탄해 마지않았던 것이 그런 점에서였다. 정치권도 그런 국민감정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앞 다투어 갈등을 봉합하고 정쟁을 중단하자고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안도의 가슴을 채 쓸어내리기도 전에 이제 또 여야 모두 내분의 조짐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당대회를 불과 얼마 앞둔 열린우리당의 당권 경쟁에 따른 노선 충돌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한나라당의 분열 현상이 점입가경 양상이다.박 대표의 ‘민생파탄 비상사태’ 선언이 민망해질 정도로 당내 노선 충돌이 위험 수위를 치닫고 있다. 국민은 여야 대표의 새해 각오가 자못 그럴듯해 보여 기대했던 게 사실일 것이다. 이제 나라정치가 제대로 좀 풀려서 잠재된 국민저력이 되살아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 곧이어 나타난 그들 당내문제가 여간 실망스럽지가 않을 것이다.그 같은 국민 마음을 모르지 않다면 정치권이 지금 국민 앞에 보여야 할 아름다운 그림은 오직 하나다. 말로 국민을 걱정하기에 앞서 당 내부 갈등을 조정해 내는 역할의 정치력이 발휘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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