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기업 노조에 관한 말들이 많았다. 노조간부의 사생활이 노동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항간의 수군거림이 보편의 여론으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노동귀족’이란 말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누가 봐도 허울은 분명히 노동자인데 그들 일부 노조간부들의 사는 모양이나 저변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는 지적이 이미 벌써부터였다. 많은 국민들 생각도 자연히 그런 쪽으로 굳어질 밖에 없었다.그런 차에 이번 기아차 노조간부의 ‘취업장사’사건이 불거진 것이다. 사건추이를 연일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있는 가운데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느끼는 국민감정은 의외로 그다지 놀랍다거나 경악스러워 하는 반응같지가 않아 보인다. ‘요즘 노조조끼 입기가 부끄럽다’는 대기업노조의 자성하는 소리에 크게 귀 기울이는 모습들도 아닌 것 같다.왜일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쉽게 이해가 간다. 오늘에 이르도록 우리 국민들은 그같은 비리구조에 아주 익숙해져서 충분히 면역돼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기란 누군들 어렵지 않을 것이다.과거 장기 집권했던 독재정치세력이 목숨을 걸고까지 정권을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이 나라걱정 때문이었다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권을 잡고 힘이 세지고 보니까 천국이 따로 있지 않았을 터이다.권력을 이용하려는 모리배가 나타나고 정상배가 설쳐대는 바람에 권력은 더욱 호기를 부렸다. 서슬 퍼런 독재 권력 앞에 숨죽여온 국민들이 참다못해 저항을 시작했고, 이 땅에 양심적 민주세력을 자처해 온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해 온지도 벌써 십 수년째다.10년 넘은 역사이면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남는 세월이다. 그래서인지 주위 강산은 파헤쳐지고 바뀐 모습이 분명 예전 그대로는 아니다. 그러나 권력주변의 비리와 부패행태는 여전해서 ‘그때 그 사람들’에 비해 한 술 더 뜨면 더 떴지 조금도 덜 하지가 않게 아주 발전적(?) 양상을 이어 왔다. 허탈해진 국민들이 맥을 놓을 무렵 시민대표를 자임한 사람들이 분연히 일어나 시민 직접감시기구를 만든 것이 오늘의 수많은 시민단체일 것이다.그렇게 되니 이번에는 또 유력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가 도마위에 올라있고, 일부에서는 돈과 관련한 비리소문까지 끊이지 않는다. 까닭을 설명할 필요가 없지 싶다. 모든 사회집단이 당초 목적을 수행해 내는 과정에서 스스로 힘을 가졌다고 느끼게 되면 초심을 지키기가 무척 힘들어 진다.왜냐하면 힘 있다는 시민단체가 쌓아올린 파괴력이 대단한데도 정치권력이 그들을 그냥 보고 있을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책 비호세력이 돼 줄 것을 바랄지도 모를 일이고, 또 때로는 상대정파를 공격하는 선봉역할을 기대할는지도 알 수 없을 일이다. 물론 상당한 대가를 전제해서 말이다.인간 본능을 자극하는 유혹에 언제나 초연할 장사(壯士)가 쉽지 않은 법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기아차 노조사태’는 겨우 빙산의 한 귀퉁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워내기가 어렵다. 국가장래를 책임진 정치권이 권력을 담보로 세상을 농간 하는 것이나, 극소수 민간단체가 국민을 담보로 농간을 부릴 수가 있는 것이 다 힘의 논리 때문이다.드러난 노조비리 역시 해당기업의 경영상태를 감시할 권한이 한계를 넘어 막강한 힘으로 작용한 그릇된 결과가 싹튼 것일게다. 어차피 조직 사회가 힘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라면 힘이 세질수록 부패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일 테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뚜렷한 부패 예방 시스템이 없다. 일이 터질 때마다 벌집 쑤신 듯 여론이 들끓고 도덕과 양심을 말하는 것이 고작이다. 때문에 국민은 세상이 더욱 투명해질 수 있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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