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침략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자는 정한론(征韓論)이 힘을 얻은 것은 그들 명치유신 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국교 교섭이 번번이 거부당하고 부터이다. 즉, 징계 출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면서 정한론이 강하게 일본조야에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명치유신으로 세력을 잃고 정부에 불만을 품은 사족(士族)들의 불만 해소책으로 십상이라는 판단도 있었다.그 후 ‘운양호사건’을 촉발시켜 출병으로 이어지고 조선침략의 도화선을 마련했다. 이때 조선침략의 길을 닦은 자가 ‘서향융성’이란 자이고, 침략을 성사시킨 자가 ‘이등박문’이다.그런데 주목할 것은 일본 문부성이 전쟁 패망 후에도 소학생들에게 그 두 침략의 원흉을 일본의 10대 역사적 인물로 교육시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자기네 침략사를 정당화하고 침략근성을 미화하는 행위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피해 민족으로서의 그때그때 감정적 대처에만 급급했을 뿐이다. 일본이 늘 하는 식으로 자존심을 건드릴 때마다 죽일 놈, 살릴 놈 해서 냄비 끓듯 소란을 떨고 나면 또 그만이었다. 겨우 실질 행동으로 시도해 본 게 있다면 일본제품 안사기 캠페인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그 정도로 눈이라도 끔벅거릴 왜인(倭人)들이 아니었다. 더욱이 잠깐 끓다가 곧 불씨가 사그라드는 우리네 속성을 알면서 말이다. 지금 온 국민이 분노로 들끓고 있는 독도문제도 그렇다. 그동안 총리의 신사참배를 비롯해서 일본이 취해 온 일련의 조처들을 냉정히 분석했다면 그들이 작심하고 있는 밑그림이 훤하게 보였을 법하다. 그 가운데 독도침략의 새로운 시도가 분명하게 들어 있었을 것이란 판단이 든다. 또 일본이 그 같은 밑그림을 작만하면서 예상되는 한국의 반응을 미리 계산에 넣지 않았을 리 없을 터이고, 분쟁을 지켜볼 국제사회의 눈길에 대해서도 면밀히 득과 실을 저울질해 놓았을 것도 같다.어쩌면 갑자기 벌에 쏘인 듯한 이 땅의 모습을 어차피 각오하고 넘어야 될 한판승부의 수순으로 간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분명한 속내를 냉정하게 읽어서 그들 페이스에 말려드는 일 따위는 절대로 만들지 않을 슬기와 지혜를 마련해야 한다.독도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이를 보도하는 외신들의 독도 표기가 ‘다케시마’ 표기가 압도적이다. 이는 일본의 입장이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황당하고도 기막힌 상황을 정부는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특히 미국의 주요 통신사들이 모두 다케시마를 먼저 표기한 기사를 전 세계에 서비스 한데 대해서도 국민은 무슨 말이든 듣고 싶어 할게다. 일본과의 독도 시비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 국민들 분노가 더할 것이다. 한국 외교의 실상과 현주소를 한꺼번에 여과 없이 느끼기도 할 것이다.이런 판에 한국 정부의 ‘신(新)한일관계 독트린’발표가 얼마만큼 효과를 얻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일본정부의 결자해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선언적 의미 이상을 기대할 여지가 만약 있었다면 애초부터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이 시점에 특히 우리 정치권이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 있을 것이다.근래 들어 일본이 우리를 얼마나 얕잡아 봤길래 이런 속 뻔한 짓을 획책할 수 있었겠느냐는 반성 없이는, 설사 이번 사태를 잠재워 놓는다 해도 앞으로 두고두고 같은 수모를 당해야 할 것이다.지척의 한국 국민이 온통 찢어져 싸우는 틈새를 그냥 지나칠 일본이 아닐 것이다. 이래도 국민을 계속 갈라놓을 속셈인지 이 기회에 우리 정치권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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