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필자는 모 일간신문에서 정치부 한 초년 기자가 쓴 ‘기자수첩’란을 읽었다.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출입처를 옮긴 그 기자의 요즘생활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라고 했다.전에 선(善)이었던 것이 어느새 악(惡)이 되고, 절대가치였던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돼 버리는 현실. 무엇보다 기자가 놀란 것은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똑같은 사안을 놓고, 또 같은 사람에 대해 완전히 정반대의 평가를 내린다는 점이었다. 열린우리당의 문희상 의장은 의장 취임 후 이해찬 국무총리가 아주 탁월하게 일을 잘 한다고 주위에 추켜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는 지난해 10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과정에서 이 총리의 ‘차떼기당’공격 후 이미 정치적으로 ‘파면된 총리’로 여기고 있는 판이다.지금 여당이 한창 추진 중인 공수처(공직부패수사처)문제만 해도 두 당의 입장은 알려진 대로 지극히 상반된다.열린우리당은 고위공직자 및 판·검사들의 부패조사를 전담하는 기구가 생기면 국민들이 가장 환영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공수처가 무소불위의 권력기구가 될 것이라는 견해다.이처럼 같은 문제를 정반대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데 대해 기자는 놀라움을 나타냈다. 이쪽 말을 들으면 이쪽이 옳은 것 같고 저쪽 말을 들으면 또 일리가 있는 것 같은 그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했다고 했다.맞다. 정치권을 따라 국민까지 최면에 걸리지 않고서는 오늘의 한국사회가 이토록 날을 세우고 쪼개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이 땅의 정치집단은 정체성을 크게 중요시 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 편이 못되면 무조건 적이라는 관점으로 몰아붙이는 독설정치는 과거 패거리정치가 오히려 애교스러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반대론자들을 적으로 만들어 놓고 대중의 사나운 눈길을 그쪽으로 트려는 최면 병법은 미국의 이솝우화 한 토막을 떠올리게 한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날 베짱이가 깡통을 들고 개미집을 찾아들어 먹을 것을 구걸한다. 이때 어른개미가 “여름에 우리가 땀 흘려 일할 때 당신은 일 안하고 노래만 읊었으니 눈 속에서도 계속 노래나 읊으시지 그래?”하고 일갈한다. 머쓱해서 뒤 돌아선 베짱이를 젊은 개미들이 쫓아 나와 불러들인다. 그리고 젊은 개미는 어른개미에게 이렇게 말한다.“우리조상들은 대대로 근면하고 절약하여 먹을 것이 집안에 쌓였습니다. 이제 쌓을 공간도 없으니 베짱이 아저씨에게 먹어 달라고 해서 공간에 숨통을 트십시오.” 덕분에 베짱이는 개미집의 손님이 됐다. 그 겨울은 젊은 개미들에게 신나는 나날들이 아닐 수 없었다.주문만하면 재즈곡이며 트위스트곡이며 뭣이건 켜준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베짱이는 개미집의 창고를 돌아보면서 묵은 식량이 발효해 술이 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젊은 개미들에게 술을 가르친다.처음 조심스레 핥아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노래가 절로 나온다. 노래가 나오니 춤이 나오고 먹고 마시며 마냥 놀아댄다.젊은 개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일하는 것보다 좋기만 하다. 베짱이는 또 침대에 깔아놓은 대마(大麻)잎에서 하얗게 발효된 가루를 발견하였다. 이 가루를 피워본 젊은 개미들은 또 다른 환락세계를 맛본다. 환락속의 젊은 개미들은 어머니 개미가 다른 젊고 예쁜 여인으로 보여 추파를 던지고 아버지 개미가 그녀에게 달려드는 치한처럼 보여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개미집안은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만다.그 겨울 한동안에 개미 군단의 전통적 근로정신은 완전히 붕괴되고, 이를 개탄한 어른개미는 현실과 신념과 모순에 고민한다. 그 고민을 잊고자 어른개미도 술을 마시고 대마초를 피우고 젊은 개미들과 춤추며 환락 속에 쇠잔해 갔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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