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나 동료끼리는 물론 아들이 아버지동무를 감시하고 아내가 남편동무의 언행을 살펴 고발토록 하는 괴뢰집단, 어릴 적 학교에서 귀 따갑게 들었던 북한 실상이다. 그래야 배급도 많이 받고 반동 가족으로 낙인이 안 찍혀 제대로 연명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이 북한 땅이라고 배웠다.그래서 누가 누구를 감시하지 않고 인정 넘치는 우리 땅 대한민국 체제를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때가 1950~60년대였으니까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목숨 걸어 지켜야 할 이곳 남쪽 사정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였다.먹고 살기 위해 장바닥에 퍼질고 앉아 눈 뒤집히게 하는 경품을 미끼로 순진한 시골사람들 속여먹는 야바위꾼들이 수도 없이 등장했다. 속임수 도박 장기 뜨기에 돈 걸고, 심지 뽑기나 종지 잔 뒤집어 놓고 빠른 손재주로 눈 홀리려는 수법 등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짓거리가 그때는 통했었다.또 시골아지매풍 네다바이꾼들이 산지(産地)토속어를 흉내 내며 가짜 꿀 같은 것을 지역 특산품으로 속여 파는 행위가 기승을 부렸던 때도 있었다.그래도 우리 국민은 그걸 그다지 범죄시 한 것 같지는 않다. 속은 것이 분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그 일로 고소 고발장을 썼다는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은 크게 없다. 그게 마음 약해서였는지, 너나없이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그러려니 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속고 속이는 세상 물정을 교훈으로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키웠다는 점이다.그래서 나이든 분들, 인심 훈훈했던 그 시절 ‘아-옛날이여’를 노래하는 모양이다. 만약 그때도 매사에 신고 포상제를 만들어 놓고 서로 감시토록 해서 물고 물리도록 했다면 오늘 누구도 그 옛날의 향수를 입에 올리려고 않을 것이다.불과 얼마 전까지 경찰이 교통 범칙 신고 포상제를 운용해서 직업적 ‘카파라치’를 양산케 했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모르긴 해도 많은 사람들이 무척 찜찜하고 개운치 못한 기억을 가졌을 줄 안다.이탈리아 영화(달콤한 생활)에 등장한 신문사 카메라맨에서 유래한 이 파파라치(paparazzi)는 이탈리아어로 ‘파리처럼 웽웽거리며 달려드는 벌레’를 말한다. 그때부터 유럽에서는 개인 프라이버시에 접근해 특종사진을 노리는 직업적 사진사를 파파라치로 칭했다.그런 것이 1997년에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애인과 함께 탄 차를 뒤쫓는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가 자동차 충돌 사고로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파파라치에 대한 비난여론이 세계적으로 거세졌다. 그런데 이 땅 대한민국은 지금 파파라치 전성시대를 개막코자 한다.기업체나 개인 고소득자의 탈세 탈루 사실을 제보(세(稅)파라치)하면 추징액의 일부를 보상하고, 성폭력범죄를 신고(성(性)파라치)하면 돈 주고, 불량식품신고(식(食)파라치)에도 돈으로 포상하고, 선거사범 신고하고 보상받는 ‘선(選)파라치’, 새 신문고시법 위반행위 신고해서 돈받는 ‘신(新)파라치’, 쌀 원산지 허위기재 신고해서 돈 받도록 하는 ‘쌀파라치’까지 등장시키는 판이다. 성과가 만족스러운지 정부, 자치단체, 증권거래소, 금융감독원 할 것 없이 사회 전 분야에서 앞으로도 파파라치를 더 확대 양산시킬 조짐이다. 그 효과는 인터넷에 포상금 전문가이드 사이트가 개설돼 유료 운영되고 있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인터넷상에 듣도 보도 못했던 파파라치 전문가가 나타나 증거수집 방법과 유의사항을 교육하는 등 노하우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이렇게 되면 미끼를 던져 놓은 쪽은, 미끼를 악착스럽게 물겠다는 쪽과 미끼에 물리지 않으려는 쪽의 쫓고 쫓기는 치열한 암투를 느긋이 지켜보며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다.그럼 아예 이 참에 각 단속기관 일선 감시 공무원들을 없애버리고 그 예산마저 파파라치들 몫으로 하자는 주장이 조만간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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