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儒家),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道家), 여기에 겸애설(兼愛說)의 묵가(墨家)정도가 전통적 사상의 큰 흐름일 것이다. 제각기 차지하는 이들의 사상적 비중이 큰 만큼 어떤 현상을 놓고 그들이 내리는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판이했다. 유가의 입장에서 공자는 더할 수 없이 큰 인물이다. 맹자는 ‘사람이 생겨난 이래 그분보다 뛰어난 인물이 없었다’고 했을 정도다. 반면 묵가에서 보는 공자는 남의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 역적과 함께 했으니 의롭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힌 사람으로 평가한다.장자 역시 장자의 「도척편」에서 공자는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엉터리 도(道)를 배워가지고 세상 언론을 장악해서 후세를 잘못된 가르침으로 잘못 인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장자는 공자를 일컬어 큰 옷에 넓은 띠를 두르고 다니며 터무니 없는 말솜씨와 위선으로 천하 군주를 속여 부귀영화를 얻고자 한 도둑 중에서도 가장 큰 도둑이라고까지 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왜 자기(장자)만 도척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분개해 했다.후세의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 맹자를 비롯한 유가의 입장에서 내린 공자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장엄한 인물로 높였다고 한다면, 묵자나 장자의 공자 평가는 또 지나칠 정도의 부정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진 것이라는 판단도 당연히 들 것이다. 이렇듯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평가는 모두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부침을 거듭하긴 했지만 공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성인’이라는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특히 1930년대 중국은 유가에서의 주요 덕목인 ‘예의염치’를 통치기반 유지를 위한 기초 수단으로 삼았었다. 말하자면 죽은 공자를 국민생활 개조 운동에 끌어들였던 것이다.뜬금없이 웬 공자 타령이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근자 치열한 설전으로 이 땅을 달구고 있는 ‘박정희 논란’이 점차 점입가경을 치닫는 데 대한 우려가 매우 깊다. 상태가 여간 심각하지가 않다. 입씨름을 하다하다 안되니깐 순발력(?)을 드높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생을 둘러싼 만화 전쟁까지 일으킬 조짐이다. 논쟁중인 그의 친일행적과 좌익 활동, 여성 편력 등을 주 소재로 한 ‘만화 박정희’가 박정희 혼(魂)죽이기에 이미 나선 가운데, 박 전대통령의 업적과 인간적 면모를 다룬 ‘인간 박정희’라는 만화가 곧 출간된다고 한다.잘못된 역사 인식이 국민정서나 국가장래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만큼 큰 가에 대한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국민이 분열을 일으키고, 더구나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후 세대들이 겪는 사상적 혼란은 막대한 국력 손실을 담보할 수밖에 없다.요컨대 통치의 역사는 첫째 피해자의 등불 밑에서 쓸 수 없고, 둘째 수혜자의 등불 아래서 써서도 안 되며, 셋째로 승리자가 밝혀 놓은 불빛 아래서는 더욱 쓸 수 없는 이치를 생각해야 한다. 이 같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통치역사 들추기는 언제든 또 다른 힘의 논리에 의해 한낱 휴지 취급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도 대학시절 학생 데모에 앞장섰다가 체포되어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놓은 법에 의해 처벌 받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흔(傷痕)을 안고 있는 처지다. 이만하면 대내외적 통치효과를 따지기 이전에 군사 정권에 대한 무차별적인 적개심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여건이었을 터다. 그럼에도 나는 그 같은 적개심을 버린 지가 오래이다. 그건 내 어린시절 보릿고개 넘기가 너무 힘겨워 한숨 짓던 고향 어른들, 또한 쌀 한 톨을 아껴 살던 내 부모님의 살림살이가 활짝 펴진 모습을 보면서부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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