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20~30년 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먹고 살만하고,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고, 세계10위권 국가가 되면 20~30년 전에 노 아무개가 과학을 이해하고 조그만 지원을 했던 대통령으로 기억되면 기쁠 것’ 지난 2003년 12월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실을 비밀리에 방문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황교수로부터 대통령 임기 중에는 어떤 결과도 안나올 것이란 답변을 듣고 했던 말이라고 황교수가 뒤늦게 소개했다. 지도자의 내면의식이 특히 대통령의 정신세계가 다방면에 걸쳐 이러하다면 오죽이나 다행이겠는가? 지난 1989년부터 최근까지 무려 59차례나 북한을 오가며 대북 경협사업을 펼쳐왔던 재미사업가 金한구씨는 자신의 북한 사업 체험기 ‘아, 평양아…’에서 북한의 잘못된 버릇이 한국의 대통령들과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자기 임기 중에 한건 올리겠다는 욕심에 북한 말을 너무 쉽게 들어준 것이 북한의 못된 버릇을 키웠다’는 대목이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의 솔직한 내면 의식과 외적 작용이 도저히 같을 수가 없는 것 같다.근자 집권여당의 현실정치가 재야파와 친노그룹, 실용파로 나뉘어 3각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나, 실용과 개혁의 2중 충돌이 일어나는 요소가 다 대통령의 내면 정서와 외적 작용이 일관되지 못한 까닭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내면의식과 다르게 나타나는 외적 작용에는 반드시 그걸 부추기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 측근으로 불리는 세력은 몸을 한껏 낮추고 경거망동을 안해야 우선 나라가 덜 시끄러운 법이다.작금의 나라 안 소란이 힘 있다는 집권세력 가운데 나라를 전체로 묶어 보지 않고 이기적으로 나누고 편이적으로 갈라보는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바다. 집권세력이 집권 전리품으로 나눠 가진 계급과 감투가 국민이라는 자궁에서 나온 것이라는 인식이 그들 내면세계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역시 한국의 역사는 왕의 역사, 귀족의 역사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우리 한민족 역사에서 다만 한 가지 국가 민족이 함께 이룩한 업적이 있는 것은 기적적인 가난 극복이었다. 이때도 치열한 국민적 갈등을 수반치 않았던 게 아니다. 가고자 하는 목적이 다르면 각기 다른 소리를 내게끔 돼 있다. 그러나 기필코 가난만큼은 극복해야 한다는 목표가 공통분모를 이끌어내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현실로 낳은 우리 민족이다.그 덕에 지금까지 나라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냉소적 평가가 없지 않다.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기업이 나라’라고 표현해서 ‘달라진 대통령’소리를 들은 적 있다. 이때 많은 국민들은 노대통령의 내면 의식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성급한 판단까지 했었다. 그게 아니라면 대통령의 내면 의식과는 별도로 최소한 시야를 넓힌데 따른 상당한 외적 작용이 일어 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그래서 국민이 잠시 희망을 가져 봤던 게 사실이고 실질적 측면의 반짝 효과도 있었다. 기업들 표정이 표 나게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지난 연초에는 국내 소비경제가 모처럼만에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아도 보였다. 그 바람에 근거 없는 경제 낙관론이 힘을 얻기도 했다. 그만큼 통치자의 말 한 마디, 일거수 일투족이 일으키는 파장효과는 지대한 것이다. 이는 비단 대통령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가 정책 결정에 영향력 깨나 행사한다는 정권 실세들이 말을 아껴야 하는 이치를 모를 사람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 위정자들의 막말 행진에는 거침이 없다.국민은 위정자들의 가슴속 의식을 들여다볼 수단과 기회를 갖지 못한다. 단지 그들의 외적 작용을 지켜 볼 따름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