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찰을 해보면 민심이 흉흉할 때 닥친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세침략으로 나타났고 또 하나는 민란이었다. 이는 우리뿐 아닌 동서양 모든 나라의 역사가 교훈으로 입증한다. 때문에 바른 통치를 위해서는 민심을 옳게 읽는 것이 첩경이라고 한 모양이다. 비록 민심이 원하는 바가 시대변화에 못 미치거나 나라 미래를 더디게 하는 요소가 있다고 느껴져도 민심흐름을 따르는게 정치 순리라는 게다. 우리 역사에는 세상을 한번 바꿔보자는 욕망으로 혁명을 꿈꾸고 성공한 영웅도 있지만 실패한 효웅(梟雄)도 많다. 우리는 흔히 영웅과 효웅을 가르는 것이 운명이라고들 말한다. 운명의 여신이 역사를 장악하고 현재를 움직이며 미래를 엮어간다는 운명론 말이다. 난세를 질풍노도로 달려간 천하장사 항우(項羽)도 운명의 여신 앞에서는 피눈물을 흘리며 애첩 우미인을 끌어안고 자결을 해야 했었다. 그러나 과연 이 같은 역사 속 난세의 주인공들이 운명에 희롱 당했던 것일까? 살피면 자신이 뿌린 씨를 거두는 자업자득의 결과로 그 종말의 명암을 가른 흔적이 뚜렷하다.예컨대 후삼국시대 때 민심의 중심에 있었던 궁예왕의 처참한 말로는 분명히 스스로가 준비해서 만든 운명이었다. 또 명나라와 금나라 사이에 끼인 약소국의 현실을 꿰뚫어 조야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중적 실리외교를 꾀해 백성의 안전을 도모 했을 뿐 아니라 부왕인 선조왕의 의심을 받던 이순신장군을 옹호해서 영명한 군주로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광해왕이 비참한 종말을 맞은 것도 같은 이치다.우리가 절대 권력을 경계하는 이유가 권력 맛에 취하면 통치의 도(道)가 민심가운데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그 같은 동서고금의 권력 속성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는 민심에 힘입어 정권의 위기를 넘긴 사례도 없지 않다. 더 말할 것 없이 지금의 참여정부가 탄핵정국을 초토화시키고 한때 거대여당으로 떠올랐던 배경을 모를 국민이 없다. 현 정권이 그때의 민심을 간직해서 겸허한 자세를 일관해왔다면 정치현실이 오늘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이미 바닥에 나뒹굴어진 국가보안법을 다시 폐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여권은 아마 지난 8·15때 북한과의 광복60주년 경축공동행사를 치르면서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국민 다수의사와는 상관없이 또 한 차례 밀어붙일 요량이다. 경축행사를 끝내고 북한대표단이 떠난 후의 대한민국 모습은 한치 변함없이 그대로다. 오히려 남북화합의 축제분위기를 이끌어낸 노무현대통령의 국민지지도가 종전의 20%대에서 더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각 언론 여론조사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자명하지 않은가. 많은 국민들 생각은 과거사 뒤지기에 크게 흥미로워 하는 것도 아닐 테고, 북한구호를 즐기는 것도 아닐 것이고, 지금까지 이 땅을 지켜온 국본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148명의 장차관급이 포진해 있는 거대정부가 돼놔서 그런 국민생각 쯤은 얼마든지 돌려놓을 수가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속내를 모를 일이다.하긴 맹수는 병들어 아파도 아픈 척을 않는다는 말이 있긴 하다. 어쨌든 지지도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 대해 민심 반란이라는 인식은 행여라도 갖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적대적 언론이 민심을 부추긴다는 생각에 치를 떨고 있는 집권층 분위기다. 그에 앞서 ‘반란을 방지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럴 마음은 집권층 내부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