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易經)에서는 아주 절친한 친구관계를 일컬어 ‘금란지교’라 했다. 즉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예리하기가 금도 자를 수 있으며 동심(同心)은 그 향기가 난(蘭)과 같다」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같은 뜻의 우리말에 「부모팔아 친구산다」는 구절이 있다. 또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인간사회는 교우관계를 중시했다.물론 사람마다 살아가는 가치관이 같을 수야 없다. 더욱이 물질만능주의에 젖어있는 사회에서는 친구가 오히려 경쟁과 적대의 대상일 수가 있다. 오로지 출세하고 돈이 있어야 최고라는 인식 때문이다.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돈이 많아 부자이기보다 친구가 많아서 마음이 부자인 사람으로 대우받기를 원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폭넓은 인간교류는 생활 속 유머를 잃지 않게 하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게 할 뿐더러 공감대를 확대시키고, 남의 정서를 흡수함으로써 사고의 경직을 방지해준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지금은 타계했지만 이 나라 경제부흥에 절대적인 획을 그은 모 재벌그룹 창업주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교류를 통해 나는 많은 소득을 얻었으며 그것을 기업경영의 창의적 에너지로 활용했다. 기업은 인간을 위한 인간의 단체이다. 이기심을 버린 담담한 마음, 도리를 알고 가치를 아는 마음, 모든 것을 배우려는 학구적인 자세와 향상심,…」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올바른 기업의 의지, 올바른 기업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했던 그의 말은 두고두고 반추할 가치가 있다.그의 이 같은 기업철학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은 서로 원수처럼 미워하지만 같은 배를 타고 물길을 건널 때 바람을 만나면 서로의 구원함이 마치 왼손과 오른손이 하는 것과 같다고 한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이치까지 꿰뚫은 것이다. 적끼리도 같은 배를 탈 때는 서로 협조해서 풍파를 벗어나는데 하물며 친구사이에야 두말할 것이 없다.일본에서 유래해 우리정치인들 사이에 흔히 쓰이는 말이 있다.「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의원은 선거에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는 정치인들 스스로가 정치권력만을 향해 질주하다가 권력에서 소외됐을 때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처지를 가감 없이 알고 있다는 뜻일 게다. 우리속어에 ‘정승집 말이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서지만 막상 정승이 죽으면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어느 나라이고 간에 사람사는 세상 물정은 다르지가 않은 모양이다.부(富)를 가진 자가 재산을 지키고 늘리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것이나, 권력 가진 자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사생결단을 서슴지 않는 것이나, 모두가 가졌던 것을 잃고 난 뒤에 닥쳐올 보복이나 소외감을 두려워한 나머지일 것이다. 만약 주위에 한결같은 마음을 주고받을 친구가 여러 명 있는 사람이면 그처럼 생각이 경직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같이 명퇴니 뭐니 해서 ‘젊은 노인들(?)’이 늘어가는 사회 환경에서 느끼는 바가 크다. 한참 일할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사람이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채 많은 친구들 도움으로 활기찬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새로운 향기가 나는 듯하다. 반면에 따르는 무리가 그렇게 많아 보였던 사람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나오니까 외톨이로 시간 죽일데조차 마땅치가 않아 어깨 처져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래서 친구의 향기가 난초 같다 했던가.기업도, 국가도 인간을 위한 인간의 단체임에 분명하다. 그러면 인간관계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없을 것이다. ‘금란지교’를 생각케 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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