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8일에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5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축하행사가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 전대통령 측은 2000년 12월 노벨상 수상 후 매년 가졌던 소규모 자축행사와는 달리 이번에는 국민의정부 때 요직에 있었던 500여명의 ‘DJ맨’들을 모두 초청할 것이라고 한다.DJ측은 이번 행사를 대규모로 기획한 것과 국정원 도청파문이 무관하다고 했지만, 국민의정부시절 광범위한 불법도청의 책임 때문에 전직 국정원장 두 사람이 일시에 구속돼있는 상황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날 행사에는 독일통일의 주역인 바이츠제커 전독일대통령이 ‘한반도평화와 독일통일의 교훈’을 주제로 한 특별강연을 할 것이라 한다. 또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김 전대통령과 바이츠제커 전대통령의 대담내용을 방송하는 계획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외에도 노벨평화상 수상 의미를 높일만한 프로그램을 장만중인 모양이다.그렇다, ‘노벨평화상’ 그 얼마나 값지고 고귀한 것인가, 우리가 자라고 살아오는 동안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나라를 얼마나 부러워했는가, 특히 평화상을 받는 위인(偉人)에게는 신(神)적 영역을 느낄 정도로 숙연한 마음이었다. 그런 노벨평화상을 5년 전 우리나라의 대통령 김대중이 받은 것이다. 감격에 겨워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측근 인사들은 이제 아무런 여한이 없다며 남은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를 끝내고 더욱 국민화합과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여생을 바치는 일이라고 했었다.그런데 정권을 놓자마자 기이한 일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정일과의 회담대가로 비밀리에 5억 달러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서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됐었고, ‘숨겨둔 딸’문제가 불거졌는가 하면 ‘무차별 불법도청정권’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도청정치와 관련, 정권의 두 수장급 하수인이 구속됐고 참모급이었던 또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터다. 그뿐 아니다,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가 김정일 답방을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이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빚어질지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다.이런 마당에 거창하게 펼쳐지는 노벨상 5주년 자축행사가 다수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동교동사단이 그처럼 결속을 나타내고 흥겨운 잔치마당을 유도해서 자칫 국민감정을 더 차갑게 할 때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노벨평화상 수상 5주년을 맞아 국민평화와 통합을 위한 봉사를 선언하고 구체적 실천에 나서는 편이 훨씬 옳은 처사일 것이다.굳이 떠들썩하게 축하행사를 열지 않아도 이 땅의 백성들은 DJ노벨상의 가치(?)를 안다. 알기 때문에 DJ의 국민통합을 위한 사심 없는 자세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호에서도 지적했듯이 먼저 지역감정의 결자해지(結者解之)정신을 심각히 발휘해야한다. 그러자면 과거의 정적(政敵)관계, 경쟁관계로 축적된 앙금을 털어낼 용기가 전제된다. 그래서 YS와의 화해가 역사적 책무라고 했던 것이다.다행히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만나서는 박 대표가 ‘통합정치 실현의 적임자’라고 추켜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전대통령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아주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그 같은 아량이면 김대중 전대통령은 충분히 노벨평화상 수상자다울 수 있다. ‘나의 정치를 계승한 사람들’에게 지역냄새 물씬 풍기는 지지기반 복원을 주문할 일이 아니다.추상적이지만 DJ가 오른손을 YS와 맞잡고 왼손에는 박근혜대표의 손을 포개서 전국 순회에 나서있는 그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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