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과 한국 여인사이에 출생한 혼혈인에 대한 멸시와 천대가 문제된지는 이미 오래다. 거기에 더해 근년엔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들어온 동남아 등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야비한 행패 마저 간간히 드러나고 있어 국제적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은 경제규모에서 세계 14위 부자나라로 우뚝섰다. 하지만 40여년전만해도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6·25 기습남침으로 폐허속에서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 다행히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인종과 피부 색깔을 초월한 경제원조로 추운 겨울에 얼어죽지 않고 겨우 연명해 갈 수 있었다. 당시 외국의 지원은 산업화의 종자돈이 돼 부자나라로 성장케 했다.

하지만 남의 나라 도움으로 부자된 국민이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를 괄시한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못하는 격이다. 네팔에서 입국한 노동자 A씨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막노동에 취업하였다. 그는 6년동안 소 창자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빼내는 일을 했다. 악취로 구역질이 나고 두통이 심했지만 모국에 두고 온 처·아들·딸을 떠올리며 참고 견뎌냈다. 그러나 6년동안 월급은 10만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결국 작년 8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퇴직금을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회사측은 “그동안 준 월급에 포함돼 있다”며 거부했다.

그밖에도 그의 네팔인 동료 P씨 등 5명도 같은 지역 다른 회사에서 일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5년 근무 후 귀국코자 퇴직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그들에게 받지도 않은 퇴직금을 받았다는 수령증에 서명하라고 강요했고 당연히 그들은 서명을 거부하였다. 하지만 다음날 그들이 퇴사해 숙소로 돌아와 보니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작년 강제로 출국당했다. 그들은 회사측이 퇴직금을 주지않기 위해 회사측만 알고있었던 집주소를 신고하였다며 “사장이 나쁘다”고 원망했다.

과거 흑인 혼혈인에 대한 인종적 차별도 심했다. 흑인계 혼혈인인 김선주(가명·여34)씨는 의정부의 한 업소에서 17년째 밤무대 가수 신세를 면치 못하고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거리 육상선수로 1등을 독차지하였다. 하지만 그는 피부가 검다고해서 전국체전 출전도 허락되지 않았다. 육상부 어머니들은 “왜 흑인과 우리 아이를 같이 훈련시키냐”며 항의하였고, 동기 선수들은 김 선수 몸에서 냄새난다며 팀에서 빼달라고 요구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혼열인 김씨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엿한 한국 여인 효녀이다. 그는 밤무대에서 받는 월200만원 중 100만원은 빚을 갚고 40만원은 홀어머니 병원비로 지불하며 19만원은 월세를 내면서도 극진히 어머니를 모신다. 흑인계 혼혈아로서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강수일 선수도 남다른 한국인 효자이다.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홀로 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연봉도 모두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시켰다. 그는 “내가 사는 이유는 어머니를 잘 모시기 위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눈물겹도로 효성이 지극하다. 강씨나 김씨 또는 네팔의 A씨나 P씨는 그들을 차별하고 착취한 ‘나쁜 한국인’ 보다 착하다. 그리고 효성도 지극하다.

이제 한국도 다인종 사회로 가고 있다. 작년 5월 1일로 외국인 국내 거주 인구는 110만6884명이다. 그들중 저숙련 외국노동자수는 65만명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온 외국 여인들도 크게 늘고있다. ‘나쁜 한국인’들은 불쌍한 3D 업종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떼먹는가 하면 피부색깔이 다르며 한국말이 어눌하다고 차별하기도 한다. 그들 모두를 내 형제자매처럼 따뜻하게 감싸는 온정이 유난히도 눈 많고 추운 올 겨울 더욱 통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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