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실의 바보”라는 말이 영어권 나라에서 자주 인용된다. 처음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찬 물이 쏟아져 깜짝 놀라 뜨거운 물로 확 돌렸다가 또 놀라 다시 찬물로 획획 돌려대는 바보짓을 뜻한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 차분하고 정제된 대응 보다는 충동적으로 요동치며 일을 망친다는 말이다.

요즘 한나라당이 제기한 사법개혁안을 둘러싼 법원측과 한나라당의 공방전을 보면서 ‘샤워실의 바로’를 떠올리게 한다. 일부 법원 판사들의 반성 없는 편파 판결, 참다못해 분노한 국민들의 격렬한 사법부 비난, 한나라당의 파격적인 사법개혁안 제시, 그에 대한 사법부측의 감정적 반격, 등으로 난타전이 벌어졌다.

친북좌익 정권 10년 동안 일부 판사들은 이념에 치우쳤거나 튀기 위해 법관으로서 객관성을 잃은 채 편향 판결을 서슴지 않았다. 문제의 판사들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지난날의 속성대로 나갔다. 올 들어서만도 단독판사들은 강기갑 의원 국회 폭력 무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시국선언 무죄, MBC PD수첩 광우병 왜곡 보도 무죄, 작년 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해임 위법 판결 등이 그것들이다.

많은 국민들은 판사들의 편향 판결에 격노하였고 여기에 사법부는 진작 납득할만한 개선조치를 적극 취하고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우리법연구회’를 비롯한 판사들의 조직적 반발이 두려워서 였는지, 아니면 사법부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 때문이었는지, 들 끓는 민심을 가라앉힐만한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누구든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할 땐 필연적으로 외부의 간섭을 자초하게 마련이다. 한나라당의 3월 17일 사법제도개선안은 사법부가 자정(自靜) 노력을 보이지 않은데 대한 대응 조치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개선안도 일부 한쪽으로 기운 내용을 담고 있다. 샤워실에서 찬물에 놀라 뜨거운 물로 수도 꼭지를 확 틀어댄 느낌이다. 현행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4명으로 대폭 증원시키기로 한 대목 부터 그렇다. 대법관 수를 10명 더 늘려 한나라당 입맛에 맞는 대법관으로 충원하려는 의도로 의심받기에 족하다. 또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제한하기 위해 검찰·변호사협회·학계인사 들로 구성된 법관인사위원회에 심의기능과 의결권을 부여키로 한 것도 한 쪽으로 기운 감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한나라당의 사법개혁안은 시안(試案)이라는 데서 앞으로 사법부를 비롯한 관련기관들과의 협의를 거쳐 얼마든지 조종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측은 한나라당 시안에 충동적인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박일환 법원 행정처장은 지난 18일 대뜸 성명서를 통해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 마저 잃은 처사”라고 반박하였다. 박 처장의 성명서야 말로 집권당의 개혁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 마저 잃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그밖에도 사법부의 인사 운영 개선은 “마땅히 사법제도의 운용을 책임지는 사법부가 주체되어야 한다”며 개혁 보다는 기득권 보전에만 급급한 감을 금치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반발은 ‘샤워실의 바보’를 연상케 한다. 뜨거운 물이 나오자 자기 보호적인 본능으로 수도꼭지를 반대반향으로 확 틀어 재낀 행태 그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일부 판사들이 편파 판결을 내리고 사법부가 기득권을 지키려 하며 한나라당의 개혁안도 다소 한쪽으로 쏠렸다는 점이다. 서로 ‘샤워실의 바보’같이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냉정하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말도 많은 사법부를 건강하게 바로잡는데 모두 지혜를 모아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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