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시대의 ‘위원회 공화국’을 닮아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작은 정부’를 강조함으로써 정부 기구의 비대화 폐단을 각인시켰다. 새 정부는 출범하면서 전 정권의 ‘위원회 공화국’을 청산하겠다며 573개 위원회들 중 273개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퇴출대상의 위원회들이 적잖게 정부 언저리에 혹 같이 붙어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없어도 될 위원회들을 새로 만들어내고 있다. “남의 못된 버릇을 욕하며 배운다”는 속담처럼 전 정권의 흠을 탓하면서도 따라 배운 격이다.

‘사회통합위원회’ ‘미래기획위원회’ ‘국가경쟁강화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국가브랜드위원회’ ‘다문화가족위원회’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국가위기관리센터’ 등을 새로 설치하였다. 앞으로도 재정건전성관리위원회’ ‘상설 특별검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경찰·검찰 개혁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 포스(TF)’ 등을 둘 계획이다.

상당수 위원회의 위원장들은 이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거나 대선 때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노무현 정부 때의 낙하산 인사와 위인설관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국가브랜드위원회’는 그게 그것 같아 잘 구별되지 않는다.

‘국가경쟁력강화’하려면 ‘국가브랜드’를 높여야 한다는데서 두 위원회의 책무가 겹칠 수 밖에 없다. 더욱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한 것은 ‘사회통합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첫 핵심과제로 내놓은 대목이다. 이 위원회는 10대 핵심 과제들 중 하나로 ‘북한 산림녹화’를 올려놓았다. 생뚱맞은 북한 나무심기는 ‘사회통합위원회’의 본령을 떠난 것으로서 이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기 위한 과제로 추측된다. 이 대통령이 취임 초 남한이 “북한 산림녹화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공언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그렇다. 이명박 정부의 위원회 양산은 한 가지 특성을 지닌다. 큼직한 사건이 터져 나올 때 마다 그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위원회란 것을 급조해낸다는 것이다. 마치 위원회 신설자체를 대응책의 대안으로 착각한 듯 싶다. 낫선 위원회 급조 보다는 기존의 전문 관련 기관들을 통한 범 정부적 차원에서의 유기적이며 치밀한 접근이 더 효과적이며 효율적이다. 신설 위원회는 관료들에게 신선한 발상을 자극할 수 있으면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을 띄울 수 있다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위원회 과제들은 위원회 없이도 기존의 전문적인 정부 관료체계와 자문기구에 의해 충분히 강구될 수 있다. 위원회를 연다면서 정책입안과 집행에서 신속성과 효율성을 떨어트릴 수 있으며 중복될 수 있다. 정부와 위원회가 서로 쟁점을 미루다 시급한 과제가 공중에 뜰 수 있다. 위원회는 정부가 입안한 정책을 추인하거나 정당화해주는 들러리로 맴돌 수 있다.

‘위원회 공화국’으로 이름난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초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라는 것을 신설하였다. 전적으로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별도 위원회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 소득격차는 해소되기는 커녕 도리어 역대 어느 정권 때 보다 더 심화되었다. 위원회란 것이 국민 세금만 축낼 뿐, 없어도 될 혹이 된 사례를 입증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엔 ‘고소영’ ‘S 라인’ 인맥이란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중반으로 접어들면서는 ‘위원회 공화국’으로 간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정부는 큰 일이 버러질 때 마다 만병통치약 처럼 위원회를 찍어내선 안 되고 아직까지도 손대지 못한 전 정권의 위원회들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던 대로 ‘작은 정부’를 실천하기 위해서 이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는 독일 에른스트 슈마허의 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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