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6·2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참패한 후 대기업을 때리며 중소기업 옹호로 돌아섰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대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요구하였다. 그는 “대기업 CEO(경영인)의 어려운 계층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더니 “재벌 금융사의 폭리”를 개탄하였다.

이어 7월 들어서는 “청와대가 삼성·LG 같은 기업 키워주려고 녹색성장 추진하는 줄 아느냐”며 “대기업은 빼고 행사에도 대기업 CEO들 대신 중소기업 대표들을 포함시키라”라고 지시하였다. 그는 또 “대기업들은 미소금융 같은 서민정책에 적극 동참해 사회적 책임을 다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였으며 “전경련은 대기업의 이익만 옹호하려는 자세는 안 된다”고 힐난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보다 더 대기업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 표출이었다.

이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기획재정부장관, 지식경제부장관, 방송통신위원장, 중소기업청장 등이 줄줄이 대기업 치기에 따라 나섰다. 보도에 의하면 검찰이 ‘기획수사’ 움직임 까지 보인다고도 한다.

대기업 측에서는 “나라가 올바르게 나가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반격하였다. 또한 “대기업 때리기가 좌파정권에선 흔히 있었던 일이지만 대기업 경영인(CEO) 출신에 친기업을 표방했던 대통령이 이러는 것은 곤혹스럽다”며 배신감 마저 토해냈다.

이 대통령이 대기업에 유감을 드러낸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들은 몇 조원씩 영업이익을 냈다고 자랑하면서도 중소기업에는 인색하다, 납품가에 대한 현금 아닌 어음 결제, 전화 한 통으로 납품가 후려치고 주문량 깎아내리기, 어렵게 개발해 놓은 기술 뺏어가기, 사력을 다해 새 상품을 개발해 진출한 영역에 뒤늦게 뛰어들어 싹쓸이 하기 등이 그것 들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대기업에 대한 반감은 크다. 어느 대기업의 협력업체 중소기업 임원은 자기 집에서는 대기업 협력업체의 가전제품을 쓰지 않는다고 털어 놓을 정도다.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이 앞장서서 대기업 때리기에 나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본을 위협하는 포퓰리즘(대중인기선동)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성마르게 대기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에 앞서 조용히 법·제도적으로 중소기업을 도와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겼어야 옳다.

대기업은 돈이 많으니 중소기업에 떼어 주라는 식의 접근은 고대 그리스 신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를 연상케 한다. 키 큰 사람이 침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침대에 맞추기 위해 그 사람의 다리를 잘라낸다는 이야기 이다. 이 대통령의 대기업 압박이야 말로 대기업의 다리를 침대에 맞춰 잘라내는 위험을 수반한다.

몇 년전 두바이의 셰이흐 모하메드 왕이 경제와 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 매우 적절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경제는 말(馬)이고 정치는 마차”라고 하였다. 말(경제)이 마차(정치)를 끌고 가야지 마차가 말을 끌고 갈 수는 없다면서 정치권력의 경제 지배를 거부하였다.

이 대통령도 정치 권력을 통해 경제순환 법칙을 좌지우지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서민과 중소기업을 돕는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것이 도리어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그들을 더욱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 물론 대기업들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협력업체들을 동업자로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대기업만 탓해 그들로부터 배신감을 불러일으킬 게 아니라 대기업의 CEO 출신답게 조용히 대기업·서민·중소기업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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