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11월 23일 무차별 연평도 포격은 59년 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미국 의회 고별사를 떠 올리게 한다. 맥아더 장군은 1951년 4월 19일 고별사를 통해 공산독재자의 도발에 겁먹은 양보와 유화책은 결국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불러온다고 경고했다. 그는 대공 “유화책은 단지 새롭고도 보다 더 유혈이 낭자한 전쟁만을 자초한다”고 하였다.

북한의 연평도 무차별 포격은 김대중·노무현 종북(從北)좌익 정부와 ‘중도 실용’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유화책이 자초한 “유혈이 낭자한 전쟁”이었다. 종북좌익 정부와 ‘중도 실용’ 정부의 대북 유화책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다 더 많은 양보를 요구케 하며 유혈 전쟁으로 치닫게 하고 말았다.

북한은 작년 9월 6일 새벽 임진강 상류의 황강 댐을 기습 방류해 우리 국민 6명을 수장시켰다. 그런데도 ‘중도 실용’ 정부는 북한의 사과를 요구했으면서도 부측의 무성의한 해명으로 묵과해 버렸다. 결국 남한을 얕잡아 보게 해 천안함 도발을 부담없이 자행케 했다.

북한이 영해에 깊숙이 침투해 천안함을 격침시켜 46명의 우리 군을 학살하였지만. 남한은 보복 공격 한 번 하지 못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뒤늦게 “단호하게 대처 할 것”이라며 북한이 “사과하고 책임자를 즉각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북한이 사과를 안했는데도 쌀 5000t 등 100억원어치를 퍼주었다. 김정일에게 도발하면 보상받는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올 8월엔 북한이 연평도와 백령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1-2km 넘어 10여발의 해안포를 발사했는데도 우리 군은 대응하지 못했다. 김정일에게 도발해도 남한은 반격하지 못한다고 믿게 했으며 연평도를 포격해도 꼼짝못할 것이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북한이 170여 발의 포를 쏘아대 연평도를 초토화하며 우리 해병 2명과 민간인 2명을 죽였고 여러 명을 부상케 했는데도 우리 군은 80여 발로 대응하는데 그쳤다. 이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직후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하라”고 지시 하였다고 보도 되었다. 천안함 사태 때 “단호하게 대처 할 것”이란 다짐은 빈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뒤 청와대측은 이 대통령이 “초지일관 교전수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지시 중 어느 것이 맞는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북한의 170여 발 포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은 북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80발 반격으로 멈추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군이 윗선의 지시를 받고 “확전되지 않도록 자제”한 것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우리 군의 교전규칙이 ‘적 사격시 대등한 무기체계로 2배로 대응하도록 돼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이명박 정부의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방식에는 특별한 유형이 나타난다. 북한이 때리면 싫건 맞고 난 뒤에 “단호하게 응징”한다며 말로만 호들갑 떤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국민들이 잊을만하면 슬그머니 북한에 퍼주거나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묘안이나 찾아 헤맨다.

김정일은 저 같은 중도 실용 정권의 무기력한 대응을 간파하고는 겁 없이 계속 도발을 자행하고 나선다. 중도 실용 정권의 유화책은 김정일에게 더 크고 더 대담한 도발만을 자행케 했다. 끝내 연평도를 초토화하게 했고 제2, 제3의 도발을 자행케 할 수 있다. 맥아더 장군의 4·19 고별사를 재음미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공 유화책은 단지 새롭고도 보다 더 유혈이 낭자한 전쟁만을 자초한다.” 중도 실용 정부의 대북 유화책은 계속 “유혈이 낭자한 전쟁만을 자초”했다. 그에 대한 청와대와 군관계자들의 책임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 북한 도발을 조장하는 겁 먹고 무기력한 대응을 바로잡고 당차게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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