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 11월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뼈대 있는 발언을 했다. 나 의원은 “지금 20대들 가운데 보수성향이 많다고 하는데, 이들 가운데 실제로 용감하게 보수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 이유로서는 한나라당이 “당당하게 보수의 가치를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젊은이들도 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개탄 하였다. 나 의원의 말은 옳다. 북한의 연평도 무차별 포격을 당하고 보니 그의 지적은 더욱 돋보인다. 분명히 한나라당은 전통 보수 정당이고 3년전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얻어 대승하였으면서도 “당당하게 보수의 가치를 말하지 못한다”며 그 대신 “중도 실용”을 내 세운다. 한나라당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집권당이 “당당하게 보수의 가치를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수 이념은 더욱 기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20대 뿐 만아니라 장년의 지식인들도 보수라고 “당당하게” 말하려 들지 않는다. 좌도 우도 아닌 기회주의적 “중도 실용”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그러니 한나라당 정권은 “중도”에 묶여 북한에 실컷 얻어맞고도 “확전 자제 하라며“ 보복도 못한다.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 학술 세미나에서도 애매한 중도 노선이 지배하였다. 어떤 발제자는 김대중·노무현 “햇볕정권의 ‘주면 변한다’는 명제도, 이명박 정부의 ‘안 주면 변한다’는 명제도 틀렸다”면서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잘 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좌도 우도 아닌 “중도 실용”논리 이며 선·악에 대한 분별력을 흐리게 하는 양비론이기도 하다.

지금은 북한에 ‘잘 줘야’할 때가 아니며 ‘북한 번영 협력체제’를 논할 게제가 아니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단호한 응징과 제재가 요구될 따름이다. 북한은 남한으로 부터 10~14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지원을 받아가면서도 거듭 핵무기를 실험하고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무차별 포격 등 쉴새 없이 도발을 자행한다. 북한에는 우선 도발을 포기토록 가차없는 응징을 가하는 길 밖에 없으며 단호한 보수주의적 접근이 절실히 요구된다.

상당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보수주의자임을 떳떳히 내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당당하게 보수의 가치”를 역설하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하며 도리어 기피한다는데 연유한다.

그러한 애매한 자세는 지난 11월 19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 의해서도 표출되었다. 그는 한나라당 창당 13주년 기념식 기념사를 통해 한나라당이 ‘보수’와 ‘중도’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으로서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고 양극화를 극복하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 매진하는 개혁적 ‘중도보수’로 스펙트럼을 넓혀가겠다”고 하였다.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이면서도 “중도”로 가겠다는 말은 동서로 각기 뛰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격이며 인기영합의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민주당으로 부터는 민주당의 노선을 베낀 것이란 비야냥을 면치못하며 보수 진영으로 부터는 배신이라는 푸념을 피하지 못한다. 한나라당은 보수를 지키려는 열정도 전략도 없으며 오직 유권자들이 몰려있는 표밭에만 눈독을 드리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는 당하면서도 꼼짝도 못한다.

한나라당은 인기영합만 따르다 보니 “부자(고소득층)감세” 인하방침 철회와 청목회(전국청원경찰침목협의회) 불법로비 문제를 두고서도 우왕좌왕 한다. 나경원 의원의 지적대로 한나라당은 “야당이 던져놓은 이념적 틀(좌익 또는 중도)에 갇혀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보수성향의 20대 젊은이들이 자랑스럽게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외칠 수 있고 북에 단호히 맞설 수 있도록 보수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내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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