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이집트를 탄압과 부패로 짓눌렀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민주화를 절규하는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 3주 만에 붕괴되고 말았다. 2000여 년 전 나일강 유역에서 미녀 여왕 클레오파트라(기원전 69-30년)에 의해 지배되었던 피라미드 왕국 이집트가 드디어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1월 중순 민주화 시위에 의해 제인 엘 아비디네 벤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된지 두 번째로 터져 나온 정변이다. 아랍권에 민주화 도미노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집트는 자유를 찾았지만 내정은 아직 복잡하다. 순수 민주화를 절규한 젊은 세대, 실업과 가난을 저주하며 거리로 뛰처나선 빈민층, 회교원리주의를 내세우는 ‘무슬림 형제단’, 무바라크 독재하에서 특권을 누린 계층과 군부집단 등으로 얽혀있다. 이 세력들 중 어떤 쪽으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할지 예상키 어렵다.

클레오파트라 이후의 잔혹한 권력투쟁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클레오파트라는 권력 장악을 위한 골육상쟁속에 동생을 잃었고 또 다른 동생을 독살했으며 나머지 여동생 마저 암살하였다고 한다. 안와르 알 사다트 대통령도 1981년 무슬림 과격분자에 의해 암살되었다.

원래 혁명의 전개방향을 예축하기는 쉽지 않다. 1789년 자유와 구체제(舊體制) 청산을 외쳤던 프랑스 혁명은 자코방의 급진 과격 세력에 의해 지배돼 피바다를 이뤘고 나폴레옹 보나파르에 의해 대외전쟁과 팽창주의로 빗나갔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74년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돼 일당독재와 탄압 그리고 빈곤만을 강요하였다. 1979년의 이란 민주화 혁명은 회교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돼 이 나라를 중세로 되돌려 놓았다.

미국은 이집트가 제2의 이란으로 전락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국은 이란이 민주화 혁명 후 반미신정(反美神政)체제로 돌아선 아픔을 기억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요르단, 이란 등은 자국이 민주화 열풍에 휘말릴 것을 두려워 한다. 중국은 나일강의 민주화 모래바람이 황하로 옮겨 불지않을까 불안하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중국은 처음 부터 이집트의 격렬한 반정부 시위 보도와 논평을 자국의 입맛대로 통재하고 재단해 왔다. 북한 김정일은 ‘나일강의 혁명’을 지켜보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짐작키 어렵지 않다. 무바라크는 이집트를 서방 자유체제 처럼 개방했으면서도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빼앗고 가난과 탄압으로 보상했다. 김정일은 북한을 사교집단 처럼 폐쇄했으며 주민들을 무라바크 보다 몇 배 더 잔혹하게 다스렸고 굶겨 죽였다는데서 이집트 보다 더 강렬한 반정시위가 일어 날 만도 하다. 그러나 평양 대동강 변에서는 나일강과 같은 민주화 시위가 들끓지 않는다. 공개처형 등 잔혹한 응징, 세포조직 감시체제, 봉쇄체제 등에 연유한다. 김정일은 1989년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차우셰스쿠가 반정부 시위대에 의해 처형당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하여 측근들과 함께 보면서 “우리도 인민들에게 살해 될 수 있다”는 말을 반복 했다고 한다. 그는 ‘인민들에게 처형’되지 않기 위해 더 더욱 감시와 탄압을 강화해 갈게 분명하다. 주민들을 긴장시키고 단합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천안함과 연평도 같은 도발을 또 자행할 수도 있다.

김정일은 1980년대 말의 동구 민주화 열기속에서 살아남았고 1990년대 수십 내지 수백만 명을 굶겨죽인 기근 속에서도 버텼다. 오늘날의 나일강 민주화 열풍에도 끄덕없이 아들 김정은의 후계자리를 굳혀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하게 끝났다는 역사 기록을 상기하며 대동강변에도 언젠가는 민주화의 돌풍이 불어 닥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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