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장관답지 않은 발언으로 국익을 해친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는 지난 2월 21일 재외공관장 회의에서 공개해선 안 될 외교비밀을 공개해 버렸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극비리에 알려준 미국과 북한간의 대화 내용을 자세하게 털어 놓은 것이다.

미국이 비밀리에 전해 준 내용은 북한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지난 1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에게 보낸 편지였다. 김영춘은 ‘이대로 두면 한반도에 핵 참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미·북 대화를 요구하였다. 그밖에도 김은 북한의 핵 문제는 ‘우리(북한)와 미국이 만나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의 핵 참화 협박과 한국을 제외한 미·북 직접대화 요구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북한이 1974년부터 주장해오던 단골 메뉴이다.

문제는 현 장관이 미국이 비밀 사안으로 전달해 준 내용을 100명이 넘는 재외공관장들 앞에서 까발렸다는데 있다. 여기에 미국은 비밀누설과 관련해 외교채널을 통해 강력히 항의하였다고 한다. 청와대도 부적절했다고 지적하였다고 한다. 당시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했던 한 외교관도 “참석자들이 통일부장관이 외교비밀에 해당하는 북·미간 대화를 지나치게 자세히 공개하자 아연실색한 분위기 였다”고 전하였다.

통일부 당국자는 장관의 발언이 “외교관들을 상대로 한 비공개 강연이라는 약속을 받고 발언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100명이 넘는 재외공관장들에게 “비공개 강연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는 말로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100여명의 사람들 앞에서는 ‘비공개’나 ‘공개’에 차이가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강연은 반드시 새 나가기 때문에 공개나 다름없다. 그의 강연 내용은 즉각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 정도의 상식도 없다면 장관할 자격도 없다. 장관을 2년 하더니 자기 현시(顯示)에 도취된 듯 싶다.

그의 신중치 못한 강연은 북한 군부가 외무성을 제치고 “고도의 외교행위를 하고 있다”는 성급한 판단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그날 강연에서 북한 군부가 “이제 외무성을 믿을 수 없다. 우리(군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였다. 2009년 8월 북한 억류 미국 여기자들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데려온 것도 북한 군부가 뒤에서 했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북한 군부가 외무성을 제치고 외교행위를 한다는 발언도 장관으로서 신중치 못한 일이었다. 북한 외무성은 온건한데 군부가 강경하다고 속단한 것이다. 김정일 독재체제에서는 외무성이나 군부나 모두 각본에 따라 움직일 따름이다. 김정일은 군부를 내세워 강경하게 나가는 것 같은 쇼를 부릴 따름이다. 상대편에게 겁을 주기 위한 위장전술이다. 군부와 외무성 운운은 방송사 기자나 부담 없이 쏟아낼 해설이지 장관이 할 강연은 아니었다. 현 장관의 이상한 발언은 2009년 9월 6일 남한 주민 6명의 생명을 수장시킨 북한의 황강댐 기습 방류 때도 드러났다. 북의 황강댐 방류는 의도적이었다는 것이 국민들의 확신이었다. 그러나 현 장관은 그 다음 날 국회에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댐을 방류했느냐”의 질문에 “아직은 판단할 만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며 북한 소행임을 부정하였다. 한 달 전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에 쏠려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을 의식해 대북여론 악화를 무마하기 위한 기회주의적 답변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북한 수공(水攻)에 대한 국민의 격분이 격화되어가자 그는 이틀 후에야 비로서 북한의 “의도성이 있다고 분명히 보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장관은 외교비밀을 지키고 신중해야 하며 소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 장관은 앞에서 드러낸 것 처럼 그러지 못했다. 장관 감투가 너무 무거워서였는지, 아니면 거기에 너무 연연해서 였는지 짐작키 어렵다. 대한민국 장관의 수준이 그 정도인지 실망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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