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종북좌익 정권이 보수우익으로 교체된 이후 ‘교과서 포럼’을 위시한 여러 단체들이 좌편향 초·중·고 교과서 및 현대사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얼마 전엔 ‘한국현대사학회’가 좌·우 균형 선상에 서겠다며 모습을 드러냈다.

김대중·노무현 권력 지배하에 교육계, 학술계, 문화계, 예술계, 종교계 등이 계급사관, 민중사관, 내재적 접근, 반미용공사관 등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왜곡된 사관을 바로 잡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이 나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지난 날 종북좌익 세력의 살기등등한 위압과 살아있는 권력 앞에 숨을 죽이고 있다가 시대적 보수조류의 대세를 타고 뒤늦게 나선다는 데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을 금할 수 없다.

교과서와 현대사 바로세우기에 참여한 지식인들은 좌파의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을 바로잡고 생산성 효율에 치중한 우파의 개발독제 미화도 거부하며 균형을 찾겠다고 한다. 절대화된 반공주의와 그에 맞선 반(反)반공주의 도그마에 관해서도 균형적 시각에서 평가할 것이라고 한다.

좌·우 편향 없는 교과서와 현대사 기술에 크나 큰 기대를 걸면서도 좌·우 편향 없는 기술이 자칫 대민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이념을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여기에 좌편향 교과서와 현대사 기술을 바로 잡는데 유의해야 할 대목 세 가지를 적시해 두고자 한다.

첫째, 교과서와 현대사 기술은 좌·우를 초월해 균형감각을 살리되 대한민국의 기본 이념인 반공과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시장경제에 바탕한 번영을 기본 잣대로 삼아야야 한다. 객관성을 살린다면서 반공·자유민주·시장경제의 정체성(正體性)을 훼손하는 역사 기술은 좌로 갔던 우로 치우쳤건 아니면 중도로 빠졌던 간에 대한민국을 부모 없는 사생아로 만든다.

둘째, 종북좌익 사관을 뜯어고치는데 쏠린 나머지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위한 정치독재, 인권유린, 부정부패 등의 부작용을 덮어두어서는 안된다. 독재·인권유린·부패 등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이념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 체제를 건전하게 수호하고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반하는 독재와 인권유린의 어두운 면이 객관적으로 서술되지 않으면 안된다. 값진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셋째, 현대사는 반드시 대한민국의 건전한 미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시각에서 기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의 객관적 서술은 고대 아테네의 헤로도터스(484~425 BC)와 투키디데스(460~400 BC)의 ‘페르시아 전쟁사’ 및 ‘펠러포네서스 전쟁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투키디데스는 역사 기술의 목적은 “미래에 봉사하기 위한데 있다”고 정의하였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미래에 봉사’할 수 있도록 정리되어야 한다. 분명히 대한민국 현대사는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자유와 시장경제 그리고 번영을 위해 모진 가난을 극복하며 이룩한 영광스러운 발자취로 기록되어야 한다. 지금도 우리 5000만 국민들은 자유 수호를 위해 북한의 공산화 책동에 맞서며 미래의 번영을 위해 주저 없이 땀과 피를 흘리고 있다.

미국의 역사는 독립혁명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자유·평등·행복 추구 라는 대명제(大命題)를 지키기 위해 서술되고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도 반공과 자유민주의 수호를 위한 현란한 발자취로 기술되지 않으면 안된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투키디데스의 지적대로 역사란 ‘미래를 위해 봉사’하기 위하는데 있고, 한국 현대사는 미래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데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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