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딸을 낳았다고 주장해 온 이경선(70)씨가 27일 서울중앙지법에 김 전 대통령을 상대로 위자료 30억원중 1억원을 우선적으로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씨는 또 YS가 43년에 걸쳐 친생여식 인지를 방기하고 친생녀임을 거부한 것에 대해 7개 일간지 1면에 5단 크기의 사과광고를 2회 이상 연속 게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28일 오후 이씨의 대리인인 용태영 변호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YS의 비인간적 작태를 고발한다

“자신의 친생자인 여식의 일생을 망친지도 어언 43년, 이제는 참지 못할 지경에 당도했다. 이 소장을 받고서도 친생자임을 부인한다면 DNA 유전자 감식으로 주현희(일명 가오리·43세)가 피고의 자식임을 밝힐 수밖에 없다. 비인간적으로 자식과 그 생모를 43년간이나 방기해온 것은 그냥 끝날 일이 아니며, 진솔한 반성으로 사과광고문을 원고 모녀에게 밝힘으로 만천하에 그 비인간적 작태와 행적을 빌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씨측에서 YS를 상대로 낸 소장 내용의 일부다.

YS에게 숨겨진 딸이 있다는 소문은 1987년과 1992년 등 대선때마다 흘러나왔으며, 2000년에는 이씨 측에서 강금실 변호사 등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YS측에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가 변호사를 선임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상대가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은 많은 변호사들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을터. 변호사들이 선뜻 사건을 맡으려하지 않자 수소문끝에 용변호사를 찾아온 이씨는 고령의 나이와 어려운 생활형편으로 인해 한때 전직 대통령과 사실혼 관계였던 여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수척한 모습이었다는 것.

모녀의 기구한 인생

두 사람의 인연은 1961년 군사혁명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YS는 유부남의 신분으로 이씨의 집에 드나들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62년 11월 12일 이씨는 가오리를 출산한다. 그러나 가오리의 출생은 축복받지 못했다. 당시 신민당의 요직자로 있으면서 대통령의 포부를 갖고 있던 YS에게 혼외자의 존재는 일급비밀이었던 것. 이씨가 입적을 요구하자 YS는 정치적 입지를 내세워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말로 달랬다. 이씨 역시 YS의 명예를 생각해 이 사실을 함구했다는 것. 93년 YS는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는데, 이때 31살이던 가오리는 이미 30년 이상을 사생아 신세로 살아온 처지였다. 스님이 지어준 김현희라는 이름으로 어린시절 6년을 보낸 가오리는 대만인의 딸로 위장되어 주현희로 살다가 일본여성의 양녀로 들어가 가네꼬가오리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살면서 3번이나 국적과 이름이 바뀌는 등 기구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 또 이씨 역시 두 명의 남성과 재혼과 사별을 거듭하는 등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다고 한다.

YS는 왜 침묵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와서 이씨가 위자료를 청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핏줄’을 외면한 YS에 대한 ‘괘씸죄’로 보인다. 소장에 따르면 그간 YS는 입으로는 가오리가 자신의 딸임을 인정하면서도 친자확인이나 호적입적을 요구하면 동문서답을 하거나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지 수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침묵’하고 있는 것도 모녀를 분노케 한 원인. 가오리는 YS로부터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만 두 번 들었을 뿐 최소한의 ‘딸대접’도 받지 못했으며 ‘아버지’ 소리도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고 한다. 또 가오리는 호적 입적이 안됐다는 이유로 혼기를 놓쳐 43세의 노처녀가 되었으며, 기구한 운명에 대한 원망으로 모녀관계도 악화됐다는 것.

이젠 확실히 밝히겠다

또 다른 이유는 모녀의 어려운 생활형편 때문이다. 이씨는 ‘함구’의 대가로 그간 YS로부터 5~6회에 걸쳐 23억원을 받아 생활했다. 그러나 그 돈은 이미 소진한 상태로 현재 이씨는 역삼동의 사글세방에 거취하며 막막한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가오리 역시 넉넉한 형편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이 없는 이씨는 소장에서 ‘노후를 보장받고자, 또 가오리의 신분관계정리를 마치고 출가시켜야 할 의무감으로 출생사실 확인을 받고자하는 취지이며, 위자료 30억원 중 일부금으로 우선 1억원을 청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소송에 대해 YS측은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씨측의 입장은 강경하다. 용 변호사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가오리의 위임장이 도착하는 대로 다시 친생자 인지청구 소송을 내겠다”고 말했다. 또 유전자 감식을 통해서라도 가오리가 YS의 딸임을 밝혀내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밝히고 있어 사건의 귀추가 주목된다.


# 용태영 변호사 인터뷰 “모녀의 기구한 인생 안타까워”

1973년 ‘부처님오신날 공휴권 제정 청구소송’을 제기, 2년여에 걸친 법정투쟁 끝에 음력 4월8일을 부처님오신날 공휴일로 제정하는 성과를 올린 용태영 변호사(77). 고령임에도 요즘도 산더미같은 소장에 파묻혀 지내는 용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두고 “전직 대통령 아니라 더 부담스러운 상대라 해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 사건을 맡은 이유는.▲ 두 모녀의 기구한 인생이 안타까웠다. 대통령과의 연정으로 출산한 딸이 이름을 세 번이나 바꿔가며 사생아로 사는 것을 지켜본 어미나 가오리 본인이나 그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 YS와 만날 당시 이씨의 신분은.▲ 이씨는 고급요정의 기생이었다는 루머에 휘말리기도 했는데, 이씨는 그 기사를 쓴 기자를 고소하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만 당시 이씨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YS는 이씨의 집에 드나들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씨는 당시 경제적으로 어렵던 YS에게 용돈 및 정치자금을 대주는 등 경제적 지원을 해줬다고 한다.

- 당시 23억원은 어마어마한 돈인데.▲ 가오리의 교육문제로 외국을 왔다갔다했고, 사업을 하던 아들이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많은 돈을 탕진했다. 계획없이 돈을 함부로 썼다는 것은 이씨도 인정하고 후회하는 부분이다.

- 지금와서 소송을 건 이유는.▲ 수십년간 모녀가 겪은 고통과 YS에게 쌓인 인간적 배신감이 폭발한 것이다. 변호사선임도 어려웠던 데다가… 노후를 보장받을 방법도 없고….

- 현재 이씨의 상황은 어떤가.▲ 경제적으로 무척 어렵다. 또 70세의 고령으로 심신이 많이 피폐한 상태다.

- 이씨와 가오리의 관계는 어떤가.▲ 좋을리 있겠나. 삶이 평탄치 않자 가오리가 “왜 나를 낳아서 이렇게 힘든 삶을 살게 하느냐”며 원망도 했던 것 같다. 이것도 소송을 제기한 원인이 되지 않았겠나.

- 가오리가 YS의 딸이 확실한가.▲ 맞다. 가오리의 어릴적 사진을 보면 코모양이며 입술매무새가 YS와 똑같다. 또 친딸이 아니라면 23억원을 줬겠는가. 유전자 감식을 하면 밝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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