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8일 전격 구속되면서 검찰의 칼끝이 과연 어디로 향할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전 차장은 6일 검찰에 체포될 당시 “이번 사건은 내 개인의 책임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도청 사실은 인정하지만, 국정원에서 관행적, 조직적으로 이뤄진 일인 만큼 개인 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 전 차장의 이같은 발언은 전직 국정원 수뇌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에도 추가로 비리를 폭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DJ 정부 시절 저질러진 불법도청의 책임을 혼자 덮어쓰고 가진 않겠다는 ‘폭탄성 발언’인 셈이다.

이로 인해 김 전 차장이 검찰에서 어느 선까지 입을 열지, 김 전 차장의 보고가 과연 어디까지 올라갔는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 전 차장의 말 한마디로 인해 전직 국정원장은 물론이고, DJ 정부 시절 실세들까지 무더기로 검찰에 소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김 전 차장은 재직 기간 동안 임동원(1999년 12월~2001년 3월), 신건(2001년 3월~2003년 4월) 등 두 명의 국정원장을 보좌했다. 이 과정에서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인 R-2(알투)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인 카스를 이용해 정치인 등을 불법 감청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정원의 생리상 김 전 차장이 단독으로 도청을 지시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특히 도청과 같은 큰 일은 어떤 식으로든 국정원장 등 상부에 보고를 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김 전 차장도 지난 7일 있었던 영장 실질심사에서 이같은 부분을 일부 인정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불거진 뒤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 신건씨와 두세차례 만났고, 임 전 원장과는 대여섯차례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김 전 차장의 보고가 국정원장이나 정권 실세 등을 통해 DJ에게 관련 내용이 들어갔을 개연성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도청 수사의 칼끝은 DJ로까지 향할 수 있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김 전 차장이 도청을 시인한 것은 결국 대통령에게도 보고가 이뤄졌다는 얘기”라면서 “김 전 차장 진술이 확인되면 ‘DJ정부 시절 정권 차원의 불법 도청은 없었다’는 국정원과 청와대 발표는 거짓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검찰은 이 기간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신건씨를 조만간 소환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들에게 김 전 차장의 불법감청 사실을 인지 혹은 지시했는지를 집중 추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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