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로 가장 영입하고 싶은 리더’는 누구일까? 지난 1일 한국리더십센터가 직장인 1,213명을 대상으로 한 이 설문조사에서 이순신 장군이 1위에 올랐다. 이순신 장군이 사망한지 407년이 지났음에도 빛이 바래지 않고 있는 그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히 최근 종영한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그의 위대한 업적뿐 아니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적인 고뇌를 재조명함으로써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최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이 땅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3년째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충무공의 문중이 천안지원-대전지법-대법원(상고심 파기환송)-대전지법-대법원을 오가며 격렬한 재산분쟁에 휩싸인 내막은 무엇일까.

“위토를 보존하기 위한 소송”

“마치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이 돈에 눈이 멀어 재산다툼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8일 오후 덕수이씨 충무공파종회의 이재왕 이사는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집안문제를 일일이 언론에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며 소송건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특히 충무공의 후손이라는 사람들이 ‘돈에 눈이 멀어’ 제 식구들끼리 싸우는 ‘꼴’로 비춰질까 염려하는 표정이었다.

그럴 경우 조상얼굴에 이보다 더 심한 먹칠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이사는 “이번 소송은 개인 재산 문제가 아니다. 우리 충무공 후손들은 재산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 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 사건은 한마디로 위토를 둘러싼 덕수이씨 충무공파종회와 15대 종부 최모(50)씨 간의 소유권 공방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제의 땅은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 주변에 있는 땅 4만1,226㎡(1만2,493평). 논과 밭, 임야 등 16필지로 되어 있는 이 땅은 시가 30억원대를 호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양자입양 둘러싸고 갈등증폭

다툼의 발단은 2002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무공파 15대 종손 이재국(당시 66세)씨가 후손없이 숨지자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한 문중측에서 적통을 잇는다며 그해 3월 종손의 7촌 재당질을 양자로 들이게 된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종회측이 밝힌 이철용(32)의 입양내용은 다음과 같다.15대 종손이 지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장례날 저녁에 온 집안이 모여 후사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망인의 재종 6촌 아우의 외아들 철용을 입양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철용의 생부 이재만의 어려운 승낙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종회측에서는 양모인 최씨에게 승낙을 받은 후 철용의 생부모 내외, 양모 최씨, 백모와 재당숙 부부가 모인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최씨와 생부모 내외는 입양신고서에 각각 자필서명을 했으며, 증인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백모와 재당숙이 서명해 입양신고서를 작성했다. 또 이 자리에서는 망자에게는 입양이 안되는 법을 감안, 입양신고를 먼저 한 후에 망자의 사망신고를 하자는 합의까지 이뤄졌고, 이에따라 입양신고 보름 후 최씨가 남편의 사망신고를 했다는 것이 종회측의 설명이다. 즉, 양자입양 문제는 최씨의 엄연한 동의하에 이뤄진 일이라는 것.그러나 얼마후 최씨는 “양자가 내 뜻과는 무관하게 입양됐다”며 양자에게 죽은 남편의 명의로 되어 있는 종가재산 토지 약 30필지 이상을 포기하겠다는 각서에 서명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철용의 생부는 “누가 종손이 되든 봉제사를 받들 재산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서명을 만류했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최씨는 입양무효 소송을 내 결국 법적으로 입양이 무효화됐다는 것이다.화가 난 문중측에서는 “문중 종원 70명의 명의로 돼있던 땅을 사망한 종손의 아버지가 1972년 서류를 조작, 자신의 명의로 등기이전했다”며 종부 최씨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소송을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땅싸움’으로 번졌다. 그러나 당시 천안지원(1심)은 “문중재산 처분에 필요한 문중총회 결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또 대전지법(2심) 역시 “전 땅 소유주인 종원 70명의 실체를 모두 밝혀야 소송자격이 있다”며 각하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70명중 한명이라도 실체규명이 가능하면 소송당사자가 될 수 있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대전지법은 “명의 신탁이 인정되는 6,600평 중 최씨가 처분한 2,000평을 제외한 4,600평을 문중에 돌려주라”고 판결했으나 양측 모두 불복, 다시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조상 얼굴에 먹칠’ 우려

현재 최씨에 대한 종회측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이재왕 이사는 최씨에 대해 “종가를 보존하고 선조를 봉양할 생각은 조금도 없고 재산만 노리는 여자”라며 “잘못된 여자가 들어와 집안을 망치고 있다”며 비난했다. 종회측에 따르면 최씨는 수많은 재산을 탕진한 것도 모자라 남아있는 충무공 종가 재산마저 모두 탕진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총회측에 따르면 소송중인 땅은 후손 70명이 충무공의 위선사업, 기제사, 묘제, 산소관리를 하기 위해 현금과 곡식 등을 걷어서 마련한 ‘위토’이며 70명의 공동명의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2년 공동명의자가 거의 사망하자 14대 종손은 이 땅을 증여로 하여 15대 종손 이재국 단독 명의로 등기했는데, 이는 엄연한 불법이라는 것이 종회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15대 종손이 신병으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게 되고, 14대 종손 이응열 내외가 사망하자 며느리 최씨는 자신의 시부모 재산을 모두 탕진했으며 더 나아가 충무공의 위토마저 마음대로 매각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종회측 “형사고발도 불사하겠다”

종회에서는 그간 최씨가 시부모의 재산을 탕진한 것만해도 수십억원에 이르지만 이에 대해서는 일절 문제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 이사는 “최씨가 개인재산을 매매한 것은 단 한평도 소송한 적이 없다”며 “오직 충무공의 봉제사를 위해 후손들이 마련해 공동명의로 한 위토대장에 기재되어 있는 토지에 한해서만 등기원인 무효소송을 한 것이다. 최씨가 위토까지 마음대로 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 소송은 개인간 사사로운 다툼이 아니라 조상이 물려준 위토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며 ‘위토는 종회명의로 하여 영원히 보존한다’는 뜻에서 소송을 하고 있다”는 것이 종회측의 주장이다. 현재 “문중 땅을 모두 되찾겠다”는 문중측과 “법적 하자없이 상속받은 땅을 돌려줄 수 없다”는 최씨측과의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장기간 계속되는 소송에도 불구하고 문중측은 단호한 입장이다. 문중측은 15일 문중 총회를 거쳐 최씨를 상대로 형사고발까지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년째 계속되는 양측의 싸움에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