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총리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했던 그가 처음 3위로 처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가 9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 전총리는 11.5%를 얻는데 그쳐 이명박 서울시장(15.0%)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12.0%)에게 밀렸다. 또 고 전총리는 국정수행 능력 면에서는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경제정책 수행 능력 면에서는 기타 주자들에 뒤처지고 있다. 방심했던 대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고 전총리의 깨끗한 이미지가 반영됐던 그동안의 지지율은 한낱 ‘버블(거품)’에 지나지 않았다며 그의 역할론을 폄하하고 있다.

하지만 장외주자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고 전총리가 복심을 드러내고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걷는다면 지지율은 또다시 수직상승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고전총리가 차기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수위 자리를 내준 것은 한길리서치 조사만이 아니다. CBS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와 지난 10·26 재선거 다음날(10월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고 전총리는 23.9%의 지지율로 26%를 얻은 이명박 시장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3위인 박근혜(23.6%) 대표와는 불과 0.3% 차이 밖에 나질 않았다.

거품인가 장외주자 한계인가

고 전총리의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정치권은 ‘버블’ 인기였다는 주장과 ‘장외’ 주자의 한계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엇갈린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고 전총리의 지지율이 여야 잠룡들의 지지율 보다 무려 두 배 이상 격차를 벌이며 선두를 질주할 때도 버블 논란은 있었다. 현실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이 참신하고 경륜있는 고 전총리의 이미지를 보고 높은 지지를 보였다는 게 핵심이다. 또 참여정부 출범이후 각종 개혁정책이 이렇다할 성과물을 내놓지 못한채 사회 혼란만 가중시킨 것도 고 전총리 지지율 상승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고 전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행정전문가이다. 여기에 정치권과 한 발 떨어진 곳에서 국무총리와 대통령권한대행을 역임한 경륜과 안정감은 국민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청계천 특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명박 서울시장의 주가가 치솟고, 10·26 재보선을 완승으로 이끈 박근혜 대표가 다시 한번 차기주자 입지를 확고히 하면서 고 전총리의 지지율은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었다.

대안부재에 따른 반대급부로 고 전총리가 지지율 수위자리를 고수했지만 대안 세력(박근혜 이명박 등)이 부상하자 고 전총리의 인기도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게 ‘버블’ 인기를 주장하는 인사들의 분석이다. 반면 고 전총리의 지지율 하락은 장외주자라는 한계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청계천 특수(이명박)’ ‘재보선 완승(박근혜)’ 등 현직 프리미엄을 극대화하고 있는 잠룡들에 비해 ‘장외주자’라는 한계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고 전총리가 대권 복심을 드러내고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걷게 될 경우 그의 지지율은 또다시 수직상승할 것으로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특히 장외에도 불구하고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고 전총리가 민주당이나 중부신당 등 군소 정당과의 연대를 통해 대권 깃발을 꽂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서 이탈한 일부 세력을 끌어안는다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이명박에 밀리는 형국

정치권의 논란은 차치하고 위기감에 휩싸인 고 전총리측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30%대를 밑돌던 지지율은 어느덧 20% 초반대로 떨어지면서 한나라당 ‘빅2(이명박 박근혜)’에 밀리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물론 여차하면 대권레이스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고 전총리의 입지와 정치 환경도 녹록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R&R)가 9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 전총리는 이명박(29.5%)-정동영(13.6%) 3자 가상대결에서 31.4%의 지지율로 2위인 이 시장과 불과 1.9% 격차밖에 나지 않았다. 지난 9월 조사와 비교하면 이 시장의 지지율은 3.5% 포인트 상승한 반면 고 전총리는 1.2% 포인트 하락했다.

또 한나라당내 소장파 그룹인 ‘새정치수요모임’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의 이념적 성향은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응답자가 53.4%에 달해 고령인 고 전총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여기에 고 전총리가 국정수행 능력면에서는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경제 통일 분야 등에서는 기타 잠룡들에게 밀리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특히 현정부의 경제정책과 여전히 불안한 실물경제 상황이 반영됐는지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국정운영 능력으로 ‘경제적 식견’을 꼽고 있다. 동아일보가 5일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 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4.7%가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국정운영 능력으로 ‘경제정책에 대한 식견’을 꼽았다. 선거전문가들은 벌써부터 2007년 대선은 대한민국 경영을 이끌어 갈 최고경영자(CEO)를 선출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고 전총리측은 이러한 제반 불안 요인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차기주자 수성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고 전총리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 결단은 다름아닌 고 전총리가 대권 복심을 드러내고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걸어야 한다는 것.신당창당은 물론 민주당과 중부권 신당 등 군소 정치세력과의 연대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 전총리도 예전과는 다른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호남과 영남, 크고 작은 대외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고 전총리는 이달들어서만 호남과 영남 등을 방문하며 정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정계개편 중심역 승부수

고 전총리는 관선 전남지사 시절인 70년대 후반 친분을 맺은 이웅평 남도건설 회장의 모친상을 조문하기 위해 2일 광주를 방문했다. 그는 이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인 광주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를 참배했다. 참배에는 고귀남 전 국회의원과 고석태 전 조선대 약대 교수 등이 동행했는데 경내의 충노비를 유심히 살펴보던 고 전총리에게 고귀남 전 의원이 “나라의 충노가 되겠다는 거죠”라고 덕담을 건네자 가벼운 미소로 화답하기도 했다.고 전총리는 또 5일 통영국제음악제 이사회 비상임 이사 자격으로 폐막연주회에 참석했고 같은날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제3회 전국119마라톤대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고 전총리는 최근 대회조직위인 전국119마라톤대회 고문직을 맡았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고 전총리의 달라진 행보와 발빠른 움직임을 본격적인 대권행보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나라당 ‘빅2’에게 추월당한 고 전총리가 언제까지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실제로 고 전총리측은 고 전총리를 중심으로 한 신당창당을 물밑 추진하는 동시에 영향력 있는 장외후보와의 연대론도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칭 ‘고건 신당’을 창당한 후 국민후보를 기치로 본격적인 대망론을 펼펴 나갈 것이란 관측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신당창당을 추진할 경우 민주당과 중부권 신당 세력 등 군소 정치세력들이 1차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호남(민주당)과 충청(중부신당)을 지역기반으로 한 이른바 서해안벨트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 정치권도 요동치고 있는 작금의 정계개편 움직임과 관련해 고 전총리가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고 전총리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중부신당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두 당이 선전할 경우 고 전총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신당이 태동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또다시 참패할 경우 여권의 분화는 불가피할 것이고, 이들 이탈 세력을 고 전총리가 끌어안는다면 그 파괴력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또 고 전총리측 주변에서는 고 전총리가 지역적(호남) 한계를 극복하고 영남표심과 개혁세력을 겨냥한 여야 잠룡들과의 연대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는 소리도 나돌고 있다.

실제로 정치권 관계자들은 4년 중임 및 정부통령제 개헌이 현실화될 경우 여야 잠룡들간의 짝짓기는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성-여성간, 지역간 연대, 보수-개혁연대 등 표심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이상적인 러닝메이트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란 관측. 고건 대망론과 맞물려 정치권 일각에서 ‘고건-정몽준’ 연대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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