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세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정치권 주변에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박태준(TJ) 전총리간의 대권밀약설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한나라당은 최근 당 지지율이 40%대를 넘어서면서 ‘당내 경선 승리는 곧 정권창출’이라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따라서 당내 차기 대권주자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치열한 세력확산 경쟁을 펼치고 있다. 특히 차기주자 선호도 20%대를 넘나들며 고건 전총리와 3강체제를 구축한 박 대표측과 이명박 서울시장측은 이미 당권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당내 경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분위기다.

양측이 당내 세 확산은 물론 외부 지인들에게 적극적인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현실정치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계 거물들도 이들 후보들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대권정국이 가시화되자 서서히 자신들의 영향력을 담보로 차기주자들에 대한 지원을 본격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른바 ‘박근혜- TJ 대권 밀약설’은 차기 대선구도에서 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5·16세력들의 대권플랜 정지작업일 것이란 시각이 적지않다.5·16세력들 중 현실정치에 관여하고 있는 인사는 거의 없다. 박종규, 김재규, 차지철, 이후락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핵심 실세들 대부분은 이미 고인이 됐거나 야인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5·16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이들 세력들의 후광을 등에 업고 성장한 인사들이 정·관·재계 등 사회 각층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남권에서는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강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영남권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부친인 박 전대통령의 후광 덕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JP(김종필 전자민련총재)와 TJ도 대표적인 5·16 핵심세력이다. JP와 TJ가 비록 정계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이 두 거물의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하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5·16세력 차기대권 플랜’ 중심에는 바로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표와 TJ간의 대권밀약설은 박정희 전대통령과 TJ간의 정치적·인간적 관계를 고려할때 현실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3공때부터 이어온 특별한 관계

잘 알려진대로 TJ는 박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대통령과 함께 한국경제 부흥을 견인한 장본인이다. 3공화국 당시 포철신화를 이끌었던 박 전대통령과 TJ는 처음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영남 출신(박정희-경북 구미, TJ-경남 양산)인 두 사람은 박 전대통령이 육사 생도들에게 탄도학을 가르치던 시절 수학을 잘했던 TJ를 잘 챙겨주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 절친했다는 사실은 5·16을 준비하던 박 전대통령이 TJ에게 가족의 안위를 맡겼다는 점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당시 박 전대통령은 TJ를 불러 “임자는 일에서 빠지지. 잘못 되었을 때 내 가족들이나 돌봐줘”라고 당부한다.

박종규, 김종필, 김재규, 차지철, 이후락 등 기라성같은 최측근 인사들을 제쳐놓고 제자인 TJ에게 가족을 맡겼던 것. 하지만 TJ는 스승이자 주군인 박 전대통령의 당부를 어기고 5·16에 동참한다. 5·16 당일 TJ는 박 전대통령이 있는 상황실로 달려가 생사를 박 전대통령에게 맡긴다. 박 전대통령에 대한 TJ의 충성심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 전대통령은 혁명에 동참한 측근들을 청와대, 정부, 군부 등의 핵심 요직에 포진시켰지만 유독 TJ는 기업체로 보냈다. 이후 낙후된 한국경제 부흥을 꿈꾸던 박 전대통령은 ‘종합제철소’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우여곡절끝에 미국으로부터 돈과 기술 지원을 약속받은 박 전대통령은 대형 플랜을 이끌 적임자로 TJ를 선택했고, 그 누구보다 박 전대통령의 포부와 의중을 파악하고 있는 TJ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추진, 포철신화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포항제철이 세계 최고 철강회사로 성장하는 과정에 암초도 많았다.

정치권의 직간접적인 정치자금 제공 협박도 적지 않았다. TJ는 정보기관들로부터 수차에 걸쳐 가택 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정치권과 정보기관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아온 TJ는 박 전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다. 하지만 박 전대통령은 TJ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보다 깊은 신뢰를 보냈다. 박 전대통령은 TJ에 대한 신뢰의 표시로 당시 ‘종이마패’를 써 줬다. “박태준을 괴롭히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을 백지에 적어 서명을 해준 것. 게다가 박 전대통령은 TJ에게 포항제철의 인사·자금 및 경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TJ가 철강신화를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고, 두 사람의 인간적 신뢰감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TJ 정치행보 본격화

이처럼 두 사람의 두터운 신망과 우정은 자연스럽게 박 대표에게 이어졌다. 육영수 여사 피살(74년 8월) 이후 어린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박 전대표에게 TJ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었다.97년 박 대표가 정계에 입문하는 과정에도 TJ의 조언과 물밑 지원이 있었다는 후문이다.또 정계 입문이후 한나라당내에서 오랜 세월 비주류 생활을 했던 박 대표에게 변함없는 지지와 정치적 희망을 제시했던 인사도 다름아닌 TJ였다. 어쩌면 TJ는 박 대표가 정치 지도자로 우뚝 서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큰 꿈(대권)을 이루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대하고 있을 것이란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자신의 성공신화를 견인한 박 전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은 이러한 시각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나아가 TJ는 얼마전부터 박 대표를 지원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대선정국이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박 대표에 대한 정신적인 지지를 넘어 적극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실제로 TJ는 최근 외부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정치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TJ는 지난 10월2일부터 5일까지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과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39차 국제철강협회(IISI) 연례총회에 참석했고, 11월 16일 서울 태평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심수봉 콘서트에도 모습을 드러냈다.특히 심수봉 콘서트에 참석한 TJ는 “심수봉의 ‘그 때 그사람’을 즐겨 듣는다”며 “들을 때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생각나지만, 당시 사건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TJ는 박 전대통령의 마지막을 지켜본 심씨에게도 각별한 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대통령 서거 이후 정신적인 충격에 휩싸였던 심씨에게 TJ는 쌀과 금일봉을 전달하며 위로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의 각별한 정을 대변하고 있다. 이는 TJ가 박 전대통령을 여전히 마음속 깊이 품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자신의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박태준’을 출간한 TJ는 10월13일 중국 베이징 현지에서 중국어판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정치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TJ가 최근 외연을 확대하고 있는 배경에는 박 대표의 대망론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이와관련, TJ측의 한 인사는 “TJ가 박근혜 대표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당내 대권경쟁자인 이명박 시장의 지지율이 급등하자 위기감을 느낀 TJ가 박 대표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정가 소식통들도 TJ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플랜을 물밑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난 10월부터 TJ가 지인들에게 “박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며 자금조달과 조직 정비 등 구체적인 플랜을 지시했다는 소리도 나돌고 있다.

나아가 TJ는 자신의 정·관·재계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박 대표 후원조직 결성을 추진하는 동시에 오랜세월 정치역정을 함께 했던 JP(김종필 전자민련총재)에게도 박 대표 지지를 요청했다는 후문이다.‘박근혜-TJ 대권밀약설’을 부추기는 요인들이다. 아직 두 사람의 이러한 밀약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황은 포착되고 있지 않지만 그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따라서 밀약설 여부를 떠나 TJ의 복심이 ‘박근혜 대망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면 박 대표는 천군만마를 얻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두 사람의 대권연대가 현실화될 경우 한나라당뿐 아니라 향후 차기 대선구도에도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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