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명 검찰총장과 허준영 경찰청장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수사권 조정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검·경 수장인 두 사람간의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수사권 조정은 양 기관의 위상 및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정·허 두 수장을 중심으로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양측은 각각의 수뇌부를 압박하기 위한 네거티브 전략과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홍보전략을 병행하면서 최후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60년 숙원사업 달성을 목전에 둔 경찰은 대국민 홍보전에 박차를 가하는 등 수사권 독립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검찰 역시 막강 인력이 영입된 ‘국가수사개혁단’을 확대, 조직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측의 갈등 열기가 한겨울 한파를 녹일 정도로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분위기다.검·경간 본격적인 갈등은 거물브로커 ‘윤상림씨 사건’이 시발점이 됐다. 검찰이 2003년 군장성 로비사건 당시 윤씨의 공모자 이모씨를 지명수배중임을 알고서도 풀어준 하모 경감(전 경찰청 특수수사과 팀장)을 범인도피와 직무 유기 혐의로 12일 전격 구속한 것이 빌미가 된 것이다.

경찰, 네거티브 전략 승부수

사활을 건 검·경 간 ‘밥그릇 싸움’에 포문을 연 것은 허준영 경찰청장.허 청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윤상림씨 사건에 대한 검찰의 처리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허 청장은 “검찰 인사들도 윤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정보가 있지만 경찰은 검찰을 수사할 수 없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 검찰 역시 수사하고 견제할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청 내부에서도 윤씨가 검찰과 더 가깝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음에도 수사권이 없는 경찰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윤시영 경찰청 수사국장도 가세했다. 윤 국장은 “검찰이 경찰만 건드리고 있는데 좌시하지 않겠다. 검사들이 자기 돈 내고 골프치는지 조사해보자”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특히 윤 국장은 ‘경무관 승진청탁 1건에 2억, 윤씨 경찰 개입 단서포착’이라는 일부 언론의 기사에 유감을 표시하며, 검찰은 ‘언론플레이’를 멈추고 혐의가 있다면 공개적으로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하모 경감이 수배 피의자를 풀어준 건과 관련, 지난 6월 강순덕 경위 조사시 담당 검사가 이미 조사했던 사안을 뒤늦게 구속수사 하는 검찰의 저의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일선 경찰관들의 반발 움직임도 조직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달 검찰의 피의자 호송을 경찰이 거부한데 이어,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검찰의 직무교양교육에 경찰이 불참하거나, 검사장 표창을 거부하는 경찰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내부 분위기를 반영한 듯 경찰측은 향후 검찰 수뇌부의 비리를 들춰내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의 최고 수장인 정상명 총장이 청문회 당시 재산편법 증식 논란 등이 제기된 만큼 정 총장을 포함한 검찰 수뇌부들의 비리를 수집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모 지검 A검사장은 지난 10월초 처제의 골프회원권 특혜분양설에 연루, 곤욕을 치른데 이어, 11월 하남시 그린벨트 내에서 불법 임대수익을 올렸다는 구설에 올라 또다시 곤경에 처해 있다. 일각에서는 이 첩보를 입수, 내사에 들어간 경찰이 검찰 수뇌부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 윤상림 사건 압박

검찰측도 맞불작전으로 응수하고 있다. 13일 박한철 서울지검 3차장은 하 경감 구속건과 관련해 “청부 수사가 확인됐고 구체적인 증거도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경찰 반발과 상관없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비리혐의가 있으면 수사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윤씨 사건과 관련된 경찰 고위인사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수뇌부를 향한 인신 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박 차장은 ‘논어’의 구절을 인용, “공직자로서 말과 행동의 품격을 지키지 못하면 기관뿐 아니라 나라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허 청장을 겨냥해 직격탄을 던졌다.

검찰의 네거티브 전략 핵심은 윤씨 사건에 관련된 경찰 수뇌부를 압박하는 동시에 여권인사들이 연루된 비리의혹을 밝혀내는데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14일 삼성측으로부터 받은 채권을 노 대통령 대선자금으로 썼다고 시인함에 따라 검찰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대선자금 수사가 부실했다는 국민적 비판에 시달려온 검찰이 명예회복과 동시에 여권 압박용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이 천정배 법무장관에게 의지해 여당안에 대응하는 정부안을 마련할거라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조정안이 아직 여당내에서도 확정되지 않았고, 국회 통과라는 과정이 남아 있는 만큼 검찰 입장이 반영된 정부안을 마련하겠다는 전략.

이와관련,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은 검찰의 생존이 걸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평검사들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정 총장이 천 장관과 노 대통령과의 탄탄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즉 검찰 내부에서도 노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있는 정 총장의 막후 활동에 크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후문이다.특히 검찰은 경무관 승진을 앞둔 경찰 고위 간부들이 여권 실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인사청탁을 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밝혀내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경찰 주변에서는 승진 대상자들이 경기, 충청, 호남, 영남권 등 권역별 여권 실세들에게 전방위 인사청탁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히 나돌고 있다.

대국민 홍보전략 병행

이처럼 검·경은 상호 비방전 등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대국민 홍보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국민적 호응을 얻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경찰청에서는 수사구조개혁이 검·경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대국민 홍보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수사구조개혁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돕고, 국민이 경찰 수사에 대해 바라는 바를 겸허한 자세로 경청하고자 하는 목적하에 조만간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주 내용은 수사구조개혁에 대한 찬반,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평가, 경찰에 바라는 점 등으로 경찰입장을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검찰은 조직적·체계적 대응으로 위기를 타파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정 총장은 수사권 문제에 ‘올인’한다는 각오다. 연일 대정치권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정 총장의 행보는 검·경수사권 문제에 대한 일선 검찰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동시에 ‘더이상 정치권에 밀려 끌려갈 수 없다’는 강한 의지 표명으로 해석된다.여기에 정 총장은 마지막 승부수로 ‘국가수사개혁단’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관측된다. 문성우 청주지검장을 주축으로 한 ‘국가수사개혁단’에는 검찰 내부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26명의 검사를 포함해 수십명의 핵심인사들이 대거 포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조근호 범죄기획관(부단장), 조은석 부장검사(홍보팀장),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낸 윤대진 검사 등이 포함된 막강 포스트팀이 구성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검찰은 또 여권이 마련한 조정안은 검찰이 너무 안일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한 결과라고 자평하고 향후 대국민, 대언론, 대국회 홍보활동을 적극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 여, 국정원 수사권 폐지·축소 검토

국가정보원 개혁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국정원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수사권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정보 및 보안업무와 관련, 국정원이 기획조정권한을 통해 각 부처의 고유업무나 정책에 개입하는 등 폐단이 많다는 지적에서 나온 개선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당은 국정원 예산 등의 국회 보고를 의무화하고, 국가안위에 관련된 중대사안일 경우 국정원이 국회 보고를 거부할 수 있는 면책조항을 삭제하는 등 국정원 통제를 강화하는 방침을 세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내와 해외파트로 나뉜 국정원 조직을 정보수집과 분석파트로 재편하되 업무상으로는 산업정보, 대테러정보 등으로 구분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정원은 형법상 내란의 죄와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죄와 암호 부정사용죄,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 관련 죄에 대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만약 수사권이 폐지될 경우 국정원은 정보수집·분석을 통해 검찰과 경찰에 관련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당은 위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정원법을 개정키로 하고 당·정·청 조율을 거쳐 내주 중 이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정원은 정보수집 기능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당·정·청 논의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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