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과 사람으로 대권고지 선점한다.’시대가 변해도 지도자로서 요구되는 조건은 정형화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사람을 잘 부리느냐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차기 대선이 2년이나 남았지만 대권을 노리고 있는 여야 잠룡들의 주변이 분주한 이유이기도 하다. 멀고도 험한 대권 고지에 오르기 위해선 조직과 사람,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전략과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차기 주자들의 ‘용인술’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2007 대선 전 당내 경선을 치르기 위한 선거캠프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박근혜 이명박 고건 손학규 등이 그 대상이다. 민심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때 이들이 2007년 대권 도전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이들 중 누군가는 청와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번 호에는 당 복귀에 앞서 조직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용인술’을 싣는다.

“밑에서 일하는 사람 답답”

내년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당의장 출마로 가닥을 잡은 김 장관의 직접적인 움직임도 활발하지만, 현재 여야 잠룡군 중 가장 강한 결집력을 보이는 곳도 김 장관 진영이다. 김 장관이 평생의 큰 자산을 ‘사람’으로 꼽는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김 장관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당내 ‘최대조직’, 우스갯소리로 전국 최대조직이라는 얘기도 있다. 길게는 30년, 짧게는 10년, 민주화 운동을 할 때부터 연결된 사람들이 김 장관 주변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배’ 또는 ‘형’으로 부르며 얽혀 있다는 것도 각별한 인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준다.

그렇다 해도 ‘재야운동의 대부’이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는 단순한 논리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김 장관과 가까운 우리당 모 의원은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고, 밀어내지도 않는다”고 평했다. 그는 “사실,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답답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참모들과의 관계 역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 중에 김 장관은 어떤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고 있을까. 김 장관 진영의 핵심 포스트에는 대부분 김 장관과 ‘눈빛’만 교환해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는 게 중론이다.

또한 하부조직의 구성과 역할 분담에 있어서도 책임자에게 최대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김 장관 측근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20여년 전 민주화 운동을 통해 김 장관과 알고 지낸 우리당 모 의원은 “오랜 시간을 같이해 구구한 해석은 불필요하다”고 전했다. 우선 당 복귀에 앞서 정무기능이 의원회관으로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김 장관 보좌진들의 면면이 눈에 띈다. 총괄 관리는 기동민 보좌관이 맡고 있으며, 유학을 떠났던 윤천원 보좌관이 귀국을 서두르고 있다.

다음 정권 ‘평화복지의 정부’

의원회관 보좌진들을 비롯해 지난 2002년 민주당 경선 당시 김근태 캠프의 실무를 담당했던 보좌진 출신들이 모임을 결성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386 및 475세대인 이들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로서 3선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김 장관을 보좌했으며, 현재 당·정·청 곳곳에 포진해 있다. 향후 김 장관의 대권 행보와 맞물려 이들이 직·간접적인 실무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전대협 초대의장 출신인 이인영 의원은 대표적인 ‘김근태의 사람’으로, 우원식 의원과 함께 김 장관의 당 복귀에 앞서 원내 세결집에 집중하고 있다. 김 장관의 사조직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재단을 이끌고 있는 문용식 나우콤 대표도 김 장관의 최측근이다. 그는 서울대 학생운동 시절 ‘깃발’ 사건에 연루돼 당시 민청련 의장이었던 김 장관과 남영동에서 함께 고문당했던 인연이 있다.

또한 최근 출범한 국민정치연대를 이끌고 있는 정봉주 의원 역시 김 장관과 가까운 사이다. 다음은 김 장관의 핵심조직. 현재 각기 다른 성향의 네 개의 조직이 김 장관을 뒷받침하고 있다. 때문에 ‘김근태의 네 손가락’으로 불리고 있다. 먼저 2001년 4월 문을 연 ‘한반도재단(한반도 평화와 경제발전전략 연구재단)’은 김 장관의 대권 행보에 있어 ‘싱크탱크’로 알려져 있다. 올 초 재단 사무총장으로 합류한 문용식 대표는 잠시 흩어졌던 조직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경제포럼에는 40대 소장파 경제학자, 기업 CEO,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으며, 김 장관도 참석해 경제현안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참여하는 교수단만 해도 100~150명에 이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명단이 공개된 적은 없다. 한반도재단 내 동북아연구소도 주목 대상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방안, 동북아시대 국가경영전략, 정책 비전 연구, 인적 네트워크 형성 등을 통해 김 장관의 철학과 비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엔 ‘사회 양극화 해소’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으며, 이는 김 장관의 대선 후보 공약이 될 공산이 크다. 한편, 소장을 맡고 있는 이인영 의원은 참여정부 다음 정권의 모토에 대해 ‘평화복지의 정부’라고 말한 바 있다.

당 복귀 후 지방선거 겨냥

원내인사들이 주축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연)도 김 장관의 핵심조직이다. 김 장관이 좌장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호웅 의원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도위원 및 참여하고 있는 의원만 해도 이해찬·임채정·원혜영·이호웅·김태홍·배기선·문학진·최규성·우원식 ·유승희·노영민 의원 등 35명이다. 실무자인 김찬 정책실장(전 인삼공사 감사)이 합류하면서, 민평연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민평연의 1차 목표는 내년 지방선거.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불리기가 가속화하고 있으며 최근 실시하고 있는 ‘지방선거 아카데미’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당원 중심의 모임인 ‘국민정치연대’도 김 장관을 돕고 있다. 민평연과 함께 지역조직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정봉주 의원은 “민평연이 원내세력을 결집시키는 역할이라면, 국민정치연대는 당원과 김 장관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이라고 전했다.

‘김근태 친구들’도 김 장관의 핵심조직으로 꼽힌다. 김 장관 홈페이지에선 지난 2002 민주당 경선 이전부터 자발적 지지조직인 ‘김근태 친구들’ 모집 작업이 진행중이다. 당시 ‘김근태 팬클럽’을 개편, 현재 가입 회원은 전국적으로 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김 장관의 모교인 경기고, 서울 상대 인맥 중심의 오프라인 ‘김근태 친구들’의 면면도 짚어볼 대목이다. 아직은 ‘비정치세력’이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지만, 이들 역시 김 장관의 숨은 조력자로 꼽힌다. 경제학과 은사인 변형윤 교수, 정운찬 서울대 총장, 정건해 안건회계법인 대표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며, 지선스님, 함세웅 신부, 한승헌 변호사 등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 김근태 다섯 번째 손가락, 그 정체는?

인맥에 있어 당내뿐 아니라 전국 최대조직을 보유하고 있다는 김근태 장관 측근들의 요즘 고민은 김 장관의 이미지 쇄신이다. 좀처럼 모범생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강한 조직과 인맥의 정점에 서 있는 김 장관이지만, 재야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야권 후보는 물론 여권 후보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 이해찬 국무총리에게도 뒤처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김 장관 진영에선 전문가 그룹을 통해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온다. 전문가 그룹으로 김 장관의 재야 이미지를 희석시킨다는 전략인 것이다. 김 장관의 부족한 2%를 채워줄 전문가 그룹은 크게 재야학자들과 최근 김 장관의 자문을 돕고 있는 젊은 교수들로 나뉜다.

최근엔 ‘김근태의 다섯 번째 손가락을 만든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는 김 장관의 대선 행보에 있어 나름대로 역할을 분담해 활동하고 있는 네 조직, ‘한반도재단’, ‘민주평화국민연대’, ‘국민정치연대’, ‘김근태 친구들’ 외 또 하나의 조직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김 장관의 열린우리당 무사 안착을 위해 조직정비에 직접 나서고 있는 모 의원은 “각기 다른 네 개의 조직이 다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각 조직의 네트워킹 등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문화 분야 등 그동안 김 장관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귀띔했다. ‘김근태의 다섯 손가락’을 만나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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