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과 사람으로 대권고지 선점한다.’시대가 변해도 지도자로서 요구되는 조건은 정형화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사람을 잘 부리느냐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차기 대선이 2년이나 남았지만 대권을 노리고 있는 여야 잠룡들의 주변이 분주한 이유이기도 하다. 멀고도 험한 대권 고지에 오르기 위해선 조직과 사람,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전략과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차기 주자들의 ‘용인술’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2007 대선 전 당내 경선을 치르기 위한 선거캠프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박근혜 이명박 고건 손학규 등이 그 대상이다. 민심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때 이들이 2007년 대권 도전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이들 중 누군가는 청와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번 호에는 지난 1년간 ‘차기 대통령감’ 1위를 지켜온 고건 전국무총리의 ‘용인술’을 싣는다.

경쟁력이 ‘거품론’에 앞서다

지난해 5월 참여정부 초대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이후 이렇다할 정치적 행보를 자제하고 있음에도 전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과 상반된 이미지 때문에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거품론’ 주장도 있으나, 대선 레이스에 접어들수록 그에 대한 ‘영입론’이 불거지고 있다는 데서 대권주자로서 고 전총리의 경쟁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고건의 경쟁력’, 바로 ‘폭넓은 인맥’이다. 고 전총리의 ‘사람 관리’는 이미 알려진 바다.

공직 재직 기간 36년, 국무총리만 두 번, 그 외 장관 3회, 서울시장 2회, 초선에서 막을 내렸지만 국회의원도 지냈다.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해 지금의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그는 여야 제세력을 아우르는 상징적 ‘카드’로 활용됐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그를 가리켜 ‘처세의 달인’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고 전총리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그가 공직에 몸담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 관리’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번 알게 된 사람은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권주자로 부상한 요즘에도 일정을 관리하는 비서 외에 정무 및 언론 역할을 수행하는 보좌직원을 두지 않는 데서도 고 전총리의 사람 관리, 그 진면목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정치권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에피소드 1. 차기 대통령감으로 부상한 이후 서울 대학로 인근 사무실에서 소일하고 있는 고 전총리를 찾는 기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들어 현실 정치와 관련,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으나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고 전총리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예의 부드러운 미소와 친절함, 여기에 몸소 엘리베이터까지 나와 기자를 배웅하는 것으로 관리(?)를 마무리하곤 했다. 에피소드 2. 고 전총리의 대학로 사무실은 그의 자택과 가깝다. 때문에 산책삼아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 그곳, 넉살 좋은 학생이 “맥주 한잔 하자”고 아는 척을 하면 이에 선뜻 응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싱크탱크 ‘동숭포럼’?

그렇다면 사람 관리에 탁월하다는 고 전총리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포진해 있을까. 36년 공직생활이 곧 고 전총리 인맥의 근간을 이룬다. 또 고 전총리 인맥의 특징이라면, ‘친목모임’의 성격을 빌려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왔다는 데 있다. 고 전총리를 정점으로 한 모임은 그 수를 헤아리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그의 사무실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내무부 시절 고 전총리와 함께 손발을 맞췄던 인사들에 눈길이 모아진다. 초당회 보름회 기린회 목우회 등. 특히 초당회는 고 전총리가 전남지사로(1975~79년) 재직할 당시부터 30년간의 인연을 자랑하는 전남 출신 인사들의 모임이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정기적 모임을 가질 정도로 고 전총리와 가까운 사람들로 분류된다. 초당약품 창업주인 김기운 초당대 이사장의 아호를 따서 만든 초당회 멤버에는 강운태·전석홍 전의원, 이준범 전전남지사, 윤근환 전농림부 장관, 김창식 전 교통부 장관 등이 있다. 보름회는 장·차관을 지낸 인사 중 고 전총리와 가까운 사람들의 모임이다. 매달 15일에 모인다는 취지로 보름회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 최근 민주당에 합류한 신중식·최인기 의원, 김흥래 지방행정연구원장 등이 보름회 회원으로 알려진다. 문민정부 마지막 각료 출신들이 주축인 ‘문경회’에는 유종하 전외무부 장관, 심우영 전총무처 장관, 오인환 전공보처 장관 등이 포진하고 있으며, 관선 서울시장(88~90년)으로 지낼 당시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 모임에는 이원종 충북지사, 이동 전시립대 총장 등이 눈에 띈다.

이름도 특이한 ‘오리알회’도 있다. 85년 국회의원(군산·옥구)을 지낸 고 전총리는 13대 총선 당시 민정당 공천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 때 낙선자 모임이 바로 ‘오리알회’다. 한편, 고 전총리의 동문 인맥들도 짚어볼 대상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묶여있는 고 전총리와 가까운 인사들에는 이영일·박범진·길승흠 전의원, 한갑수·이민섭·유종렬 전장관, 유영 전강서구청장 등이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정치인들의 모임에는 이호웅·김부겸·신중식·김형오 의원 등이 활동하고 있다. 공무원 및 교수들과의 테니스 모임인 ‘상록회’도 있다. 이들은 20년 넘게 주말마다 코트를 찾는다. 손수익 전경기지사, 국찬표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안영섭 명지대 북한학교수,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 등이 멤버로 알려져 있다. 경기고 후배들로 구성된 ‘화목회’, 고시 13회(61년 시험)동기 모임도 있다.

원론수준 ‘고건발 정계개편’

고 전총리의 모임 중 정치권 인사들이 가장 주목하는 모임은 ‘동숭포럼’이다. 오래 전부터 고 전총리의 ‘사조직’으로 알려진 이 모임은 동숭동 인근에서 자주 모임을 갖는다고 해 이름이 붙여졌으며, 지난 대선에 앞서 ‘고건 대망론’이 불거졌을 때 ‘싱크탱크’로 비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이세중 전대한변협 회장, 정경균 서울대 명예교수, 김재순 전국회의장, 한종훈 아프리카 미술박물관장, 서울시장 재직시절 행정1부시장으로 활동했던 강홍빈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등이 동숭포럼 멤버다. 고 전총리와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위에서 언급한 수십개의 모임이 곧 고전 총리의 자문그룹이자 외곽조직이라는 견해가 많다. 때문에 이들 모임을 파악, 관리하는 측근이 있는가도 관심사다. 강홍빈 교수의 경우, 고 전총리의 최측근으로서 막후에서 인맥 관리를 돕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한편, 고 전총리의 향후 정치적 행보에 있어 4,000여 명의 ‘고사모 우민회’ 팬클럽 회원도 정치적 우군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고 전총리가 직접 나서 우민회의 정치 세력화를 우려했을 정도다. 그러나 정·관·학계에 걸쳐 막강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현실적인 정치적 기반이 없다는 것은 대권주자로서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민주당에 둥지를 튼 신중식·최인기 의원, 2006 지방선거 출마로 정치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강운태 전의원 등이 향후 대권 행보에 있어 가교 역할을 할 것이란 시각이 많지만, 아직까지는 국민적 인기를 염두에 둔 ‘영입론’ 및 원론적 수준의 ‘고건발(發) 정계개편’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고 전총리의 인맥은 그의 대권도전 선언과 동시에 전열 정비에 나설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 고건의 밥상과 숟가락

대권주자로서 높은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고건 전국무총리의 향후 대선 레이스와 관련, 지난 1년간 정치권에선 많은 우스갯소리가 등장하고 사라졌다. 그 중 가장 많이 정객들의입에 올랐던 말은 “숟가락만 있다”, “밥상 받을 생각만 하고, 설거지 할 생각은 안 한다”였다. 이는 고 전총리의 높은 인지도를 활용, 재건을 바라는 기존 정당 주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영입 의사를 전달하고, 강력한 대권주자라고 추켜세웠음에도 묵묵부답인 고 전총리, 이에 대한 원망과 섭섭한 마음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고 전총리의 선택을 드러내놓고 요구하는 사람은 바로 한화갑 민주당 대표다. 그는 요즘 들어 부쩍 고 전총리의 민주당 입당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대선 행보에 나설 것을 권유하고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한 대표가 주장하고 있는 ‘밥상론’이 고 전총리의 ‘사람 관리’와 무관치 않다는 것.

한 대표는 “정치하는 데는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뉘어져 한쪽은 재수가 좋아 밥상 차려놓고 와서 잡수쇼하는 경우고 또 다른 한쪽은 계속 자기가 농사짓고 밥해서 먹을 사람 불러 같이 먹자는 경우로 나뉘어 지는데 자신은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전자에 속하는 이는 고 전총리다. 이에 대해 고 전총리와 가까운 인사는 “길게는 30년 이상 알고 지낸 이들이지만, 고 전총리가 각별하게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인사는 “고 전총리가 모임을 소중히 여기지만 회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모임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 전총리 주변에 정·관·학계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음에도 이를 가리켜 ‘계보’라고 보는 시각이 드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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