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됐을때 정말로 잘해주기를 바랐는데 요즘보니 ‘이건 아니야’ 대북송금은 실정법 위반 … DJ반드시 구속수사해야

상도동 고갯길은 마침 시작된 장맛비로 젖어있었다. 정당팀으로 배속되었던 정치부 초년병 기자 시절, 상도동 출입을 위해 처음으로 이 길을 오른 것이 벌써 15년 전. 상도터널 주변에 들어선 대형 아파트단지와 올라가는 골목마다 못 보던 빌라와 연립주택 등으로 집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것이 우선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달라진 풍경 때문에 집을 찾는데 시간이 걸릴 일이었으나, 그때는 없었던 전직대통령 경호를 맡은 경찰들이 대신 미로의 안내역이다.동작구 상도 1동 7의 6. 그의 집은 거리풍경에 비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얼마 전 퇴임한 동교동의 모 전대통령 집에는 새로 큰 빌딩이 들어섰다는데, 15년 전 거의 그대로의 집 대문 안에서 낯익은 김기수 비서실장이 손을 맞는다. 김 실장 또한 민추협시절부터의 인연이다. 당시는 40세의 민주투사였는데, 지금은 그도 세월이 머리에 앉아있다.김영삼 전대통령도 현직 대통령의 신분으로 방일해서 동경 특파원들과 식사를 할 때 이후 오랜만의 만남이지만, 그래도 약 2년 동안 상도동에서 아침밥을 같이 했던 옛동지를 그때와 다름없이 격의 없이 맞았다. 당시 김 민주당 총재는 친한 기자들의 성에 동지라는 호칭을 붙여 ‘김동지’, ‘이동지’하는 식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이유를 물으면 민주화의 길을 같이 가는 동지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안 만났어. 게다가 내가 국내인터뷰는 통 안 하잖아. 아무튼 오랜만이요.”김 전대통령의 얼굴은 아주 건강하고 어떤 의미에서 평화스러워 보였다. 재임 때나 혹은 퇴임 후 IMF문제 등등 온갖 시끄러운 소음 속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젊어진 듯한, 정말로 15년 전으로 돌아가 ‘김총재’를 만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요즘 배드민턴을 쳐서 그런가. 아주 재미있어요. 이것에 열중하면 세상만사 다 잊어버리게 되더라니깐. 근데 그동안 도대체 왜 그리 안보인 거요.”

-저도 감옥 출옥 인사차 왔습니다. 총재시절 가택연금도 당하셨고, 영화에는 쇼생크 탈출이라는 작품도 있지만 억울한 옥살이 5년하다가 이제 새 정권을 맞으니 나름대로 감격도 남다르구요.▲조그만 기사 하나가 필화사건으로 번졌던 10년 넘은 이야기지만, 그 정권 실세들의 내막을 속속들이 알면서도 글 한 줄 쓸 수 없이 갇혀있던 기자에게 DJ정권 5년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언론인에게 생명은 펜인데, 그 펜조차 빼앗아 갔던 것이 DJ정권때였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여든 야든 이구동성으로 ‘이런 나라 만들려고 그 고생을 했느냐’는 나라 걱정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정권 초기면 으레 조금씩은 조용히 지나가는 법인데, 양측 모두 밀월은커녕 싸움판 일색 아닙니까.▲내가 주변 이웃들과 배드민턴 치다가, 가끔 차 한잔씩 하면서 세상 이야기하는데 이민 간다는 사람들 많아요.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구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는데, 뉴질랜드로 이민 간다 그래요. 연금에 땅, 집 등 부동산과 이것저것 정리해서 간다고…. 아니 조국을 버리고 간다는 것이 이게 될 말입니까. 참으로 걱정입니다.

- 이런 때일수록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핵 중의 핵이 대통령이고 그럴수록 어떤 중심이 잡혀야 하는데, 다른 것보다 노 대통령 취임 이후에 그의 말과 행동이 너무 튄다는 지적들이 많습니다.▲아니 이 사람(노무현 대통령) 뭔가 착각을 하고있어요. 그것도 DJ때랑 비슷한데 무슨 책을 많이 갖고 들어갔다 그래요. 아니 청와대가 무슨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잖아요. 책 그렇게 갖다가 놓을 데도 없어요. 읽을 것이 있으면 비서관들이나 전문가들 중요한 부분 요약을 부탁하든지 해서 자료화하든지, 또 그 자료이든 아니면 책을 정독을 하든 그것을 퇴근할 때 가지고 나와서 읽어야지, 대통령은 모든 것을 현실에 부딪히면서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이북문제, 국제적 관계, 국내경제, 사회·교육문제 등등 해야 할 일이 부지기수예요. 가만히 놀거나 한가하게 생각할 여유조차 없어요.

-대통령 입장에서나 정치인 입장에서나 선배 아니십니까. 노 대통령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그 사람은 내가 픽업한 사람입니다. 애초 재야운동한다고 정치권 제도권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하던 사람이 김광일·노무현 두 사람이었는데 당시에는 시민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죠. 둘 다 재야에 있겠다며 제도권엔 안 들어오겠다고 하는 것을, 내가 선거에 나가라고 권유하고 자금도 지원하고 해서 들어오게 되었고, 그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길래, (나는) 대통령 다 지낸 사람의 입장에서 누가 되든지, 정말로 내 본심인데, 당선되었으니 이젠 대통령으로서도 잘해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런데 요즘 하는 것을 보면 ‘이건 아닌데’ 정도의 차원을 넘어서서, 이젠 더 이상 잘하기 틀린 사람 아니냐 이런 느낌입니다.

-얼마 전에 퇴임한 김대중 전대통령도 있지 않습니까. 두 양반이 민추협 공동의장 때처럼 일을 같이 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내 몇십년 그 사람 거짓말에 속았거든.정말로 나 많이 속여 먹었다구요. 워낙 나에게 못되게 해서…. 재임 중에 나를 불러 식사를 하면서 ‘이젠 화해하자’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이북 갔다와서도 나를 다시 불러서 이야기를 하는데. ‘김정일이 온다.’ 이런 이야기야. 이이구 내가 거짓말하는 것은 다 알아요. 나는 ‘절대 못 온다’ 이래 판단했어. 그런데 자기가 약속했다면서 ‘꼭 온다’는 거야. ‘갈때 60만이 환영했고 올 때 40만이 환영했다’고 그래서 내 그랬죠. 아니 태극기 들고 ‘김대중 대통령 만세’ 그러면서 당신 환영하더냐. ‘김정일 장군 만세’ 그랬지. 내한테는 그런 이상한 말하지 마라.

나도 미국 중국 세계 다 다녀봤지만 부시 대통령하고 강택민 주석하고 같이 사열을 하는 거지, 대체 국무총리와 세 명이 같이 사열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또 만찬하면서 국무총리가 환영사하고 이쪽에서 답사하는 거지 김정일은 듣고 있고, 아니 김정일이 무슨 회장이고 다른 사람은 전무고, 게다가 ‘미군 철수도 안 하기로 했다’이래요. 아니 그건 김일성의 유훈인데 그런말 할 수 있겠느냐 하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데 며칠 되지도 않아서 바로 밝혀졌지 않습니까. 김정일이 거짓말했든지 그 사람이 거짓말했든지 둘 중의 하나 아닙니까. 아이고 지금으로선 그 사람 만날 생각 없어요. 내가 정말 그 사람 거짓말에 많이도 속았어요.

-최근 신정부들어 특검이 북해 송금과정을 수사하기도 했지만, 그 결과를 보면 결국 지난 5년 동안 김정일이 김대중을 속였고, 우리 국민들도 속아온 셈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김대중 전대통령은 다 알면서도 그런 모험을 감행했을까요.▲나는 김정일이 속였다기 보다 김대중이 속였다고 생각해요. 이북이 지금 주적이 되어 있는 마당에 실정법을 위반해서 본인이 밝혔듯이 5억 달러 갖다 주었고 북한이 핵개발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 아닙니까. 특검이 수사를 마치면서 ‘앞으로도 DJ는 수사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는데, 특검은 그런 말할 자격이 없어요.. 김대중은 대통령 그만 두었지 않습니까. 실정법 위반으로 반드시 김대중은 구속수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2의 김대중이 안나옵니다. 아니 돈 해외로 불법 송금하고 이리 저리 갖다준 것은 다 실정법 위반인데, 다만 이북에 갖다 준거니 특별히 용서하자, 이게 말이 됩니까.

-문제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구속 수사한다고 해도 이미 북핵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겁니다. 막대한 군자금은 이미 북한에 건네졌고, 북한이 핵을 개발했거나 혹은 그럴 정도의 힘을 비축했다면 김대중 구속수사조차 떠나간 버스에 손들기거든요.▲나는 핵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북한이 핵을 2~3개 정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원래부터 이런 생각이 있어서 재임때도 알아보니 핵무기는 핵실험이 필요하고 보통은 사막이나 물에서 하는데, 아직은 북한이 핵실험은 안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설사 있다하더라도 정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냐 의문스럽게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그런데 황장엽씨 있잖아요. 그 분 입장에서는 내가 자신을 북한으로부터 구출해준 사람이니 이전에도 나를 만나고 싶다고 자주 그랬는데, 그분이 처음 왔을 때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그래요. 그분 말씀이 자신이 서기시절에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아랫사람 한 사람이 와서 보고를 하는데, 핵무기를 3개 만들어 갖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는 거예요.

-황장엽씨의 방일, 방미 문제는 잘 성사가 될 것으로 보십니까.▲김대중이 때는 안됐지만 이번에는 될 것으로 봅니다. 아니 목숨을 걸고 자유를 위해 찾아온 사람인데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지 정말로 한심한 일입니다. 김대중이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인데, 무엇보다 인간의 자유, 인권문제 이게 가장 중요한 겁니다. 황장엽씨의 경우 부인, 아들, 딸 모두 자기 망명한 것 때문에 죽었는데 얼마나 맺힌 것이 많겠어요. 지금은 망명해와서도 자유의 몸이 아니지만 황장엽씨는 정말 뛰어난 인물이고 이북에서는 서기중의 한 사람이고 김정일을 직접 가르쳤던 사람 아닙니까. 그 사람 이야기가, 김일성 생전에 나와 정상회담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굉장히 신경을 썼답니다. 서기회의를 하루 한번씩하고 준비에 열심이었는데 하루 두 번 소집한 적도 있답니다. 그렇게 밑의 의견을 듣고 그랬는데, 김정일이는 정권 잡은 후 서기들을 부르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

-이럴 때일수록 사회의 구심점이 필요한것 아니겠습니까. 이전처럼 거리에서 항쟁을 해서 될 일이 아니고 대통령 탄핵을 하자니 그렇고, 결국은 정치의 구심점이 되는 대통령이 우선 자중이랄까 뭔가 크게 깨닫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은데요. 강의하는 노 선생님만 있다는 말조차 생겨났습니다. ▲노무현이는 과대망상증을 갖고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과거를 볼 때 내가 그를 픽업하고 5공 청문회에서 진짜 잘했어요. 그래서 누구든지 만나서 이야기하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하루는 검사들과 대화하고 하루는 어디 가서 특강하고…대통령은 그런 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집단 토론한다고 진정한 대통령 노릇이 다 된다 생각하면 큰 오산을 하는 겁니다. 제발 모든 의미에서 국민의 대통령이 무엇인지 그 자리로 찾아와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요즘의 야당을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대통령으로 여권에서 지내시기보다는 사실 40년 이상 야당 지도자의 길을 걸어오신 것이 더 긴 시간 아닙니까. 여당이 그러면 야당이라도 좀 제대로 해주면 속이라도 시원 할 텐데 요즘은 그런 야당조차 없어졌다는 이야기 일색입니다. ▲한나라당이 최근에 신 대표 체제를 갖추었지만,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야당이 제대로 되어야 하고, 야당이 제대로 되려면 정말 싸울 수 있는 사람이, 투쟁할 수 있는 사람이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야당을 할 때는 우리 국회기자들 몇 사람하고 설렁탕집·냉면집 그런 곳 많이 다녔는데, 내가 돈 낸 적 거의 없어요. ‘오늘 밥값은 제가 냅니다.’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먼저 내고 갔다 그래요. 야당 제대로 하면 나머지는 다 따라옵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정권 교체도 할 수 있고 이 막혀 있는 시국도 풀 수 있고 그럴 겁니다.경제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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