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대통령 시기상조? 반전에 나선 박근혜 행보


정치가 ‘남성 전유물’이라고 선 긋던 시대는 지났다. 한 마디로 세상이 변했다. 지구 반대쪽 미국에선 여성정치인이 지도자감으로 ‘뉴스 메이커’가 된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대표. 국내에서 높은 대중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북풍(北風)이 몰아치면서 박 전대표를 강타했다. 덕분에 ‘박근혜 신드롬’도 한풀 꺾이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차기 여성대통령에 대한 ‘시기상조론’까지 대두돼, 박 전대표의 목을 조이고 있다.
<일요서울>은 차기 대선을 1년여 남짓 앞두고, 한국-미국의 정치상황을 비교하면서 박근혜식 정면돌파가 무엇인지 위기 대처방안에 대해 분석했다.

朴, ‘체화된 퍼스트레이디’?

‘여성대통령의 시기상조론’, 하면 그 밑 배경엔 유교중심의 남성우월주의 사상이 묻어난다. 북핵 사태 이후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의 지지율이 급강한 것도 바로 여성성에 대한 불안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대중 앞에 3일에 한 번 꼴로 얼굴을 내민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대표는 그만의 대선 ‘불쏘시개’를 언제쯤 꺼내들 것인가.
박 전대표 캠프의 신동철 공보특보는 “내년 초, 공약을 내걸겠다”고 했다. 지지도에 밀린다고 해서 설익은 공약은 절대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타임(time)’보다는 ‘피리어드(period)’를 본다는 얘기다. 일단 여론과 ‘표의 잣대’논리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이원(2-want)효과’를 톡톡히 노리려는 전략이다. 그 밑바탕에는 취약분야인 ‘경제’와 ‘여성성’에 대한 극복 방법이 깔려있다. 이 때문에 ‘자신만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자유로울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후광’은 오히려 독(毒)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다. 박 전대표 캠프는 이에 대해 “비전, 공약만으로 총체적인 위기 상황을 탈출하기는 어렵다”며 솔직한 속내를 보였다.
박 전대표는 특히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노동자 이주문제, 부동산정책 문제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박 전대표가 치중하는 분야는 역시 외교 안보·경제 분야다. 하지만 정책은 아직도 추상적이다. 박 전대표캠프측은 “국민과의 ‘신뢰 쌓기’에 돌입한 뒤 공약도 그때 가서 제시하겠다”는 의도다.

동(同)세대 남성우월주의 심각
한국사회는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식 세대’에서 허용하는 평등논리가 ‘동(同)세대’에서만큼은 남성우월주의 사상의 잣대로 바라본다. 이런 사고의식은 대중의 심리에 묘하게 파고든다. ‘현재 여성대통령이 나오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향후 가능성은 있지 않느냐’는 시각과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박 전대표의 지지율 하강은 단지 여성성 때문일까.
한 정치학 교수는 “차기 대통령은 화합, 통합, 상생의 국정운영을 이끌 경제 대통령을 누구나 원한다”며 단지 “박 전대표가 여성정치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닌 외곬적 보수성향의 끈도 어느 정도는 놓아야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신동철 공보특보는 이에 대해 “대북강경정책만의 지도자는 아니다”면서 “이념 문제에 대해 초월적 인물이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다자간의 협력 체제를 우선시하고 있다”라고 했다.

부통령제 도입 등 개헌 필요성 부각
사실 여성의 정계진출이 뚜렷한 미국의 정치 상황은 한국정치와는 판이하다. 한(韓)-미(美) 두 나라의 정치제도는 모두 ‘대통령제’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제에는 양원제, 부통령제, 연방제 등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정치제도는 의원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변형된 대통령제’다. 쉽게 말해, 미국은 대통령의 ‘파워’(힘)가 약한 대신 의회가 막강한 힘을 지녔다. 권력이 분산된 형태다. 그러나 한국은 대통령의 권한이 가장 강력하다. 미국의 대선경쟁에서 ‘부통령제’는 사실상의 ‘러닝메이트제(대통령+부통령 2인 조합)’다. 이 제도는 같은 세력 간에 연합의 성격을 띤다. 이런 형태는 미국식 대통령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속 보인다”는 정치권 일각의 비판에도 열린우리당은 ‘부통령제’도입 등에 대한 개헌에 긍정적이다. 이는 권력분점을 제도화하자는 취지다. ‘DJP’연합 같은 세력기반을 이끌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필요하다면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역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해 대선 전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형태를 잘 살펴보면 다른 정파 간에도 연합·연대가 가능해 정계개편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대표 입장에서는 부통령제 도입 등이 대선레이스 경쟁에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박근혜-이명박 구도간의 분리 또는 당 이탈을 유도하려는 정치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朴-힐러리, 여성 유권자층 확보 절실
한(韓)-미(美) 두 나라는 각각 2007년, 2008년 대선경쟁을 앞둔 상황이다. 이런 기류 때문인지 박 전대표와 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종종 유사성을 지닌 인물로 지목된다. 이들은 각각 청와대와 백악관의 주인을 꿈꾸는 대권 수험생이다. 대중성을 지닌 ‘여성정치인’이란 교착점이 있다.
클린턴 의원은 미국 정계에서 ‘파워우먼’이다. 선거자금 모금 능력이 탁월한 여성정치인이기 때문. 그만큼 선거캠프의 진용(陣容)도 화려하다. 안티가 없고, 지지층이 두터운 점 또한 정치적인 자산이다. 미국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여성유권자가 53%를 차지했다. ‘사커(soccer) 맘’, ‘시큐리티(security) 맘’, ‘모게지(mortgage) 맘’ 등 기혼 여성들의 투표성향이 두드러지니 여성정치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상황은 좀 다르다. 물론 2030세대인 ‘키티맘(Kitty Mom)’ 세대층이라는 여성 유권자층이 존재하긴 하지만 투표율이 높지는 않다.

이념성향 한계 극복 관건
미국의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클린턴 의원도 시험대에 올랐다. 인기가 주춤하는 형국이다. 박 전대표 못지않게 위기상황이다. 이번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떠오른 ‘신예스타’ 바락 오바마의 등장도 한몫했다. 하지만 미국에선 ‘여성정치인’이라는 성차별적인 요인이 인기하강의 근본원인은 될 수 없다는 시각이다. 되레 클린턴 의원이 지닌 사회정책에 대한 진보성향에서 ‘인기추락’의 원인을 찾는 분위기다.
박 전대표 역시 힘 있는 팬클럽이 있다. 한나라당 대권주자 가운데 당심(黨心)의 위력이 가장 센 대권후보자다. 박 전대표 캠프에선 “‘퍼스트레이디’를 경험한 때문인지 (박 전대표가)신념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한다. “위기극복에 탁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파괴력’ 등 근본적으로 차이
하지만 박 전대표는 그의 아버지이자 정치적인 스승인 ‘박정희’ 그늘에서 벗어나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의 이런 부분 때문이다.
김창준 미(美)연방 전하원의원은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고집불통’ 정치에, 한국은 노 정권의 ‘오기’ 정치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면서 “‘부드러운 대통령’, ‘오픈마인드’를 가진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전의원은 또 “미국은 여성정치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런 변화는 한국에서도 일어날 것이다”라며 다만 “현시점에서 차기 대통령을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한인방송국인 ‘라디오 워싱턴’의 보도국 김진국 앵커는 “박 전대표는 고(故) 박정희 전대통령의 향수가 불러다준 덕으로 얻은 지지세(勢)다”며 “자신이 직접 남편을 대통령으로 세워 국가경영 경험이 있는 힐러리 클린턴 의원의 파괴력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 ‘선거정치’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대연정’으로 총리된 앙겔라 벤치마킹?

정치전문가들은 박 전대표의 정치적 행보가 독일 앙겔라 총리의 정치적 궤적과 너무 흡사한 면이 많다고 얘기한다. 정치철학과 경제 정책, 친미(親美)관, 대연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앙겔라 총리는 실패한 독일경제를 회생시킨 여성 지도자이다. ‘시장경제’를 효율성의 척도로 삼아 경제발전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에서는 단호한 입장보다 노-사간의 합의점을 찾는데 주력했다. 대(對)이라크정책에서도 그의 친미적 행보는 일반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기민-기사당(좌-우익)의 연합을 통해 ‘대연정’을 이끌어낸 통일독일의 최초 여성총리이기도 하다. 그가 오늘날 유럽의 ‘뉴스메이커’로 급부상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는 박 전대표가 ‘동서화합’을 강조하며 호남-영남간의 연대를 추구하려는 전략과도 흡사하다. 한나라당- 민주당간의 공조설이 한동안 나왔던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앙겔라 총리의 대망론을 박 전대표가 ‘벤치마킹’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한나라당 유정복의원은 이에 대해 “정치철학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교감하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미지 메이킹’이 대선승패 좌우
정치인도 이제 감성시대, 이미지시대를 살고 있다. ‘감성정치’를 추구하고, 화술과 세련된 헤어스타일, 감각적인 패션 등을 연출해 대중 앞에 나서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대중성을 지닌 여성정치인이 바로 박 전대표다.
이미지컨설팅을 하고 있는 ‘장이미지연구소’의 장소영 소장은 “대선을 앞두고 (박 전대표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주문한다. 장 소장은 “그는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면이 있고,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이미지를 지녔다”며 “대선을 앞두고 이미지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박 전대표에게는 앙겔라 총리,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같은 파워풀한 카리스마 이미지가 헤어스타일에서도 분출되어야한다는 설명이다. 장 소장은 또한 “박 전대표가 이제 할 말은 할 줄 아는 여성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에게 더욱 어필할 수 있어야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대표는) 여성의 이미지보단 중성적 이미지가 나타난다”고도 했다.
선거정치에서 ‘이미지 메이킹’은 경쟁력 있는 후보감을 만든다. ‘이미지’는 결국 오늘날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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