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비난 딛고 ‘그라운드 킹’으로 우뚝

지난 22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09 SONATA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전북 이동국(득점상, 팬타스틱, 최우수선수상, 베스트11)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뷔 11년차 ‘라이언 킹’ 이동국(30·전북 현대)이 마침내 K리그 킹으로 등극했다. 98년 K리그에 데뷔해 신인왕을 거머쥘 때만해도 이동국이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듭된 부상과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실패, K리그 복귀 후 부진 등의 시련으로 어느 순간 그는 팬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이동국은 부활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맞이한 2009년. 그는 생애 처음으로 K리그 득점왕과 MVP에 오르며 그간의 불신을 불식시켰다.

올해 정규리그 27경기에서 20골을 사냥하며 득점왕에 오른 이동국은 소속팀 전북을 창단 15년만에 처음으로 K리그 정상에 올려놨다.

개인적으로도 2009 K리그 대상에서 무려 4관왕에 올랐다. MVP와 득점왕은 물론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 선수로 선정되고 15개 구단 서포터스가 뽑은 ‘팬-타스틱 플레이어’에 선정되는 영광도 함께 누렸다. 뿐만 아니라 황금발클럽이 토종 공격수 득점왕에게 수여하는 황금발 트로피도 이동국의 차지였다. 그야말로 올 시즌은 이동국이 가장 빛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2일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틀호텔 컨벤션센터 컨벤션홀에서 치러진 ‘2009 쏘나타 K-리그 대상’에 참석한 이동국은 “오늘같이 행복한 날이 또 올까 싶다”며 “한때 팬들로부터 원성을 받는 선수였는데 팬이 주는 상까지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오늘은 가장 행복한 날”

하지만 이동국이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의 축구 인생에는 많은 굴곡이 있었다.

사람들은 98년 포철공고 졸업 후 그라운드에 뛰어든 그를 두고 ‘라이언 킹’이라고 불렀다. 185㎝의 키와 탄탄한 체격, 검게 탄 얼굴, 여기에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능력에 많은 축구팬들을 환호했다. 축구 실력에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이동국 때문에(?) 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 스탠드는 오빠부대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같은 해 차범근 감독의 눈에 들어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하는 등 성장기회도 빨리 찾아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인기는 그에게 독이 됐다. 데뷔 첫해 11골을 기록, 신인왕을 거머쥐었던 이동국은 이후 부진한 플레이와 부상 등 불운이 겹치면서 그의 축구인생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9년 8골, 2000년 4골, 2001년 3골 등 ‘특급 골잡이’라는 명성을 얻었었다는 게 무색할 만큼 성적도 부진했다. 이후 축구계는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이동국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과거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을 두고 “열심히 뛰지 않는 선수는 필요 없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결국 이동국은 히딩크 감독이 4강 신화를 써내려갔던 2002한·월드컵 당시 태극마크를 얻지 못했다.

광주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2005년 포항에서 재기한 이동국은 이듬해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특유의 골 감각을 되찾으며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과거 실력에는 못 미치지만 그간의 공백을 잊은 듯 그해 7골을 터뜨리며 재기의 가능성을 보였다.그러나 이번엔 부상이 이동국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딕 아드보카트 대표팀 감독이 이동국을 선택하려는 순간 부상이라는 악재가 터진 것. 결국 이동국은 2006독일월드컵 역시 TV로 경기를 지켜봐야했다.

이동국의 굴곡진 축구인생은 이게 끝이 아니다. 십자인대 부상을 딛고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진출했지만 적응에 실패한 채 1년 만에 성남 일화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K리그에서도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한 해 동안 2골을 기록, 쫓겨나다시피 올 초 전북 현대로 옮겼다. 빅 리그 진출에 실패, K리그에서조차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그를 두고 많은 축구인들은 축구인생이 끝났다고 평했다.

또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 소속돼 있던 2007년에는 대표팀 선배인 이운재, 김상식, 우성식 등과 함께 원정숙소를 이탈해 현지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여 1년간 국가대표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사건도 빚어졌었다.

그랬던 그에게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은 은인이었다. 이동국의 문제점을 찾아 보완, 재기에 성공시킨 것.

당시 최 감독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동국이가 게으르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며 “늘 열심히 뛰고 있으며, 팀의 중심이다”고 빅 리그 진출 실패에 이은 부진으로 자신감을 잃은 이동국을 칭찬하며 흥을 돋궜다.

이동국은 역시 지난 22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주저 앉아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워준 최강희 감독에게 감사드린다”며 자신을 영입, 출전기회를 준 사령탑에게 공을 돌렸다.

또 이동국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무대에 꼭 서고 싶다. 후회 없는 경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2010남아공월드컵…이동국의 ‘마지막 숙제’

그러나 이동국이 탄 ‘롤러코스터’가 또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은 모를 일이다. 특히 월드컵 출전운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프로무대 데뷔 11년차 이동국이 월드컵을 경험한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이동국은 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에서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에 5: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도 통쾌한 중거리 슈팅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월드컵 참패 이후 이동국은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과 MVP, 득점왕을 싹쓸이하며 ‘특급 골잡이’ 별칭을 얻게 됐다. 또 안정환, 고종수 등과 함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축구계 슈퍼스타로 군림했다.

하지만 98년 이후 부진한 성적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이동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같은 해 부산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에도 실패하면서 광주상무로 복무 입대하게 됐다.

광주상무를 통해 새로운 각오를 다진 이동국은 2004년 본프레레 감독 취임 뒤 다시 대표팀 멤버로 발탁됐다. 전성기 못잖은 활약을 보이며 그의 2006년 독일월드컵 출전은 당연한 듯 보였다.

그러나 월드컵을 2개월 앞둔 2006년 4월 K리그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대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그의 월드컵 진출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32살의 이동국에게 2010남아공월드컵은 이동국이 활약할 수 있는 마지막 월드컵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동국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체력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K리그 대상 시상식을 마친 뒤 이동국은 “챔피언 결정전 이후에도 꾸준히 체력을 관리했다. 개인 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며 “허정무 감독님 말씀이 몸을 100% 만들어오라는 건 아니겠지만, 후배들에게 결코 체력에서 뒤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돌아온 ‘라이언 킹’…‘롤러코스터’ 탈피가 관건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전도유망했던 10대가 어느덧 30살을 훌쩍 넘겼다. 그간의 세월동안 갖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지만 ‘라이언 킹’ 이동국은 결국 K리그를 정상을 차지했다. 이동국이 지금까지의 안타까웠던 시간을 훌쩍 날려 보내고도 남을 멋진 플레이를 계속해서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이젠 월드컵을 머릿속에 담겠다”

2009년을 완벽한 자신의 해로 인정받은 이동국이 2010남아공월드컵에 대한 큰 욕심을 선보였다.

이동국은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09 쏘나타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했다.

김정우(27. 성남), 슈바(30. 전남)와 함께 MVP를 경쟁했던 이동국은 선정위원단 유효투표수 110표 가운데 108표를 얻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올 한해 최고의 K-리거로 인정받았다.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20골을 기록, 1998년 프로무대에 데뷔한 이후 11년 만에 득점왕에 오른 이동국은 전북의 창단 15년 만에 첫 우승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지난 2003년의 김도훈(39. 현 성남일화 코치) 이후 6년 만에 20골대 득점왕으로 등극하는 무서운 실력발휘로 2009년 K-리그 최고의 골잡이로서 명성을 쌓았다. 시상식을 마친 뒤 이동국은 “오늘은 상복이 터진 것 같다. 오늘 같이 기쁜 날은 처음인 것 같다”며 “신인상도 받아봤지만 큰 영광이어서 너무 기쁘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올해는 우리 팀이 정말 열심히 했다”는 이동국은 “주저 앉았던 나를 일으켜주신 최강희 감독님께 감사하고 많은 도움을 준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특히, MVP를 양보한 김상식 주장에게 고맙다”고 덧붙였다.

이동국은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해서 편한 분위기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며 “외국인 선수들과도 원활한 관계가 도움이 됐다”고 올 한 해 좋은 활약을 보여준 원동력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시즌 성남일화에서 방출되듯 전북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던 이동국이었다는 점에서 이날의 MVP는 더욱 값졌다.

이동국은 “프로의 세계에서는 과거보다 지금이 더 중요하다”며 “지금 나는 전북의 유니폼을 입고 잘 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고 더욱 당찬 각오로 자신의 맹활약을 예고했다.

K-리그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인정받은 이동국에게 2010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할 대표팀 최종명단에 대한 질문은 빠지지 않았다.

이에 이동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하고 있어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더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래 기다린 순간인 만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 이제는 월드컵 출전의 순간을 머릿속에 담아두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정수호 기자] hohoho@dailysun.co.kr


#이동국 프로필

▶1979년 4월29일 (경상북도 포함)

소속
▶전북 현대 모터스

학력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경력
▶1998~2002 포항 스틸러스
(2000년 독일 베르더브래멘 임대)
▶2003년~2005년 광주상무 (군 복무)
▶2005년~2007년 잉글랜드 미들즈브러
▶2007년~2008년 성남일화
▶2008년~현재 전북 현대 모터스

수상
▶1996년 시도대항 중고 축구대회 MVP
▶1997년 춘계고교대회 MVP, 득점왕
▶1998년 K리그 신인왕
▶1998년 키카특별상
▶1999년 프로축구 빅스포상 공로상
▶2000년 아시안컵 득점왕
▶2003년 K리그 올스타전 MVP
▶2006년 한국 축구대상 특별상
▶2009년 소나타 K리그 대상 MVP, 득점왕,
베스트공격수 11, 팬-타스틱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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