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범 <밴쿠버-뉴시스> - 이상화 <밴쿠버-뉴시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가 새로이 만들어졌다. 지난 16일, 모태범과 이상화 선수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녀 500m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올림픽 빙상 종목에 참가했던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이후 62년만에 일궈낸 역사적 첫 금메달이다. 때문에 무관심했던 스피드스케이팅이 인기종목으로 떠올랐다. 온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젊은 영웅’ 모태범,이상화 선수에 대해 알아본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막내인 모태범 선수는 방년 21세. 그는 이번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어떤 언론에서도 메달 유망주로 거론된 적이 없는 ‘무명의 막내’였다. 모태범 선수는 16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벌어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2차 레이스에서 34초90을 기록해 1차 레이스(34초 92)와 합계 69초82로 금메달을 따냈다.


모태범, 스피드스케이팅 전설이 되다

1,2차 기록 모두 34초대인 것은 그가 유일하다. 이 날 그는 일본의 나가시마 게이치로(69초98)를 0.16이라는 간발의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모태범 선수는 한국이 처음 참가했던 19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이후 무려 62년 만에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 됐다. 더군다나 모태범 선수는 생애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영광을 일궈냈다.

이렇게 ‘금빛 우승’을 한국에 안겨줬지만 사실 그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김연아 선수를 내세운 피겨스케이팅과 금 텃밭인 쇼트트랙에 비해 스피드스케이팅은 그늘 속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말 그대로 ‘깜짝’ 선물을 안겨준 모태범 선수는 1989년 2월 15일생으로 은석초등학교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해 잠실고등학교 재학 중 국가 대표로 뽑혔다. 초등학생 시절 그는 스케이팅 선수가 되리라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토로했다. 오히려 취미로 배웠던 스케이트가 재밌어서 계속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 그런 그가 제23회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동메달을 따며 성인무대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178cm, 79kg의 탄탄한 체격의 모태범 선수는 2010년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3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난 위험하고 스릴있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의 표정에는 언제나 여유가 넘쳐 흐른다. 요즘에는 모터사이클에 푹 빠져있다. 이런 그의 사생활이 언론에 알려지자마자 팬들은 ‘모터범’이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그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의 장난끼 많은 모습도 단연 화제. 태극기를 두르고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세레머니를 하는 그의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여성들이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김관규 대표팀 감독은 “말은 없지만 속으로는 남에게 절대 지지 못하는 성격”이라며 외형과는 달리 뚝심있는 선수로 평가했다. 김 감독은 또 “워낙 열심히 하는데다 체력이 뛰어나다”며 “지난해 월드컵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전했다.

이날 빙질이 좋지 않았던 경기장에서도 좋은 성적을 낸 것은 타고난 힘 덕분이라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빙판 점검으로 경기가 1시간 30분 지연된 탓에 그만큼 긴장감이 지속된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그의 대범함은 금메달 획득의 원동력이 됐다.

그는 우승 직후 한 인터뷰에서 “태릉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때 아무도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다. 언론의 무관심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서러운’ 무관심 속에서 최선을 다했던 그의 피땀 어린 노력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금메달리스트의 출현에 대해 ‘이변’내지 ‘무명의 반란’이라고 표현한다. 힘든 환경에서 스스로 그런 위업을 달성할 수준까지 오른 ‘노력파’ 모태범 선수.

그가 했던 훈련들은 특이나 더 힘들었다고 한다. “겨울 시즌 성적은 대부분 여름에 판가름이 난다”는 김 감독의 혹독한 훈련 덕분에 쉴 시간이 없었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 대표팀은 4월부터 ‘특별 체력 훈련 시스템’을 가동했다. 하루 4시간이던 체력 훈련을 6시간으로 늘렸다. 선수들에게는 한계치 이상의 과제가 주어졌다. 180kg 정도의 스쿼트(역기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들던 모태범 선수에게 김 감독은 200kg을 들도록 요구했다.

대표팀 김용수 코치와 태릉 선수촌에 있는 다른 종목 지도자들이 ‘선수들이 다 도망가겠다’고 걱정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의 주종목은 500m가 아니었다. 1500m가 주종목인 그는 지난해 하얼빈 겨울유니버시아드대회 1000m, 1500m에 출전했던 것 이외에는 500m 출전 경험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500m 훈련도 1000m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어 “1000m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훈련을 아주 열심히 했다. 그게 생각지도 못한 금메달을 가져다준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경기가 있던 15일은 그의 21번째 생일이어서 기쁨 또한 남다르다. 그는 “내가 내 생일에 생애 최고의 선물을 준 것 같다. 아직 1000m가 남아있어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하는 것으로 생일을 기념했다”며 벅찬 우승 소감을 밝혔다.

그는 다음 날인 17일, 1000m 경기에서 또 한 번 69초12의 기록을 세우며 은메달을 추가해 한국을 종합 3위에 올려놓는 쾌거까지 일궈냈다.

이 경기를 한국에서 지켜보던 모태범 선수의 가족들은 아들의 기대 이상의 선전에 감격과 환희의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모 선수의 아버지 모영열씨는 “잘했다. 아들이지만 너무 장하고 온 국민에게 큰 기쁨을 줘서 고맙다”며 연이은 수상 소식에 기쁨을 한껏 드러냈다.


이상화, 강인한 체력 ‘철벅지, 금벅지’ 별명

한국이 거둔 쾌거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금메달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모태범 선수에 이어 이상화 선수가 또 한 번 일을 냈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도 금메달을 연이어 차지, ‘빙상 강국’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든 주인공이 됐다.

17일 오전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이상화 선수(21·한국체대)가 37초00의 세계 기록 보유자인 예니 볼프(31·독일)와의 피 말리는 접전 끝에 1, 2차시기 합계 76초09의 기록으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차 시기에서 38초24의 성적으로 1위를 차지한 이상화 선수는 2차시기 마지막 레이스에서 볼프와 나란히 출발선에 섰다. 출발 총소리와 함께 폭발하듯이 튀어 나간 이상화 선수는 볼프와 한치 양보도 없는 스피드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0.02초 뒤진 2위. 1,2차 합계 100분의 4초 앞선 76초09의 성적으로 이상화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상화 선수의 금빛 레이스로 대한민국 선수단은 독일에 이어 전체 순위 2위로 뛰어 올랐고, 동계 올림픽 사상 최초로 한 대회에서 한 나라가 남녀 500m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을 모두 차지하는 영광스런 기록을 안게 됐다.

결승선을 통과한 후 마지막 기록을 확인한 이상화 선수는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5위를 기록한 후 절치부심한 4년의 값진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만들어 낸 환희의 눈물이었다.

팬들에게서 ‘철벅지’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가진 이상화 선수. 그것은 피나는 훈련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올해 21살인 이상화 선수는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지만 국내에서 만큼은 사실 최고를 자부하는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스타다.

어린 시절부터 전국대회를 휩쓸며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던 그는 휘경여고 재학 당시 국가대표에 발탁돼 500m와 1000m에서 호기록을 작성, 한국팀의 기대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메달권에 근접하는 기록을 작성한 그는 0.17초 간발의 차로 아쉽게 메달을 놓치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그러나 이상화 선수는 당해 년 월드컵 시리즈 500m에서 1,2위를 연거푸 기록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간 이상화 선수는 극심한 경기력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해 2월 중국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 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 부활의 청신호를 켰다.

이후 월드컵 시리즈에서 한국 신기록을 연속으로 작성한 이상화 선수는 토리노에서의 실수를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번 올림픽에 출사표를 던졌다.

“슈퍼맨처럼 스케이트를 잘 타고 싶다”며 슈퍼맨 마크 귀걸이를 걸고 경기에 임한 그는 자신의 말처럼 한국팀에게 3번째 금빛 메달을 안기는 슈퍼우먼급 맹활약을 펼쳐 지난날의 아픔을 설욕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이상화·모태범 ‘초등동창’ 눈길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에서 연이어 금메달 낭보를 전한 이상화, 모태범(21ㆍ한국체대) 듀오의 남다른 인연 또한 눈길을 끌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을 뿐더러 양 선수의 집안 모두 이웃사촌을 넘어 한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냈다. 금메달 소식에 제 식구처럼 기뻐하는 이들 빙상인 가족의 인연은 금빛 낭보의 또 다른 수훈갑이다.

모태범 선수의 아버지 모영열(52) 씨 또한 이상화의 금메달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모씨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아이스링크로 운동을 하고 돌아오곤 했다. 참 착하고 열심히 연습하는 아이였는데 금메달을 땄다고 하니 내 아이 일처럼 너무 기쁘다”고 전했다.

이들의 인연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상화 선수와 모태범 선수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2동 은석초등학교 동창으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며 동네 친구로 자랐다. 이상화 선수는 여자임에도 남자 선수와 함께 운동하며 ‘철벅지’란 별명만큼이나 강인한 체력을 키워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모태범 선수와 늘 붙어 다니게 됐고 어려운 점이 있어도 함께 격려하고 위로해주며 깊은 우정을 이어왔다. 서로 힘이 되며 동계올림픽을 준비한 이들은 결국 남녀 동반 금메달이란 쾌거를 올리며 빙상계에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모씨는 “돌아온다면 이상화 가족이나 우리 가족이나 모두 세상 어느 때보다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naver.com


우선미 기자  wihtsm@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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