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으로 선수들 하나하나 개인으로 생각하는 훈련 도입

지난 12일 허정무 감독이 파주NFC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예비명단에 포함된 축구대표팀 선수들에게 훈련을 지휘하고 있다.

“얼마나 영리한지 몰라요. 내가 유리 현관문 밖에 있으면 다가오려고 손으로 막 두드려요. 요즘 녀석들 크는 재미에 삽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18개월 된 쌍둥이 외손자 강하준·예준의 자랑을 하는 그는 영락없는 ‘자상한’ 할아버지다. 그 만큼의 자랑으로도 모자라는지 지갑 속의 외손자들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그리고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자랑을 이어간다. 허정무 감독은 가족사진과 항공사 승무원인 둘째딸 허은씨(27)가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도 꺼내든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따뜻한 가장의 모습 뒤에는 그를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표정은 심각하게 변했다. 따뜻한 미소를 언제 지었냐는 듯한 엄숙한 표정은 그야말로 ‘축구인 허정무’의 모습이었다. 남아공 월드컵에 오르기까지 순탄치 않았던 여정을 회상하는 듯한 그의 표정에서 어깨에 진 무거운 짐이 여실히 느껴지는 듯 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허정무. 그의 축구 인생에 대해 알아본다.

그가 ‘성인’ 축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한국 전력에서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23세의 그에게 기회는 연이어 찾아왔다.

차범근 감독이 1979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해 활약하자, 이에 자극 받아 그 이듬해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에 입단했다. 여기서 활약할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이 부르던 그의 애칭은, ‘용무 후’. 허정무의 이름을 네덜란드 식으로 부른 것이다.

더불어 ‘진돗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그의 고향이 전라남도 진도군이라는 점과 그의 끈질긴 승부근성과 투지에 착안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근성(?) 때문일까. 그는 반 년 정도 교체 멤버로 뛰다가, 그 뒤로는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주로 미드필더로 뛰면서 3시즌 동안 77경기에서 15골을 넣고, 1982-83시즌 팀의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치다 1983년 국내로 복귀했다.

국가대표 경력은 이보다 더 길다. 그는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1986년 FIFA월드컵에 출전해 본선 1차전인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끈질기게 마크했다. 이 때 그는 마라도나를 발로 걷어차 한국 축구는 ‘태권 축구’라는 오명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A매치 84경기에서 총 25골을 넣은 그는 1986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한다. 짧은 선수 생활이었지만, 화려했던 경력을 뒤로 하고 과감히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한다.

코치 생활을 접고, 1993년 포항 아톰즈 감독에 취임한 그는 그 해 아디다스 배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화려한 첫 발을 내딛었다. 1995년 시즌 도중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됐지만, 거절한 뒤 그 해 다시 K-리그로 복귀해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취임한다. 1997년에는 팀의 K-리그 준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98년 시즌 도중에 FIFA 월드컵 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발탁된다. 그리고 2000년 하계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도 함께 맡게 됐다.

그러나 감독의 길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올리고도 첫 경기였던 스페인전을 0 : 3으로 패한데 따른 후유증 (골득실차)으로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패배해 3위에 머무르면서 2000년 10월 감독직을 사퇴했다.

이후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하면서 7년여에 걸쳐 외국인 감독 체제가 시작되었다.

당시 ‘허정무는 무능력하다’는 독설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허정무 감독이 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발탁했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은 세계적으로 성장했고, 특히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얻은 2승 1패라는 성적은 역대 대한민국이 얻은 승점 중에 가장 높은 점수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그를 호평했다.

이런 그의 평가 때문일까. 그는 7년여 년에 걸친 외국인 사령탑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다시 두 번째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하게 된다. 당시 허정무 감독은 “축구 인생을 걸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과 함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험난한 여정 끝에 무패 본선진출의 신화 달성

당시 대한민국은 아시아 3차 예선과 최종예선을 거치게 되었는데, 3차 예선 첫 경기인 투르크메니스탄전을 4:0 승리로 장식하면서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원정경기에서 득점없이 0:0 무승부를 거두고, 요르단과의 홈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는 무기력한 경기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이후 요르단/투르크메니스탄 원정에서 각각 1:0/3:1 승리를 거두고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3승 3무, 3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2008년 6월 27일에 발표된 최종예선 조편성은 험난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은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3차 예선에서 맞붙었던 북한, 중동의 복병 아랍에미리트(이하 UAE)와 B조에 편성되었다. 이는 곧 아시아 최종예선 죽음의 조가 된 것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1989년 이후 19년간 이긴 적이 없는 까다로운 상대였고 이란 역시 상대전적에서 호각세를 이루는 까다로운 상대인데다 북한은 3차 예선에서만 2경기 연속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한 힘든 상대였다. 과연 허정무호가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첫 경기는 북한과의 원정 경기였다. 처음에는 북한에게 패널티킥을 먹어 패배의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허 감독이 발굴한 기성용이 불과 4분 만에 동점골을 넣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는 첫 관문이라 할 만큼 난관이었다. 그러나 전반을 잘 막아낸 대표팀은 후반 32분 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으며 경기를 풀어나갔고 마침내 19년 무승 징크스를 깨고 2승 1무로 조1위를 달리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을 잘 마무리한 허정무호는 2009년 2월 11일 두 번째 난관인 이란 테헤란 원정 경기를 맞이했다. 전반에 잘 싸우고도 상대팀에게 한 골을 먹혔지만 후반 36분 박지성이 동점골을 넣어 1:1 무승부를 기록, ‘원정팀의 지옥’이라는 테헤란에서 한숨을 돌렸다. 이후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1:0의 승리를 거둬 마침내 무승부 사슬을 끊었고, 6월 6일 UAE와의 원정 경기에서 2:0의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며 7연속 본선 진출을 달성하였다.

이것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기록일 뿐만 아니라, 죽음의 B조에서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조1위를 고수하는 기분 좋은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후 허정무호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이란과의 홈경기에서는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곧 박지성이 동점골을 기록하여 1:1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에 따라 허정무호는 최종예선에서 4승 4무 B조 1위로 무패 본선진출의 신화를 달성하였다.


선수 개개인을 먼저 생각하는 훈련으로 남아공 진출할 것

참 멀고도 먼 여정이었다.

감독으로서 2년 3개월의 세월동안 허정무 감독은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이제 또 다른 새로운 신화를 만들기 위한 라스트 피니쉬(last finish)를 앞두고 있다. 한 달 남짓 남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뜰 허정무호가 16강 진출을 이뤄내는 것이 바로 그것. 그리고 그는 이에 앞서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허 감독은 이미 30명의 예비 선수들을 뽑았고, 그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획기적인’ 훈련 방법을 도입했다.

먼저, 그는 이번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면서 핵심 키워드를 ‘소통’으로 잡았다. 선수들 간의 소통, 그리고 선수와 코치와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감독은 훈련을 시작하면서 “소통을 통해 선수들끼리 눈빛만 봐도 통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간에 대화를 많이 하는 등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방법의 일환으로 그는 ‘선수들 개인 하나하나를 배려하는’ 코칭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상당한 박주영 선수에게 1주일 정도의 시간을 두고 회복하는데 중점을 둔 계획을 짰다. 남아공 월드컵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기에 선수를 압박하는 것보다 정상 훈련을 완벽히 소화해 낼 수 있는 건강상태를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박지성 선수과 이청용 선수가 12일 오전 파주 NFC(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입소했지만, 이날 오후 이들을 전격 퇴소조치 했다. 허 감독이 특별휴가를 준 것이다. 허정무호가 출범하고 부상이 아닌 이상 이제까지 입소한 선수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적은 없었다.

허정무호의 소통의 극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허 감독은 “선수들이 기계가 아닌 이상 휴식이 필요하다. 박 선수와 이 선수는 장거리 비행을 했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항상 선수들에게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고민은 ‘과학적’인 훈련 방법의 도입에도 영향을 미쳤다. 파주 NFC에서는 첨단 장비를 볼 수 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비다.

고지대인 남아공에서의 현지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설치한 ‘산소방’과 선수들의 몸상태를 과학적으로 파악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무선 경기력 측정 시스템’을 들여왔다.

무선 경기력 측정시스템은 12일 훈련 때 첫 선을 보였다. 심박수와 순간 속도, 이동 동선 등 선수 개개인의 정보를 운동장 주변에 설치된 12개의 무선송신기에 취합해 코칭스테프가 이를 분석해 선수 개개인의 몸 상태와 경기력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한 첫 훈련을 마친 후, 허 감독은 “선수들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체크할 수 있다. 전술적으로나 체력 관리 측면에서 유용할 것이라 생각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국가의 사활을 걸고, 전장으로 전진하는 장수처럼 허 감독의 모습은 당당하다. 월드컵을 향한 허정무 감독과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의 거칠 것 없는 행보를 기대해 본다.

[우선미 기자] withto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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