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올라가는 연어들처럼… 90년대 젊음의 아이콘이다


가수 강산에는 노래하는 인권운동가로 불린다. 그의 노래는 강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대의 상처부터 서민들의 일상까지 그는 사랑과 평화를 외친다. 1990년대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 광고에 출연하며 ‘젊음, 그 생각의 자유로움’의 광고 카피와 함께 당시 신세대들의 열정과 자유를 대변했다. 데뷔한지 1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왕성한 공연활동을 벌이고 있는 가수 강산에에 대해 알아봤다.

강산에는 1992년 첫 번째 앨범 ‘Vol. 0’을 발표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이 앨범 수록곡 ‘라구요’는 한국전쟁 당시 남편과 떨어져 피난왔던 부모 등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앨범 발표 당시 이 노래는 수많은 누군가의 부모와 실향민들의 송가처럼 불렸다. 강산에는 ‘라구요’와 함께 ‘예럴랄라’,‘할아버지와 수박’ 등의 곡들을 박청귀, 이근형, 강기형 등의 록 세션에 담아 부른 장발의 기인으로 통했다.

하모니카 연주와 함께 통기타를 연주하며 자유를 외치던 자유인이었다. 그는 잘 다니던 경희대학교 한의대학교를 돌연 자퇴하고 백마 ‘화사랑’이란 곳에서 먹고 자며 노래했다. 강산에의 이런 행보는 한 TV프로그램에 소개되며 독특한 이미지를 가진 록커로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강산에는 2집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적 전환기를 맞게 된다. 시대의 아픔을 노랫말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사실 1집 ‘라구요’에서도 실향민의 아픔을 노래했고, ‘돈’이란 곳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표출했다. 하지만 2집에서는 이 같은 시대적인 메시지가 음반 전체로 확대가 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경험론적 자유에서 분단과 반전에 대해 노래하는 ‘의식있는 음악인’이 된 것이다. 가사도 직설적으로 전달했다. ‘선’이란 곡에서는 “맘 속에 무겁고 새까맣게 의미 없는 선을 그었다/ 보이지 않는 바다 밑까지 그 선을 그어 버렸다/ 끝이 없는 하늘에 오르는 그 선을 그어버렸다”며 국가와 개인의 ‘벽’에 대해 노래했다.

‘더 이상 더는’을 통해서는 “언제나 가진 자의 논리로 완성되어지는 비극의 끝은 그저 흘러가는 역사의 의미일 뿐, 아이들의 비명에 눈이 아프다”라는 육성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노래했다. 이 앨범에는 무거운 분위기의 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2집 수록곡 ‘넌 할 수 있어’의 “너라면 할 수 있을꺼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라는 가사는 그 해 겨울 수험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그를 스타 반열에 올려놨다.

‘블랙커피’ ‘널 보고 있으면’ ‘우리는’ 등은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다. 이 세 곡을 만들어낸 김정욱의 발견은 이 앨범의 또 다른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강산에는 이런 노래들을 모아 박청귀, 한상원, 김정욱에게 디렉팅을 맡겼다.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강산에는 앨범을 총괄 프로듀싱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 명의 디렉터들은 앨범의 편곡과 세션에 깊이 관여했고, 자신들에게 잘 맞는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강산에만의 소리를 만들어 냈다.

강산에는 이 앨범을 통해 9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산에는 이후의 작품부터 일본인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 ‘하찌’와 호흡을 맞추며 과거 록 사운드를 벗어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3집 부터는 ‘하찌’의 섬세한 프로듀싱이 강산에의 음악적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후에도 ‘하찌’의 정갈하면서 정돈된 음악적 영향이 앨범에 녹아들어 있다.

강산에가 1992년 첫 앨범을 발표한지 이제 18년째. 그는 아직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공연 등을 비롯해 왕성한 음악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