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록 살아있는 전설 80년대 젊음의 ‘행진’


록 밴드 ‘들국화’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팀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들국화의 전성기는 허탈할 정도로 빨리 끝났다. 1집 ‘들국화(1985)’를 발표한 뒤 수록곡의 대부분이 히트치는 기염을 통했다. 당시 음악계에 절대적 ‘권력자’로 군림했던 방송국 라디오 PD들 조차 이들의 음악을 경쟁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밴드 ‘들국화’의 향수를 쫓아가봤다.

몇 년 전 경향신문사에서 흥미로운 기획연재를 했다. 음악 전문 웹진 가슴네트워크에 의뢰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선정한 것이다.

들국화의 1집 앨범은 100대 명반 중 당당히 1위로 선정됐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산 역사로 통하는 ‘조용필’ 등 쟁쟁한 음악인들을 모두 제쳤다. 들국화는 1985년 전인권(보컬, 기타), 최성원(베이스), 허성욱(키보드), 조덕환(기타)을 주축으로 결성됐다.

들국화의 음악은 1960년대 영국 록이 미국 등 세계를 강타했던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 on)과 연계된다. 당시 영국 음악신은 록큰롤, 블루스, 포크,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며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이끌었던 ‘비틀스’, ‘롤링스톤즈’, ‘레드제플린’, ‘더 후’ 등의 음악은 전 세계를 순회하며 마침내 한국에도 상륙했고, 들국화의 음악적 양분이 됐다. 들국화의 1집 앨범 표지가 비틀스의 ‘let it be’앨범 자켓을 오마쥬 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실제 전인권 등 들국화 멤버 전원은 비틀스의 광신도였다. 들국화의 음악적 행보는 단명한 것을 제외하면 레드제플린과 닮은꼴이다. 레드제플린은 1980년 드러머 존 본햄의 사망으로 해체 될 때까지 소규모 공연장과 대학 소극장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입소문을 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경우다. 듣기 좋은 곡을 수록한 싱글 앨범을 내고 공중파 전파를 통해 스타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일반적인 스타만들기 방법인데 레드제플린은 TV출연을 최대한 자제했다. 들국화도 이런 경우다. 들국화는 당시 명망 높던 대중음악 TV프로그램 출연을 배제하고 라이브 공연을 위주로 활동했다. 공연 활동이 입소문을 타며 지지층을 두텁게 형성했고, 앨범 판매량으로 이어지는 보기 드문 성공 사례다. 들국화는 첫 앨범을 낸 이듬해인 1986년 라이브앨범을 발표했을 정도로 라이브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정규앨범은 모두 3장을 발표했는데 이중 1집 ‘들국화’는 한국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앨범에 수록된 9곡이 모두 인기를 끌었다. 들국화의 음반이 인기를 끌고 한국 최고의 명반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집 ‘들국화’를 들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첫 곡 ‘행진’의 광할함과 두 번째 트랙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 시절 청바지 입고 통기타 치던 세대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전인권 특유의 카리스마는 ‘그것만이 내세상’에서 절정을 이뤘고 ‘행진’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송가처럼 여겨졌다. 이들 곡 외에 ‘세계로 가는 기차’, ‘사랑일 뿐이야’, ‘아침이 밝아올 때가지’, ‘매일 그대와’, ‘더 이상 내게’ 등은 라디오 전파를 타며 젊은이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당시 음악계의 절대적 ‘권력자’였던 라디오 PD들도 TV출연을 잘 하지 않는 들국화 모셔오기 경쟁을 했을 정도다. 들국화 음악성이 남달랐던 비결은 멤버 전원이 팀의 핵심으로 참여하며 완전한 ‘밴드’ 구조를 가지고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행진’은 전인권이 작사·작곡했고 ‘그것만이 내 세상’과 ‘더 이상 내게’ 등은 최성원이 작사·작곡했다. ‘세계로 가는 기차’는 조덕환이 작사·작곡했다. 이런 밴드 멤버들 간 완벽한 음악적 교감은 마치 비틀스를 연상케 한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그랬던 것처럼 들국화도 전인권과 최성원은 환상의 작곡 파트너였다. 들국화 멤버들이 처음 모였을 때도 시작은 “비틀스 처럼 한번 해보자”였다고 한다. 들국화가 해체된 지 20년이 지났다. 한국 록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포문을 연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후배 음악인들은 밴드 해체 이후 헌정앨범을 통해 들국화에 존경심을 표시하며, 아직도 공연장에서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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