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년 동교동 파워 ‘꿈틀’

지난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기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에서 이희호 여사가 고인의 자서전 초판을 헌정하고 목례하고 있다.(위)지난 12일 전남 무안군 전남도청 앞 중앙공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서 이희호 여사와 박준영 전남지사, 정세균 민주당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등이 제막버튼을 누르고 있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이후 김 전 대통령 다시보기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8일 거행된 김 전 대통령 추도식에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장남 홍일씨 등 유가족,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 여야 인사,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 정부 관계자, 김대중 정부 시절 각료·비서진,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1주기와 함께 김 전 대통령 다시보기도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그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곳은 서점가다. 김대중 자서전을 비롯해 옥중수기 등 잇따라 출시된 김 전 대통령 관련 서적들이 교보문고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민주당은 이 바람을 타고 민심끌기와 조직통합 두 마리 토끼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여권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김 전 대통령 1주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김 전 대통령의 1주기 기념행사는 성대하면서도 엄숙히 진행됐다.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은 추도사, 고인 육성 영상, 추모 노래, 자서전 헌정, 유족 대표 인사, 종교의식, 헌화 및 참배 등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흰 옷을 입고 추도식에 참석한 이희호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직접 고인의 영전에 바쳤다. 이 여사는 추도식 내내 고인을 그리워하며 슬퍼했다. 이따금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함께 자리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추도식이 끝날 때까지 이 여사 옆을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는 유족대표 인사에서 “아버지가 먼저 가신 분들과 함께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계실 것으로 믿는다”며 “국가와 민족만을 생각한 아버지의 뜻과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유족들과 참석자들은 고인의 묘역으로 이동해 고인을 기리는 종교의식과 헌화 및 참배를 이어갔다.


추모행사 곳곳에서 성황

1주기를 통한 추모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날인 17일 오후에는 서울광장에서 고인을 기리는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1주기 추모위원회’가 주최한 문화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과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의 연주, 시인 황지우 씨의 추모시 낭송,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 상영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서울광장 오른편에 설치된 추모 헌화대에는 시민 2000여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또 김 전 대통령의 모교인 목포상고(현 목포제일고) 총동문회는 오는 28일 교내 도서관 앞에서 김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식을 갖는다. 이 동상은 김 전 대통령이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왼손을 높이 든 채 유달산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김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 등 다양한 추모행사도 열렸다.

성황리에 출판기념회를 열어 서점가 돌풍을 예고했던 ‘김대중 자서전’은 일주일 만에 초판 2만부가 매진되고,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선 지난 12일 ‘김대중의 유산’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개최됐다.

이날 학술회의에선 ‘2010년 후광 김대중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 도쿄대학 명예교수 와다 하루끼(和田春樹) 교수에 대한 시상식과 ‘김대중과 북아시아 평화체제’를 주제로 한 추모강연 등이 열렸다.

같은 날 전남도청 앞 김대중광장에선 김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부인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추모문화제와 전시회도 다양했다.


한국 민주주의 상징 부각

또 김 전 대통령 고향인 신안군 하의도에선 지난 17일 추모 퍼포먼스에 이어 전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인동초’ 등 10여곡을 연주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같은 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선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다음날인 18일 생가에서 추모식이 진행됐고 21~22일에는 ‘젊은 그대, 평화를 이야기하자’를 주제로 한 ‘2010년 청년 김대중 캠프’가 열렸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좌절과 핍박의 연속이었다. 세 번의 낙선 끝에 정계에 입문한 지 9년 만인 1963년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입성한 그에게는 항상 독재정권의 박해가 뒤따랐다. 고문과 투옥으로 점철된 삶을 지내온 그는 1980년 신군부세력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극적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독재에 대항했다.

김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했던 여야 정치인들은 김 전 대통령의 화합과 평화 정신을 되새겼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추도식날 가진 회의에서 “서거 1주기를 맞아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돼온 정치권이 다시 한 번 고인이 남긴 화해 통합의 메시지를 깊이 되새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이날 라디오연설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우리 국민과 세계인의 마음속에, 그리고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현재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 간 화해와 공조체제의 기틀을 마련, 6ㆍ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고, ‘한반도 평화 구축’이라는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항상 화해와 협력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했다. 그는 서거 직전까지도 이명박 정부 들어 악화일로를 걸어온 남북관계를 걱정하며 정부에 화해와 협력을 촉구했다.


야권 빅3 누가 후계자 될까

이와 함께 김 전 대통령 다시보기 바람이 불면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예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상당수가 정치 일선에서 후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지만 DJ 서거 후 권노갑 전 고문을 좌장 격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현충원을 참배하며 결속을 도모해왔다.

‘DJ의 복심’이었던 박 대표는 지난 5월 원내사령탑에 올라 여권 견재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유의 노련미와 협상력을 과시하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도약했다. 권 전 고문은 정치 일선엔 나서고 있지 않으나 후배 정치인들의 ‘병풍’ 역할을 자임하고 있고, 동교동계의 막내인 40대의 장성민 전 의원은 직접 ‘선수’로 전당대회에 도전장을 던진 상태다.

‘리틀 DJ’로 불리는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DJ정신 계승’을 내세우며 평화민주당을 창당, 호남지역의 분열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민주당의 10월 3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정세균 전 대표와 정동영 손학규 상임고문 등 이른바 ‘빅3’의 정면대결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들 3인은 그동안의 물밑 탐색전에서 벗어나 내주부터 전국 투어에 돌입, 당권 행보를 가속화할 예정이다.

전대에 앞서 진행되는 지역별 대의원 선출대회(20∼24일), 시도당위원장 선출대회(내달 11∼26일) 일정이 확정되면서 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차기 당내 지형을 좌우할 지도체제 문제를 놓고 ‘정세균-손학규(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대 정동영(순수 집단지도체제)’간 전선이 형성되면서 향후 ‘전대룰’ 논의는 계파간의 첨예한 힘겨루기를 예고하고 있다.

당 대표직 사퇴 이후 정중동 행보를 보였던 정 전 대표는 ‘당원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하는 것으로 22일 이후 무대 위에 다시 나설 계획이다.

정 고문은 주말인 21∼22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전주를 찾은 뒤 26일 이후부터 민주당의 심장부인 광주를 기점으로 지지층 공략에 나선다.

반면 지난 15일 2년간의 춘천 칩거를 접고 정계에 복귀한 손 고문은 지난 19일 노사분규로 직장폐쇄 조치가 내려진 구미의 한 반도체업체를 찾는 것으로 외부행보를 시작했다. ‘국민생활 중심 정당’, ‘실천 있는 진보’를 복귀 일성으로 제시한 그는 내주부터 지역별 대의원대회에 참석, 바닥조직 추스르기에 나선다.

한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1주년 추모행사가 국립현충원 등에서 거행된 가운데 보수단체 나라사랑실천운동, 건국이념보급회,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자유민주수호연합 등은 “야권은 김 전 대통령을 군중선동에 이용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나라사랑실천운동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추모식 당일인 지난 18일 오후 신촌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 앞에 모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를 막을 수는 없지만 광장에서 그를 우상화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직 당시 추진했던 햇볕정책과 그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광우병 사태를 재조명 해야한다고 말했다. “당시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도왔고, 광우병 촛불시위 역시 ‘미국 소고기를 먹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식의 허위사실로 국민들을 선동한 정치적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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