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그는 한국 영화의 전설이다”


올해로 76세인 임권택 감독은 101번째 영화를 준비 중이다. 타이틀은 ‘달빛 길어 올리기’.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 후 현재 제작중인 ‘달빛 길어 올리기’까지 50여 년간 쉬지 않고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는 해방, 6·25전쟁, 좌우익의 이념대립, 80년대 산업화 등을 겪으면서 몸소 겪었던 이야기들을 영상 속에 자신만의 철학으로 담아냈다. ‘만다라’(1981), ‘씨받이’(1986), ‘서편제’(1993) 등의 작품을 통해 세계에 한국을 알리며 영화를 통해 세상과 말을 나누고 소통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그의 영화 같은 인생스토리를 들여다본다.

임·권·택. 그의 이름 석자는 한국영화계의 역사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이후 현재 작업 중인 ‘달빛 길어 올리기’까지 10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데뷔 48년이니 매년 2작품을 연출한 셈이다.

임권택 감독은 1934년 전남 장성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해방과 전쟁의 격동기에 10대를 보냈다. 좌익인 아버지로 인해 6·25가 끝난 후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됐다. ‘빨치산’ 가족이라는 이유로 생계가 힘들어 가사가 기울었다.

그는 가난과 주민들의 눈초리에 시달리다 집을 가출해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도 비참한 삶은 끝이 없었다. 잡역부로 일도 했다가 군화 장사를 했다. 그러다 물건을 대주던 장사꾼들이 영화사를 차려 우연한 기회에 영화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것이 청년 임권택과 영화의 만남이었다. 영화 ‘시네마천국’의 토토가 영화를 만난 것과 같이 운명적이었다.

임권택 감독은 정창화 감독 밑에서 연출을 배웠다. 7년 정도의 도제시스템을 거쳐 첫 데뷔를 했다. 하지만 임 감독은 데뷔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책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현실문화연구, 2003)에서 그는 “(데뷔가) 무서웠다. 감독은 하다 망하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고 적었다. 주문에 의해 어떤 장르의 영화던 찍어내야 했던 60년대였다.


62년 데뷔 후 100편의 영화제작

그는 영화를 전공했던, 영화광 세대가 아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직업으로서 영화를 만든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수십 년의 경륜에서 울어나는 한국적인 시각과 인생의 안목을 깊이 통찰해 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 것 또한 이 시기였다.

임권택 감독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 데뷔한 이래 1979년까지 70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1년에 기본 3~4편을 찍었다. 여덟 편을 찍은 해도 있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임 감독은 “먹고 살기위해 어떤 장르든 상관없이 찍어내듯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하며 “개봉했을 때 보고 다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영화들이다”고 말했다.

당시 영화계는 쿼터제가 있었다. 외국영화를 수입하기 위해선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제작해야 했다. 20개 영화사가 매년 영화 4편 정도를 찍어 한 해 80여 편의 한국영화가 제작됐다. 그때 영화들은 작품성보다는 외화를 수입할 수 있는 쿼터를 따기 위한 수단으로 제작됐다. 그러나보니 스토리텔링이나 작품성이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임 감독도 이때 밥벌이의 수단으로 장르와 관계없이 다작 연출을 했다.

다수의 영화를 연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임권택 감독만의 영화세계관이 형성됐다. 1973년에 제작한 51번째 영화 ‘잡초’를 통해 임 감독은 작품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스스로도 ‘잡초’를 ‘제2의 데뷔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영화를 ‘날치기’로 찍다보니 조금씩 거짓말을 덜 하는, 우리들 삶의 모습을 닮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며 “‘잡초’는 내가 달라져야 영화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단 생각을 가지고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잡초’의 필름은 현재 소실되어 더 이상 관객들이 볼 수 없다. 당시 영화 필름들은 밀짚모자에 테두리장식용으로 썼다.

‘잡초’의 내용은 전쟁을 배경으로 잡초처럼 살아간 한 여인의 일생에 대한 것이다. 6·25전쟁과 좌우익의 이념대립을 몸소 겪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 표출해 낸 것이다.

‘잡초’는 흥행에 성공 하지 못했다. 하지만 충무로 영화 관계자들은 그를 진지한 영화도 만들 수 있는 감독으로 다시 보게 됐다.


해외영화제가 인정한 ‘인본주의’감독

이후 ‘짝코’ ‘깃발 없는 기수’ 등을 통해 자신만의 영화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시대상황의 아픔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감독 스스로가 겪고 살아왔던 8·15해방에서부터 6·25전쟁, 좌우익의 이념대립, 80년대 산업화 등을 몸소 겪으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영상 속에 담아냈다.

1980년대는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임권택 감독과 그의 영화 작품들을 주목하기 시작한 시기다.

‘만다라’(1981)에서부터 시작된 해외 관심은 ‘서편제’(1993)등으로 이어졌다. 2005년 칸영화제에서는 ‘취화선’(2002)으로 감독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최근 해외영화제에서의 한국 감독들의 활약은 임권택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있다.

임권택 감독은 내놓는 작품마다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80년대 최고의 한국영화로 손꼽히는 ‘만다라’는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하고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김성동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던 두 승려가 구도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번뇌, 깨달음, 삶과 죽음, 윤회와 해탈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빨치산 아들로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숨 막히게 살았던 감독 개인사가 녹아든 ‘짝코’(1980), 해외 첫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강수연에게 안겨준 ‘씨받이’(1986), 카메라 연출이 아름다웠던 ‘아다다’(1987)의 주인공 김혜수는 몬트리올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는 불교에 대한 주제의식을 잘 보여줬다.

이 시기,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절제하며 감성에 빠지지 않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임권택 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임권택 감독은 한국영화계에 거대한 산맥을 형성했다.

‘국민감독’이라는 칭호를 얻게 만든 1990년대는 임권택 감독에게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안겨주는 시기였다.


흥행·작품성 동시에 인정받다

1990년에 만든 작품 ‘장군의 아들’은 흥행 성공에 힘입어 2편과 3편을 걸친 시리즈로 제작 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임권택 감독을 이야기할 때 ‘인본주의’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던 ‘개벽’(1991). 한국영화 사상 첫 100만 관객 돌파를 한 ‘서편제’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정권의 압력 속에 계속 제작이 미뤄졌던 ‘태백산맥’(1994)은 ‘문민 정부’시절을 맞이해 드디어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2000년대에 제작된 ‘하류인생’(2004)과 100번째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던 ‘천년학’(2007)은 기대에 비해 흥행 실패의 쓴맛을 맛보았다. 그러나 임 감독은 이에 대해 덤덤했다. 그는 다음 작품을 위해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그에게 99번째, 100번째, 101번째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101번째 영화제작, ‘노장’은 죽지 않았다

현재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를 제작 중이다. 11월에 개봉을 앞둔 이 작품은 3대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한국영화계 전체의 영화’라며 공동 배급을 하기로 했다. 이는 영화 배급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배급사들의 이례적인 행동이다. 칠순을 넘긴 감독이 꾸준히 ‘좋은’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존경의 뜻이다.

이 작품은 명품 한지와 한지를 복원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강수연과 박중훈이 주연을 맞아 맹 연기 중이다. 임 감독은 ‘천년학’이 끝난 후 부터 1년간 한지 관련 자료 수집을 했다. 임 감독은 “질 조은 우리의 한지는 천 년을 간다. 그런 좋은 종이를 만들어 내가는 걸 영화에 담아보고 싶었다”며 여전히 작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냈다.


#임권택 감독의 영상세계를 만나다

한국영상자료원 ‘임권택 감독 전작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거장 임권택 감독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병훈)은 오는 11일과 17일 오후 2시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에서 ‘임권택 감독 전작전’의 일환으로 임권택 감독 초청 관객과의 대화 행사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임권택 감독 전작전’은 임권택 감독의 작품 100편 중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는 70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전작(全作) 상영행사다. 지난달 12일 시작으로 58회 상영, 총 5,138명의 관객이 관람(3일 기준)을 했고, 평균관람객은 90여 명을 기록 중이다. 전작전은 오는 10월 3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임권택 감독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이래 2010년 현재 제작 중인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까지 50여 년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 왔다. 특히, ‘만다라’(1981), ‘씨받이’(1986),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서편제’(1993) 등 1980년대 이후 작품들에 기인해 ‘가장 한국적인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주리기자] park4721@dailypot.co.kr


임권택 감독 프로필

▶출생 1934년 5월 2일 (전라남도 장성)
▶가족 배우자 채령, 아들 임동준, 권현상(배우)
▶학력 숭일고등학교
▶데뷔 1962년 영화 ‘두만강아 잘있거라’

▶수상 제10회(2007) 디렉터스 컷 시상식
DIRECTOR OF DIRECTORS -
제55회(2005) 베를린국제영화제 명예금곰상 -
제10회(2002) 이천 춘사대상영화제 특별공로상 -
제55회(2002) 칸영화제 감독상 - 취화선
제23회(2002) 청룡영화상 감독상 - 취화선
제45회(2000)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 춘향전
제20회(2000) 하와이국제영화제 최고 작품상 - 춘향전
제36회(2000)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 - 춘향뎐
제36회(2000) 백상예술대상 영화대상 - 춘향뎐
제33회(1997)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 - 축제


<임권택 필모그래피>

●1962 <두만강아 잘 있거라>, <전쟁과 노인>
●1963 <남자는 안 팔려>,<망부석>,<신문고>,<단골 지각생>
●1964 <단장록>, <십년세도>, <십자매 선생>, <영화 마마>, <욕망의 결산>
●1965 <빗 속에 지다>,<왕과 상노>
●1966 <나는 왕이다>, <닐니리>, <법창을 울린 옥이>, <전쟁과 여교사>
●1967 <망향천리>, <청사초롱>, <풍운의 검객>
●1968 <돌아온 왼손잡이>,<몽녀>, <바람 같은 사나이>, <요화 장희빈>
●1969 <뇌검>, <비나리는 고모령>, <상해 탈출>, <신세 좀 지자구요>,
<십오야>, <황야의 독수리>, <사나이 삼대>
●1970 <그 여자를 쫓아라>, <밤차로 온 사나이>, <비검>,
<비나리는 선창가>, <속눈썹이 긴 여자>, <애꾸눈 박>, <월하의 검>,
<이슬 맞은 백일홍>
●1971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둘째 어머니>, <명동 삼국지>,
<30년만의 대결>, <요검>,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내린다>,
<원한의 두 꼽추>
●1972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명동 잔혹사>, <삼국대협>
●1973 <대추격>, <잡초>, <증언>, <장안 명기 오백화>
●1974 <아내들의 행진>, <연화>, <연화 2>, <울지 않으리>
●1975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왜 그랬던가>
●1976 <낙동강은 흐르는가>, <아내>, <왕십리>, <맨발의 눈길>
●1977 <옥례기>, <임진왜란과 계월향>
●1978 <족보>, <가깝고도 먼길>, <상록수>,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1979 <깃발 없는 기수>, <내일 또 내일>, <신궁>
●1980 <짝코>, <복부인>
●1981 <만다라>, <우상의 눈물>
●1982 <안개 마을>, <오염된 자식들>, <나비 품에서 울었다>,
<불의 딸>, <아벤고 공수 군단>
●1984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비구니>
●1985 <길소뜸>, <씨받이>
●1986 <티켓>
●1987 <아다다>, <연산일기>
●1989 <아제 아제 바라아제>
●1990 <장군의 아들>
●1991 <장군의 아들 2>, <개벽>
●1992 <장군의 아들 3>
●1993 <서편제>
●1994 <태백산맥>
●1996 <축제>
●1997 <창>
●1999 <춘향뎐>
●2002 <취화선>
●2004 <하류인생>
●2007 <천년학>
●2010 <달빛 길어 올리기>(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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