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부산 해운대 수영만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에서 열린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아시아영화 발전과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로부터 펠리니 메달을 받고 있다. <뉴시스>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축제로 키운 김동호(73) 집행위원장이 영화인들의 아쉬움 속에 퇴임한다. 김 위원장은 오는 10월 7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15회 행사를 끝으로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김 위원장은 이 영화제를 직접 창설한 이후 15년간 이끌며 오늘에 이르게 했다. 영화계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기념비를 세워야 하지 않으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 만큼 부산영화제는 김 위원장의 리더십과 이뤄낸 결과물에 다름아니다.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했기 때문일까. 그의 인생도 한편의 영화와 같다. 30년을 재직하던 문화공보부에서 물러나 지난 1988년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 전신) 사장으로 문화ㆍ영화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당시 한국영화감독협회는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성명을 냈다. 하지만 22년이 지난 지금 그는 영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또 다른 영화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계는 이른바 텃새가 세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영화계에 발을 들이기 힘들다. 또 발을 들인다 해도 영화계는 갈등과 이해관계가 복잡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춥고 배고프고 비참한 인생을 살기 딱 좋은 곳이 ‘영화판’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퍼져있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영화관련 사업은 대부분 실패하기 마련이다. 영화제도 다르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각 지역마다 국제영화제의 활성화를 시도했다. 지역홍보에 영화제가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에서다. 결과는 참담했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영화제들은 끊임없는 반목과 오해들로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 위원장이 이끄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달랐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부산시 지원금 3억 원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동했지만 자본이나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소신껏 밀고나간 덕분에 오늘날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이자 세계 10대 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를 굳혔다.

애초 김 위원장이 영화를 사랑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김 위원장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일 년에 영화관람 횟수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문화공보부에서 근무할 때 영화법 개정작업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그에 따르면 기획관리실장 8년 동안 전체적인 업무를 관장할 때, 충무로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영화와는 거리 먼 사람

그런 김 위원장이 공직에서 물러나 영화진흥공사 사장에 임명되자 영화계의 반발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화계에선 그를 ‘낙하산 인사’로 낙인찍고 영화감독협회는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그를 영화계에서 몰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를 영화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인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일단 영화를 많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988년 이후 제작된 한국영화는 거의 다 봤다”며 “영화인들도 많이 만났다. 영화진흥공사에 4년 있으면서, 영화계 원로부터 젊은 감독들까지 모두 친해졌다. 그러면서 점차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고 밝혔다.

법학과 행정학을 전공한 관료였던 김 위원장이 영화인으로 거듭나고자 했던 노력은 실로 대단했다. 이후 그는 한국영화의 법제와 정책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몇 권의 저서도 펴냈다. 전문성이라는 것을 갖추어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영화에 점점 눈을 떠가는 어느날 그 ‘전문성’이 일을 내고 말았다. 김 위원장은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시절 관객들의 눈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하는 ‘사건(?)’을 여러 차례 만들었다. 1993년 극장가에서 ‘크라잉 게임’(92)의 성기노출이라는 충격적인 엔딩을 그대로 살려 통과시켰고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94)를 통과시켰다. 또 당시로서는 금기에 가까웠던 일본산 또는 일본 소재영화를 개봉할 수 있도록 했다. ‘쇼군 마에다’(80)가 바로 그의 손을 거쳐 국내극장에 걸렸다. ‘올리버 스톤의 킬러’(94) 역시 그의 눈을 거쳐 통과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여론은 폭력적인 이 영화의 개봉을 허락한 김 위원장에 화살을 쏘았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공연윤리위원회로 가면서 한국 영화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름의 이해와 생각이 있던 상태였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의 ‘파격적인’ 결정은 공직자로서 나름의 소신이었던 것이다.


부산과의 운명적 만남

1995년, 34년의 공직생활을 스스로 정리한 그는 그 해 가을 세 영화인을 만난다. 현재 부산국제영화제(PIFF)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 전양준 부집행위원장 그리고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 바로 그들이다. 야심찬 포부를 품은 이들 세 사람은 김 위원장을 부산으로 안내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렇게 시작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라는 자리를 수락한 김 위원장은 부산으로 내려가 영화제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의 앞길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원도 없었고 호응도 없었다. 모두 부산에서의 국제영화제를 연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한 번 해 보자는 심정으로 계속 뛰어다녔다. 그 결과 겨우 부산시로부터 3억 원이라는 지원금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총 예산은 아직도 18억 원이나 더 필요한 상황. 김 위원장은 과거 공직자 시절 알게 된 이른바 ‘로얄인맥’을 총동원해 겨우 예산을 마련해 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1996년 9월 13일 마침내 ‘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됐다.

김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직에 있을 때 비교적 창의적인 일을 많이 했다. 문화예술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를 만들거나 국립현대미술관, 남양주종합촬영소, 독립기념관, 예술의 전당 같은 새로운 문화 시설을 조성하는 업무를 했다”며 “부산국제영화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긍정적인 사고였다.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다 보면 집념과 추진력이 생기고, 그렇게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해낼 수 있게 된다”고 자신의 성공비결을 밝힌 바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

김 위원장은 1회 영화제의 개막작인 ‘비밀과 거짓말’(96)이 5000명의 관객 앞에서 상영되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5회 영화제 때 비가 쏟아지던 가운데서도 야외 상영관 상영되던 ‘어둠 속의 댄서’(00)를 보기위해 2000여 명의 관객이 우산을 쓰고 영화를 보던 그 광경도 그에게는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현재 김위원장과 부산국제영화제에게 가장 큰 프로젝트는, 2008년에 착공한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을 성공리에 완성하는 것이다. 그는 이곳이 단순한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이 아닌,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처럼 한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길 바란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반드시 바닷가에 지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도 그런 이유다.

김 위원장은 지난날 영화인으로 살았던 수많은 추억들을 뒤로 하고 이제 물러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퇴임을 “발전적이며 창의적인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2007년에 부산국제영화제의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공동집행위원장 시스템으로 바꾸었고, 세 명의 부집행위원장을 두었다.

한편 김 위원장이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배우들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이병헌·장동건·안성기·김윤진·손예진·강수연 등 톱스타 10명이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위해 힘을 합쳐 화제다.

이병헌 등은 최근 김 위원장을 기념하기 위해 김 위원장과 함께 화보를 찍었다. 화보 컨셉트는 ‘김동호 위원장의 가족들’이다. 이번 화보는 마리끌레르 10월호와 부산국제영화제 한정판으로 나올 예정이다.

[윤지환 기자] jjh@dalypot.co.kr


김동호 프로필

<경력사항>
▶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예술학과 연구교수
▶ 1961 ~ 1980 문화공보부 문화국장, 보도국장,
기획관리실 실장
▶ 1988 영화진흥공사 사장
▶ 1992 예술의 전당 사장
▶ 1992 ~ 1993 문화부 차관
▶ 1993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
▶ 1996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2006.12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 홍보대사

<수상경력>
▶ 2000년 프랑스 예술문학기사장
▶ 2001년 대한민국 국회과학기술대상 특별상
▶ 2005년 제7회 시네마닐라 영화제 평생공로상
▶ 2005년 제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 2006년 프랑스 파리시 훈장
▶ 2007년 제30회 황금촬영상 특별상
▶ 2007년 제3회 앙드레김 베스트스타어워드 특별상
▶ 2007년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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