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도 예산안 날치기 사태와 폭력국회 재현에 대한 후폭풍이 연말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악순환으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은 극에 달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처리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민주당은 이 같은 기류를 타고 지난 14일부터 100시간 장외투쟁에 이어 전국순회규탄대회를 진행, 강경대응에 나선 상태다. [일요서울]은 송년호를 맞아 지난 15일 국회에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연초 천안함 사건을 시작으로 연평도 포격까지 이어지는 안보 문제, 또 4대강 논란에서 최근의 ‘형님 예산’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정 최고위원에게 직접 들어봤다.

지난 15일 오전 9시30분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동영 최고위원은 수척한 모습이 역력했다. 정 최고위원은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혹한기에도 불구하고 예산안 강행처리를 규탄하기 위해 100시간 장외투쟁과 전국순회규탄대회에 나서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도 한반도 문제와 한미자유무역협정(FTA)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스티븐슨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인터뷰에서 정 최고위원은 올해 예산안 날치기 사태에 대한 입장이 확고했다. 국회 폭력사태가 재현된 것에 대해서는 ‘쿠데타’로, 이를 주도한 여당 의원들은 ‘로마병졸’로 규정했다. 정 최고위원은 “국민들도 충격을 받았겠지만 참담하다”면서 “이번 폭력사태는 쿠데타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형님예산’ 논란에 대해서는 “국가예산을 사금고처럼 생각하는 것은 의회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우리가 아프리카 부족국가도 아닌데 참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정 최고위원은 또 북한의 연평도 피격사태에 대해 “국제법 위반, 정전협정 파기, 남북불가침협약을 파기한 전쟁행위”라 규정하고 “책임을 엄중하게 추궁해야 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권과 당권 중 어느 쪽을 염두 해 두고 있냐는 질문에는 “내 소명은 다시 정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라면서도 “정치인에게는 말을 하는 장소와 시간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양쪽 모두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2011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재현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국민들도 충격을 받았겠지만 참담하다. 대의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경시와 부정이다. 이건 쿠데타 수준이다. 지금이 5공이나 유신 시절이 아니지 않느냐. 청와대 권력만 국민의 위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의회권력도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권력이다. 그런데 이번 예산안 날치기로 인해 의회 권력은 청와대 권력에 짓밟혔고, 여당 의원들은 로마병졸로 전락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심경은.
▲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했지만 결과적으로 날치기를 막지 못해서 송구스럽다. 우리도 몸싸움 하는 것은 질색이다. 국민들이 싫어하는데 앞장서서 몸싸움 하는 걸 좋아하는 의원들이 어디 있겠나. 어쩔 수 없으니까 나서는 것인데 이것은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이 8년 연속 지켜지지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뭔가.
▲ 두 가지가 핵심이 된다. 첫 번째는 소수의견을 충분히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수당 즉 힘을 가진 쪽에서 양보와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지켜진다면 몸싸움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내가 열린우리당 당의장 시절인 2004년 몸싸움 정치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5·3 새정치협약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맺은 것이다. 그때 당을 떠나는 바람에 내 손으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예산안 사태 책임지고 사퇴했다. 예산안 강행처리되기 전 사전 기획된 시나리오일 가능성은 없나?
▲ 국민들이 여당의 당직자 하나 그만둔 것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상득 의원의 ‘형님예산’논란이 거센데.
▲ 세금이 개인 통장은 아니지 않느냐. 지난 3년 동안 (이상득 의원이) 챙긴 예산을 뒷받침 하려면 이것저것 따져 10조 원 정도 든다고 한다. 이건 의회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특정 권력 실세의 지역에 10조 원의 예산을 끌어가는, 국가예산을 사금고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도 그렇게는 못했다. 우리가 무슨 아프리카 부족국가인가. 부끄러운 일이다.

-북한이 연평도를 피격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 국제법 위반, 정전협정 파기, 남북불가침협약을 파기한 것이다. 이건 전쟁행위다. 여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엄중하게 추궁해야 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 내야 한다. 문제는 책임을 추궁하고 재발방지 약속 받아내는 것에 대한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연평도 사태는 미국이나 중국의 이슈가 아니다. 남북의 이슈다. 그런데 한반도 현재 주변상황을 보면 강대국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당사자인 남과 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남북은 현재 적대적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정권은 지난 3년 동안 평화 지키기에 실패했다. 평화는 커녕 평화 만들기 시작도 못 했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해올 경우 우리 군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으로 보나.
▲ 추가도발을 했을 시 어떻게 응징해야 하는 것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우선 그런 도발 자체가 근본적으로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돼야 한다. 두 번째는 도발할 엄두를 못 내도록 억지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민주정부 10년 동안은 강력한 안보, 튼튼한 국방을 전제로 대북포용정책을 펴왔는데 현 정부는 국방의 약화, 억지력의 약화 속에서 무모한 대북강경정책을 펴 왔다.

-연평도 피격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우클릭’으로 전환되고 있다. 햇볕정책 당위성을 고수하면 추후 정치적 행보에 짐이 될 수도 있지 않나.
▲ 나는 햇볕정책의 계승자이고 대북포용정책은 한반도 평화, 운명에 대한 나의 신념이자 철학이다. 그것은 내가 실제 경험을 통해 확신한 것이기도 하고 나의 비전에 대한 뿌리이기도 하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민주당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 오늘 아침에 스티븐슨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났다던데.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 스티븐슨 대사와 나는 동갑이다. 스티븐슨 대사가 나보다 두 달 동생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1953년 7월 27일 한반도 정전협정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내 생일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스티븐슨에게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만드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내 사명이라고 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논의는 없었나.
▲ 있었다. 미국은 전쟁에 반대한다. 북이 도발하지 않도록 한미 동맹을 통해서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난 2년 동안 오바마 정부의 대한반도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핵 위협이 증가하고 연평도 사건으로 한반도가 불안정해지지 않았나. 그래서 오바마 정부는 MB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편승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10년 전 접근과 대화를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페리프로세스’를 계승해 ‘신 페리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스티븐슨에게 이야기 했다.

-FTA에 대한 이야기는.
▲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같은 대표적 독소조항은 제거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라고 이야기 했다.

-DY(정 최고위원의 영문 이니셜)지지자들은 당권과 대권 사이에서 DY가 어떤 선택을 할 지 궁금해 하고 있다. 당권과 대권 중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나.
▲ 나는 지난 대선에 나서서 정권을 빼앗긴 데 대해 책임이 큰 사람이다. 내 소명은 다시 정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내 목표는 당을 확고한 대안, 집권의 대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선에 출마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 정치인에게는 말을 하는 장소와 시간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인터뷰 후 정 최고위원 측 보좌진은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내용으로 비춰지면 곤란하다고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정권 교체를 위한 비전과 전략은.
▲ 첫째, 민주당은 중도개혁노선을 내려놓고 담대한 진보노선으로 가야한다. 내가 당 내 복지국가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을 자임했는데, 복지국가 노선을 민주당이 앞장서서 선도해가니 한나라당이 따라오더라.
그런데 한나라당이 주장한 70% 복지는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다. 양육수당 예산도 2700억 원을 예산에 반영했다고 자랑했는데 이번에 날치기 하면서 빼버리지 않았나. 이건 가짜란 얘기 아닌가. 이 사람들이 가짜면 우리는 복지국가의 비전과 전략을 확고하게 무장하자는 것이다.
둘째, 연대와 연합을 위한 통합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내가 전당대회 마지막 연설에서 대표가 되면 당장 내일 당내에 ‘민주진보연합정부수립을 위한 수권태세준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민사회, 야4당과 상설협의기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대표가 안됐지만 지금이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 확고한 진보노선과 야권통합을 통해 민주당의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
[사진=맹철영 기자]photo@dailypot.co.krr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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