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안내
국가의 역할



『사다리 걷어차기』, 『개혁의 덫』 그리고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장하준의 분노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집중돼 있다. 장하준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것으로, 우리 사회 같으면 ‘돈 많은 사람들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고, 국제 사회 같으면 선진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의 법칙을 만들자는 것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
이런 장하준의 지적에 사람들은 반문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이미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대항할 수 있겠느냐고, 한 나라의 제도까지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드는 WTO 협정이나 기업의 적정 부채비율까지 훈계하는 IMF/IBRD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상징하듯 이제는 경제 부문에서도 세계 체제가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게다가 정부보다는 시장이 훨씬 공정하지 않느냐고, 정부는 부패화·무능화될 수 있지만 시장은 자연 발생적 기구인 만큼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게임의 룰이 아니냐고 말이다.
『국가의 역할』은 그간의 이런 질문들에 대한 장하준의 대답이다. 이 책에서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이론적으로 조목조목 따지고, 실증적으로 하나하나 반박하는 정도에 멈추지 않는다. 서문의 제목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아서’에서 엿볼 수 있듯 보다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재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어떤 정책이 가능하고, 그것이 경제에서 어떤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실례를 통해 제시한다.

미래를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길 것인가?
그 과정에서 장하준은 신자유주의라는 것의 실체가 뭔지를 드러내놓는다. 장하준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란,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시장에 관한 경제학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교환 거래 경제에 대한 학문일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경제인일 뿐이다.
그 속에서 국가는 존재할 수가 없다. 국가는 이제 ‘약탈자’나 정치적으로 강력한 집단이 그 당파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정치라는 것이 ‘집단 의지’에 빌붙어 시장이 내린 결과를 변경하는 합법적 수단에 다름 아니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탈규제·민영화·개방화를 외치는 것도 그래서이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금융 자율화 덕분에 사채업자들이 날뛰게 된 현실을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장하준이 던지는 화두는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국가로 하여금 사회적인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합의를 이루어내고 제도화함으로써 우리의 의지가 반영되도록 할 것인지 말이다.

‘자유’와 ‘시장’에 대한 이론적·실증적 반박
『국가의 역할』은 동시에 20세기 현대 경제 이론사이자 논쟁사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신고전학파, 시장 실패론, 케인스주의, 후생경제학, 오스트리아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개발경제론, 균형 성장론, 불균형 성장론 등등 20세기 경제 이론의 주역들이 총동원된다.
그리고 끝없이 대결한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산업정책의 가능성과 효과에 대해, 민영화의 근거와 타당성에 대해, 규제의 한계와 필요성에 대해, 지적재산권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외국인 직접투자의 효용과 한계에 해대, 경기 변동의 과정과 조절 가능성에 대해….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이론적으로 확인되고, 실증적으로 검증된다. 시장이 과연 자연발생적인 것인지, 시장 가격이 객관적인 것인지, 산업정책의 추진에 필요한 선결 요건이 존재하는지, 정보의 비대칭성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등등이 말이다.
장하준 저, 황해선 역 / 부키 / 16,000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