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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이 책은 1999년 출간된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의 개정증보판이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된 저자(황장엽)의 남한에서의 생활과 느낀 점을 담았다.
특히 저자가 예상하지 못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망명을 결심하면서 세웠던 목표가 좌절되다시피 한 점, 햇볕정책과 김대중 비판, 한국의 진보와 보수 등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

북한 최고위층의 유일한 회고록
김일성종합대학 총장(14년), 최고인민회의 의장(11년), 조선노동당 비서(18년) 등 무려 43년간 북한의 주요 요직에 있으면서 누린 최고의 명예와 권위, 수만 명에 이를 제자, 무엇보다 사랑하는 부인과 자식, 손자손녀 등 저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남한으로 온 것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일이다.
김일성의 집안 관계라든가 김일성의 생각의 변화 과정, 김정일의 권력 독점 과정과 그 방법 등에 관한 기술, 황씨 부부가 김일성의 전처 소생과 후처 소생 사이의 불화 속에서 어느 쪽도 편들지 않으려고 애썼던 이야기 등은 아마도 저자 정도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귀중한 증언이다.
김정일이 아버지의 신격화를 극대화 하면서 그 속에 슬그머니 자기의 유일적 지도체계의 보장을 결부시킨 일이라든가 김정일이 김일성주의를 들고 나섰을 때 저자가 그것을 인간중심철학 정립의 계기로 삼을 요량으로 은근히 환영하였으나 김정일의 권력 의도와 맞지가 않아서 허사가 되었다는 이야기, 세습집권이 당초부터의 김일성의 욕망이었으며 김정일 역시 소시적부터 권력욕이 강했다고 설명해주는 대목은 북한을 보는 우리의 눈을 새롭게 해준다.
북한의 대남사업부가 직접 이론을 만들어 남한의 반체제 운동권에 보냈다는 이야기, 특히 소련 붕괴 후 남한 학생들의 동요에 따른 요청을 받고 저자 자신이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이라는 논문을 써서 김정일의 이름으로 발표했던 일이 남한 학생들을 기만하는 범죄였다고 밝힌 점은 무겁게 가슴에 와닿는다.

철학서이자 역사교과서
6·25 전쟁이나 숱한 숙청이 김일성 개인에게 책임이 있지만 보다 더 큰 원인은 스탈린주의의 그릇된 계급투쟁 이론에 있었다고 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의 계급주의 관점과 계급투쟁의 윤리를 나무라는 대목은 그 속에서 직접 산 철학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중소 이데올로기 분쟁 때 사회주의 나라들의 격한 논쟁과 편가르기,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낮은 이론 수준과 권모술수, 북한의 대응 등을 목격자의 증언으로 들려주는 부분은 역사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KAL기 폭파 사건, 김정일 출생의 비밀,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 개방, 김일성의 죽음, 대량 아사자의 발생,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강산 관광 등 경험에서 나오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증언은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게 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출생에서부터 모스크바종합대학 유학에 이르는 과정, 김일성의 신임을 받아 이론 담당 서기로 복무하면서 주체사상의 이론적 틀을 세우던 때, 당비서로 발탁되어 영욕과 함께 갈등을 겪으며 망명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까지를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공산주의를 믿게 되면서 겪는 심적 상황과 거기로부터 생각이 멀어지는 지적 성숙의 과정을 담담한 어조로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지식과 실천의 일치를 실행한 老철학자가 후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황장엽 저 / 시대정신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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