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할 근접 타율로 타격왕 예약 … SK 선두권 유지 주역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이진영 선수의 맹타가 프로야구 전체판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SK 와이번스가 선두권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3번 타자 이진영의 고 타율과 높은 출루율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타격왕은 따놓은 당상이다. 이제까지는 매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타격왕은 어느 정도 예견이 되었었다. 프로야구 원년 일본프로야구에서 뼈가 굵었던 백인천을 비롯해서 타격천재 장효조, 유일한 3관왕 이만수, 끊어 치기의 명수 이정훈, 야구천재 이종범, 3할의 대명사 양준혁 그리고 최근의 장성호 등등. 그러니 이진영의 반란(?)은 다분히 충격적이다.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이진영을 타격왕 후보로 꼽았던 야구전문가는 단 한명도 없었다.

기아 타이거즈 장성호, LG 트윈스 이병규,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 등의 이름만 거론 됐을 뿐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이진영이 4할 가까운 타율에 2위권 선수를 3푼 이상 앞서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타격 1위를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한 무명이었던 이진영이 올해 타격왕 후보였던 양준혁, 이병규, 장성호와 공통점이 있다면 왼손타자라는 점 뿐이다.이진영은 99년 쌍방울 레인저스에 입단, 그해에 겨우 190타수 49안타(0.258)에 그쳤다. 팀이 SK 와이번스로 넘어간 첫해인 2000년에는 292타수 72안타(0.247)로 오히려 타율이 더 떨어졌다. 그러나 2001년부터 타격에 눈이 띄기 사작했는지 321타수 90안타(0.280)로 3할을 넘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429타수 129안타(0.308)로 3할에 턱걸이했다. 전체 8위에 해당하는 타율이었다. 타격왕 장성호(0.343)는 물론 마해영(0.323) 이승엽 심정수 등에게 턱없이 뒤지는 타율이었다.

그러나 SK는 이진영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연봉도 5,1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듬뿍 올려 주었다. 이진영이 대기만성의 선수임을 믿었던 것이다.이진영은 군산상고 시절부터 이미 초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동기들 중 유일하게 2년 연속 청소년 대표에 뽑혔었다. 지난 97년 캐나다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베스트 9’와 ‘도루상’을 받아 그 기량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었다. 이진영을 스카우트 할 당시 SK의 전신인 쌍방울은 돈이 없어 계약금 1억원을 후불제로 하고 그를 어렵사리 잡았다. 쌍방울은 그만큼 이진영의 가능성을 높게 보았었다.이진영은 군산상고 시절 3번과 4번을 오가며 나름대로 거포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프로에 와서 기량이 뛰어난 선배들과 상대하자니 힘들었다. 그래서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 짧게 끊어치는 컴팩트 스윙이었다. 그 후부터 좀 나아졌다. 고교 시절 보다 휠씬 빠르게 느껴지는 프로 투수들의 볼을 쳐내기 위해 지난 시즌 초부터 상체를 세우고 스탠스를 좁게 하는 식으로 타격폼에 변화를 줬다. 그 결과 약점으로 지적되던 빠른 직구를 쳐낼 수 있게 됐다.

이진영은 올 시즌 내야안타가 전체 안타 가운데 30%에 이른다. 이 중 번트를 제외한 순수한 내야안타가 12% 가까이 된다. 외야로 빠진 것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진영이 타격한 공이 스핀을 먹어 이상한 방향으로 튀면서 힘없이 데굴데굴 굴러가 안타가 되기 때문이다. 직구를 노리다가 변화구가 들어오면 타격을 멈춰야 하는데 그대로 휘두르다 보니 타이밍이 안 맞아 몸쪽 볼은 밀어 치고, 바깥쪽 볼은 오히려 당겨 치게 돼 이상한 내야타구가 자주 나오고 있다.SK의 조범현 감독은 지난 겨울 오키나와 캠프에서 왼손 투수에게 약한 이진영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번트연습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왼손 투수들의 공을 빠른 발을 이용해 내야안타로 만들면 그 만큼 출루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번트안타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까지 1할 대에 그쳤던 왼손투수 상대 타율도 2할대 중반에 이를 정도로 월등히 좋아졌다. 타격 감이 안 좋을 때마다 번트로 감을 살리곤 한 것이 커다란 도움이 됐다.

이진영의 별명은 얼큰이다. 얼굴이 커서 머리에 맞는 헬멧이 별로 없을 정도로 큰 머리에도 불구하고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단순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타격은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서는 기술인데 그런 면에서 단순함은 좋은 타자의 훌륭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이진영은 LA 다저스의 숀 그린을 가장 좋아한다. 숀 그린은 깡마른 체격이지만 일발 장타가 있어 매년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다.그러나 이진영에게도 고비가 있었다. 시범경기와 시즌 초반에 슬럼프에 빠졌었다. 당시 이진영은 타격감이 워낙 안 좋아 선발 라인업에서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몇 경기를 치르면서 빠르게 타격 밸런스를 찾아 새로운 타자로 자리 매김했다. 타격 감이 안 좋을 때마다 빠른 발을 이용한 기습번트와 내야안타로 타율을 유지해 4할 대에 육박하는 타율의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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