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경험도 쌓였고 영어실력도 늘어선발로 뛰고 싶지만 팀이 원하면 마무리도 괜찮아김병현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새로운 팀과 유니폼이 어색하기도 하련만 그의 얼굴에선 여유가 넘쳤다. 최근까지 겪었던 마음고생을 털어낸 탓인지 인터뷰 내내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김병현은 현지 시간으로 6월 1일, 토론토 스카이돔에서 보스턴의 등번호 51번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경기 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필자를 비롯한 10여명 가량의 현지 기자들은 김병현이 나타나기 무섭게 우르르 몰려가 단체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김병현의 인터뷰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보조 트레이너 이창호씨의 통역으로 진행되었다. 김병현의 답변은 시종일관 간단명료했다.

-보스턴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좋아한다. 몸집도 그리 크지 않은데 간혹 사람으로서는 던질 수 없는 공을 던지곤 한다.

-페드로처럼 과감한 몸 쪽 공을 즐겨 사용하나. ▲나는 몸 쪽 공을 많이 던지지 않는다. 하지만 공격적인 피칭을 선호한다.

-한국 팬들이 김병현 선수의 트레이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매우 만족해하고 있는 것 같다. 애리조나에 있을 때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가지 일로 문제가 많았었다. 이제 팀을 옮기게 되어 팬들도 좋아하고 있다.

- 보스턴이 겪고 있는 밤비노의 저주에 대해 들어봤나. ▲ 많이 들어봤다. 실제로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이틀 연속으로 홈런을 맞을 때는 양키 스타디움에 정말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후로 양키 스타디움에 서면 기분이 좋았다. 보스턴이 양키즈와 경쟁을 하게 될 텐데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새 팀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지금은 애리조나에 처음 입단했을 당시보다 여러모로 여건이 좋다. 이젠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정도 경험도 쌓았고 예전보다 영어도 늘었다. 적응하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등번호 51번에 대해서 만족하나.▲저번 등번호가 49번이었고 이번에 51번이다. 누가 그러는데 두 숫자의 합이 100이니 좋은 것 아니냐고 한다.

-선발, 마무리 중 어느 쪽을 더 원하나냐.▲개인적으로 선발로 뛰고 싶지만 현재 보스턴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팀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뛰겠다.

-한국 팬들에게 한 마디. ▲그냥 뭐… 열심히 하겠다고. 지켜봐 달라고… .

김병현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 이어 현지 방송국의 인터뷰까지 마치고 외야에서 가볍게 캐치 볼 등으로 몸을 풀었다. 몇몇 팬들이 사인을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캐치볼을 마친 김병현은 아직까진 어색한 듯, 팀 동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라이트 필드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스턴의 일부 동료 불펜 투수들(멀어서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했다)은 먼저 김병현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했고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팀 동료들이 작은 체구의 새로온 동양인 식구를 친절히 대하는 그 장면이 어찌나 보기 좋던지… 이날의 상쾌한 날씨만큼이나 김병현의 앞날이 매우 밝아보였던 건 비단 필자 뿐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보스턴 레드삭스에는 이창호씨라는 한국인 보조 트레이너가 있다. 2000년부터 보스턴 구단에서 트레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이씨는 그 이전에는 한국의 L.G 트윈스에 몸담기도 했다고. 영어 실력이 좋을 뿐 아니라 보스턴 선수들과도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창호씨의 존재로 인해 김병현이 새 팀에 적응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씨는 실제로 이날 김병현의 모든 인터뷰 통역을 맡았으며 김병현이 캐치볼을 하는 동안에는 옆에서 그의 몸 상태를 면밀히 체크하기도. 김병현 선수가 보스턴으로 오게 되어 반갑겠다는 필자의 질문에 이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그레디 리틀 감독의 의도대로 이날 김병현은 중간 계투로 마운드에 올랐다. 당초 필자는 김병현이 이날 등판하지 않길 바랐다. 최근 토론토 타자들의 타격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 김병현으로서는 트레이드 후, 첫 등판부터 굳이 어려운 상대를 고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병현은 이날 등판했고 우려했던 대로 1이닝 동안 3개의 안타를 맞고 2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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